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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옥 시인의 시감상] 시 밥을 짓는 DNA

 

강기옥 기자 | 기사입력 2025/09/01 [23:50]

[강기옥 시인의 시감상] 시 밥을 짓는 DNA

 

강기옥 기자 | 입력 : 2025/09/01 [23:50]

     

본문이미지

이둘임 시인    

 

 

 

 * 시 밥을 짓는 DNA

 

                                                   이둘임

 

    안부를 묻는 이팝나무가 내 앞에 있다

밥은 먹었냐. 밥은 먹고 다니냐, 밥 잘 챙겨 먹어라

밥심이 뚝심이라고 밥은

내 유년의 단단한 심지가 되어 나를 키웠다.

안부를 묻듯 날마다 시밥을 짓는다

시는 썼냐. 시집은 읽고 다니냐. 시는 좀 되냐

시마에 갈려 시를 짓고 시를 읽고 단단한 시심으로 하루를 보낸다

새벽마다 밥을 짓고 도시락 여덟 개를 싸고

동네 고아와 독거노인 손수 지은 밥으로 꽃 피우던 엄마처럼

새벽마다 시를 짓고 메모한 내용을 펼쳐 놓고

구슬을 꿰듯 하나로 꿰기 위해 몰입의 골을 피운다

밥 짓는 엄마의 DNA를 물려받았는지 날마다 시밥을 짓는다

엄마와 내가 밥과 시가, 시와 밥이

 

지하철 전동차처럼 칸칸이 지나간다

 

  [시평] 갑자기 5월의 가로수 길을 걷고 싶다. 겨울은 봄햇살에 밀려 맥없이 물러날 만큼 결기 없는 계절은 아니다. 꽃샘추위와 찬바람으로 존재감을 나타내다가 매화를 피워 매섭게 설기(雪氣)를 이어가는 것이 겨울의 끈기다.

 

그래도 4월 들어 조팝꽃, 배꽃으로 잠시 기운을 차리다가 벚꽃으로 눈발을 날려 정기를 다했나 싶은데 아니다. 5월에도 겨울은 길 양쪽 어깨에 함박눈을 함빡 쏟아 잊혀진 겨울을 되살려 낸다. 가지마다 뭉퉁 뭉퉁 솜이불을 덮어 쓴 길가의 이팝나무 암꽃의 풍경이다.

 

이천년 오월, 밀양 재약산에 올라 150만 평의 사자평에서 물오른 억새와 눈맞춤 하고 표충사로 내려와 미친 듯이 달려간 곳이 있었다. 한 무더기 쌓인 함박눈을 보기 위해서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이팝나무의 활짝 핀 꽃이었다.

 

그 감동을 시로 쓰기 위해 천연기념물은 지정된 이팝나무를 찾아다녔다. 이팝나무는 한중일의 자생종으로 멸종 위기에 있었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는 육종 개발에 성공하여 가로수로 식재할 만큼 흔한 수종이 되었으나. 일본과 중국은 아직도 멸종 위기로 보호하고 있다. 이제는 곳곳에서 이팝나무 축제를 벌릴 만큼 흔한데도 종자 보존을 위해 수출을 제한한다.

 

그 진한 감동은 아직도 가슴에 숙성 중이다. 제대로 된 작품을 완성하지 못한 중에 <시 밥을 짓는 DNA>를 읽고 게으른 내 시심에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이둘임 시인은 시와 시조의 영역을 넘나들며 부지런히 활동하면서 지역 문단의 백일장에서도 여러 차려 수상하는 등 차후의 활동이 기대되는 우망주다.

 

자연과의 교감은 시인이 누리는 정신적 희열이다.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은 고독은 바로 예술인의 영적 즐거움을 일컫는 말이다. 이둘임 시인은 이팝나무 앞에서 시적 영감을 받았다. 이팝나무의 내력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밥은 먹었냐. 밥은 먹고 다니냐, 밥 잘 챙겨 먹어라는 안부를 듣는다. 일상적인 만남에서 시는 썼냐. 시집은 읽고 다니냐. 시는 좀 되냐는 자문으로 안부에 답한다. 그 중 가장 속내 깊은 맘ㄹ은 날마다 시밥을 짓는다는 고백이다,

 

이팝나무가 매일 하얀 쌀밥을 피워내듯 나도 부지런히 시를 짓고 있다는 실상의 고백이자 자경(自警)이다. 아들의 학문을 위해 떡썰기로 자극을 주었던 한석봉의 어머니처럼 이팝나무는 이둘임 시인의 시작(試作)활동을 지켜보는 감시의 눈이자 자극제로 작용한다.

시마에 갈려 시를 짓고 시를 읽고 단단한 시심으로 하루를 보낸다

더 이상의 고백은 필요없다. 시마(詩魔)에 걸린 시인은 곧 시의 신내림을 받은 시 무당이기 때문이다. 시의 귀신에 쏠렸거나 시의 마약에 중독된 일상을 보내고 있으니 시인이라면 누구나 본받아야 할 태도다. 제목을 <시 밥을 짓는 DNA>로 한 까닭은 시 속에 용해되어 있다.

 

시적 DNA의 형성과정을 보완하기 위한 설명적 진술이 다소 시적 긴장감을 상쇄하지만 주제를 드러내기 위한 점층적 전개는 시의 맛을 살리기에 충분하다. “엄마와 내가 밥과 시가, 시와 밥이혼재된 상황으로 시의 귀신이 들린 일상을 주제로 드러내기 위한 강조법의 기교다. 독자의 시심을 자극하는 시, 시밥을 짓는 이둘임 시인의 서재에 한 그루의 암꽃이 피는 이팝나무를 심어주고 시다,

 

이팝나무의 형태소는 ++ +나무로 분석된다. 중간의 ㅎ은 발음에 영향을 줄 뿐 실질적 의미가 없는 형식형태소다. 실질 형태소 이 곧 쌀밥이다. chion()anthos()의 합성어로 Chionanthus이 학명이지만 배고픈 시절의 흰 꽃은 쌀밥나무로 보였을 것이다.

 

음운론에서는 어원의 정확한 분석을 요하지만 일반 언중(言衆)은 언어에 맛깔스러운 이야기를 곁들인다. ‘소나기소내기 장수 이야기담배다음 배가 와야 한다는 등의 민간어원설이 더 재미있는 언어로 회자된다. 이팝나무도 마찬가지다.

 

상위 극소수가 산과 강을 경계로 땅을 소유하고 불교마저 타락하여 백성은 faawnfla에 시달렸다. 그런 상황에 조선을 건국하여 토지 개혁을 단행하여 백성들이 쌀밥을 먹을 수 있었다. 이에 이성계가 주는 밥이라 하여 이밥이라 했다. 조선 건국은 이밥으로 환영받았다는 설이 이팝나무의 민간어원설이다.

 

입하절에 피는 꽃이 핀다 하여 입하나무 이팝나무의 변화를 거쳤다는 설도 있고 전라도의 이암나무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으나 이둘임 시인은 어린 시절 밥심의 추억과 연계하여 시심으로 피워낸 점이 돋보인다.  

 

* 이둘임 시인

* 이 기고는 <시사앤피플>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기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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