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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도전 한국인’ 상을 수상한 김성중 ㈜인성이앤씨 대표

선한 마음이 선한 삶을 만들어 선순환의 사회를 만든다

이민영 기자 | 기사입력 2023/03/22 [22:03]

[인터뷰] ‘도전 한국인’ 상을 수상한 김성중 ㈜인성이앤씨 대표

선한 마음이 선한 삶을 만들어 선순환의 사회를 만든다

이민영 기자 | 입력 : 2023/03/22 [22:03]

▲ 김성중 (주)인성이앤씨 대표이사가 22일 제12회 도전 한국인상(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상)을 받아 보이고 있음    

 [시사앤피플] 이민영 기자 = “선한 마음이 선한 삶을 만들어 우리 사회가 선순환되었으면 좋겠습니다고 강조한 김성중 인성이앤씨 대표(62)는 선()함이 어디서든 우선돼야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지난 22일 국회도서관 대회의실에서 가진 도전 한국인운동본부(상임대표 조영관) ‘12회 도전한국인 대상시상식장에서 만난 김 대표와 인터뷰의 첫 마디였다. 이날 전북 출신 기업인인 그는 김관영 전북도지사(대상), 심덕섭 고창군수(대상) 등과 함께 도전 한국인으로서 인정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상을 받았다.

 

김성중 대표는 온갖 고난을 극복하고 건설업계에서 건실하게 성장한 모범 기업인이다. 이날 김호일 대한노인회 회장가 축사에서 말했듯 실패를 극복하고 성공해야 위대하다는 평을 받을 수 있다고 한 것처럼 김 대표는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차분하고 성실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1997IMF 당시 쓰라린 사업실패를 당하여 죽을 고비를 겪었다고 한다. 어쩌면 시대를 잘 못 만났다. 고난의 휘용돌이가 불어 닥칠 때 그는 불굴의 도전 정신으로 난관을 극복하고 전진해 성공의 길로 들어섰다.

 

김 대표는 1990년 초 상경해서 3년 후인 1993신안지질를 창업 해 한 때 실속 있는 사업체로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IMF 당시 지인의 보증을 섰다가 채무자의 실패가 도미노처럼 밀려와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그는 1998년 사업장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트럭 1대를 가지고 고창으로 낙향해 막노동을 하게 됐다. 당시가 가장 힘이 들었다고 술회했다.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시기여서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 장기(신장) 불법판매 스티커를 보고 유혹을 느꼈을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에게 힘이 돼 준 사람 때문에 재기의 꿈을 갖게 돼 다시 도전할 수 있었다고 했다. 당시 힘이 돼 준 사람은 그의 부인이다. 어느 날 부인이 면사무소에서 근무할 수 있게 돼 육아와 가정, 기본 생계를 해결할 수 있게 돼 다시 꿈을 꾸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가정의 안정을 되찾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꿈을 갖게 돼 서울로 운전대를 돌려 상경하게 된다. 그는 1999년 서울로 올라가 다시 건설업을 시작하게 돼 오늘의 인성이앤씨를 뿌리내리게 했다.

 

김 대표는 전북 고창군 흥덕면 출신으로 농촌(대양마을)에서 성장기를 보내며, 부모로부터 심은 대로 거둔다는 농심의 명언을 뼈에 새기면서 생활했다.

 

그를 잘 아는 이웃 마을 이 모(75)씨는성중이는 어려서부터 조용하고 성실한 학생이었으며, 예의 바르고 모범적인 청소년이었다며 김 대표의 어린 시절을 들려줬다.

 

김 대표가 1990년 초 상경과 90대 말 재상경은 상황이 달랐다. 전자가 막연한 도전이었다면 후자는 실패를 경험하고 나서 구체적 꿈과 비책이 있는 재도전이었다. 

 

▲ 전북 부안군 나누미근농장학재단에 3백만원을 기부하고 있는 김성중 대표    

그는 건설현장을 눈여겨 본 것과 심도 있는 생각을 분석적으로 연구한 끝에 나온 건설기술의 한 수를 생각해 낸 일이 묘수였다고 했다. 이후 몇 년 간 각고 끝에 2001ASG공법 특허를 받았다. 그리고 그 특허로 당해연도에 남강 와룡제 수해복구공사(진주)를 수주함으로써 자산감을 갖게 돼 일익 성장하게 됐다.

 

이후 그는 창의적 건설기술과 차수공법으로 건설업계의 혜성처럼 나타났뜨고 있었다. 토목공사에서 지반주입 공법으로 가성비가 좋은 기술을 개발해 업계의 인정을 받게 됐다. 물유리를 특정약품으로 처리하여 얻어지는 개질물유리의 일종으로써 건설 및 토목 공사에 유용하게 활용됨으로써 건설업 발전에 나름 기여하게 됐다는 평가도 받았다.

 

김 대표는 심은 대로 거둔다는 작고하신 부모의 가르침이 어려울 때 마다유훈으로 들렸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좋은 결실을 얻기 위해 어디를 가든 바른 처신을 할 수 있었고, 정의의 편에 설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을 심어야 선()이 나올 수 있다는데 대해 그의 신념은 확고해졌다.

 

김 대표는솔직히 50대 중반까지 앞만 보고 달려 왔기 때문에 주위를 돌아볼 틈이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자녀들과 회사가 하루 하루 커가는 것을 보고 늘 감사했으며, “어느 때인가 자립기반이 마련되다 보니 비로소 그 때 주위가 보이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사업 초기 처음엔 사훈이 없이 그저 열심히 일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회사 규모가 커가고 구성원이 늘어가다 보니 종사자들이 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지 알게 됐다.

 

그래서 정한 사훈(社訓)합리‘(合理)였다. 평소 합리적 사고와 합리성은 소중한 가치였기 때문에 사훈을 합리로 한 것은 너무 자연스러웠다.

 

그는 사회에 좋은 일을 해보겠다고 부안군 나누미근농장학금 300만원을 기부하는 등 크고 작은 이웃돕기를 해 왔다. 최근 고향인 하남지역 선후배 기업인들을 초청해 격려하면서 지혜를 공유하는 자리를 가졌으며 크고 작은 정성을 쏟기도 했다.

 

김 대표의 초등동창인 손주성 대표(서울소방)성중이 회갑 나이가 되더니 고향과 이웃들을 더 찾는 것 같다, “이제 나름 나이가 들었다는 징후가 하나 둘씩 보인다고 격려했다. 

 

▲ 김성중 대표이사가 22일 김관영 전북도지사, 심덕섭 고창군수 등도전 한국인상 수상자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음    

 김 대표는 귀소본능이 강한 듯 싶었다. 인터뷰 도중 어릴 적 대양마을(大陽里)에 대한 추억을 꺼내곤 했다. 대양리는 1760년 간행한 여지도서에 흥덕현의 집성촌 중 담당리와 함께 꽤 큰 동네였다.

 

그는 옛 문헌에서 나타난 큰 동네가 폐촌처럼 된 점에 대해 아쉬움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 이 동네 출신들이 대양(大陽), 즉 큰 태양의 기운을 받고 자라서 향후 큰 일을 하거나 대성하게 될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을 갖게 되더라고 소개했다. 실제로 그는 후손과 후배들에 대한 기대감이 유달리 많은 것처럼 느껴졌다.

 

김성중 대표가 조용하면서도 남을 섬기는 리더십으로 기업을 일구고, 창의적 마인드로 건설 특허를 만들어 오늘의 인성이앤씨를 세운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였다.

 

심은 대로 거두리라는 그의 부친께서 하신 말씀은 선한 마음을 심었기에 선한 삶을 만들었고 또한 선순환의 사회를 말들어 가게 된 원천이라 보여진다.

 

이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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