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ㅡ 박부경
사는 게 반반이다
내가 웃을 때 누군가 울고 내가 기쁠 때 누군가 절망한다
기쁨과 슬픔 분노와 좌절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좌절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던 것 우리가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
절반의 가능성과 절반의 불가능도 지나고 보면 다 반반이다
[작품 감상] 시는 다양한 가치를 담아내지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설득하거나 설명하지도 않는다. 시인의 가슴에 담긴 담론을 가장 효율적으로 압축하여 표현한다. 운율을 중시한 글에 진한 감동과 울림을 담아내기 위하여 표현의 곁가지를 잘라내고 정감의 화라지도 억제하며 주제의 확산을 방지한다.
그래서 시는 짧다. 문제는 상징과 비유, 생략 등 작법에 지나치게 충실하면 오히려 이해하기 어렵고 무미건조한 글이 된다는 점이다. ‘그들만의 리그’라고 비아냥거리는 독자의 외면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시 쓰기의 어려움이다. 독자를 의식하면 산문성이 드러나야 문학성이 느슨해지기 때문이다.
위 시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는 현실의 투영을 통해 시인이 나타내고자 하는 주제를 충분히 담아냈다. 삶의 현장에서 느끼는 순간순간의 정감들이 쌓여 이루어낸 일반적안 현상을 사회적 시각으로 시화해낸 시인의 분석력이 시는 ‘가슴으로 쓴다’는 말을 실감하게 한다.
인간이 삶을 유지하는 한 위와 같은 현상은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다. 웃고 울고 기쁘고 슬프고 성공하고 절망하고 끝없이 이어지는 대조적 현상에서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던 것/ 우리가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이 삶의 현실에서 어떤 작용을 하든 굳이 실망하거나 낙담할 일이 아니라는 희망적 메시지를 발견한 것이다. 사물의 관찰에서만 관조적 사유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체험을 통해 얻은 가치의 축적이 관조의 사유를 유발하여 잠언과 같은 교훈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래서 ‘절반의 가능성과/ 절반의 불가능도/ 지나고 보면/ 다 반반이다’는 달관의 자세를 보인다.
플라톤의 이데아와 현상계의 이분법적 철학이 중세 기독교 철학의 주류를 이루어 영에 속한 것은 신성한 것이요 육에 속한 것은 속된 것이라는 선악의 이분법과는 차이가 있는 현상으로서의 평등한 이분법을 제시했다. 조선에서도 이분법적 가치관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박부경 시인은 그 어느 철학에 경도되지 않는 현상으로서의 이분법을 적용한 것이다.
음이 있으면 당연히 양이 있다는 긍정론이자 양이 있으면 음이 있다는 공존의 이분법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반반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쉬울 수 있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을 공존의 진실로 치환해내는 사유의 깊이가 시의 의미를 더해준다.
위 시는 특별한 기교를 적용하지 않았다. 굳이 상징이나 비유의 기법을 사용하지 않고 현실의 나열로 시적 깊이를 더해갔다. 누구나 읽으면서 즉시 공감할 수 있는 시, 독자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시는 자기 체험을 바탕으로 발견한 가치를 서술하는 데 있다. 박부경 시인의 시를 통해 인생을 긍정적으로 달관해 가는 비법을 배웠다.
* 강기옥 기자 (시인) <저작권자 ⓒ 시사앤피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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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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