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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대한민국 명인’ 인증받은 최고의 장인 손병천 대표(미성양복점)

3대를 이어가는 명품 양복 자존심, 세계기록인증원(SWRI) 주관

이민영 기자 | 기사입력 2023/04/01 [10:15]

[인터뷰] ‘대한민국 명인’ 인증받은 최고의 장인 손병천 대표(미성양복점)

3대를 이어가는 명품 양복 자존심, 세계기록인증원(SWRI) 주관

이민영 기자 | 입력 : 2023/04/01 [10:15]

 

▲ ‘대한민국 명인’ 인증패를 들어 보이는 양복 장인 손병천 미성양복점 대표 

  [시사앤피플] 이민영 기자 = 대한민국 명인으로 인증받은 최고의 장인 손병천 미성양복점 대표(70)와 인터뷰했다. 손 대표는 지난 9일 사단법인 도전한국인본부와 대한민국명품.명인인증위원회에서 이와 관련한 명인 인증서를 받은 바 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양복기술을 지키며 외길인생 수제 양복을 정성으로 바느질을 기워 맞춤 양복을 만든 것이 50년이 흘렀다. 이날은 그가 아버지의 양복점을 이어가며 마침내 명인으로 선정된 날이다.

 

손 대표는 부친 고 손의진 씨가 해방 이후 1947년 서울 명동에서 양복점을 운영하면서 자연스럽게 양복 기술을 배웠다. 부친의 양복 기술은 우리나라 패션의 대명사인 명동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고난도 기술은 아버지를 통해 아들에게 전수됐다. 부친은 항상 아들에게 최고의 옷을 만들어라’, ‘바느질 하나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며 끊임없이 독려하고 지켜보았다.

 

부친에게 옆에서 배우며 물려받은 양복기술은 손 대표의 아들 손혁준(37)씨에게 전수돼 3대를 잇게 됐다. 일부 젊은이 가운데는 옛스러운 것을 촌스런 것으로 오해하는 것과 달리 그의 아들은 옛 것을 진짜 우리 것이란 신념으로 이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하지만, 손 대표는 순간적으로 자식에게까지 이 힘든 양복기술을 가르치고 평생을 해 봐라 하기에는 선뜻 말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 지나온 세월이 너무 힘들어서 다른 일을 시키고 싶은 욕망도 있었을 것이다. 이게 부모 마음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전통과 가문의 명예를 이어가고자 하는 아들과 가족들의 성원이 양복장인의 명장 가문을 만들겠다는 각오와 결단이 높게 평가됐다고 한다. 그가 고생한 지난 시절의 생각보다는 양복 명장과 장인 가문이란 새로운 희망과 비전이 더 크게 다가와 이를 수락하게 됐다고 했다.

 

손 대표는 1997IMF사태에 이어 최근 3여 년 지속된 코로나19로 결혼식이나 행사가 거의 없어 맞춤 양복을 찾는 고객의 발길이 뜸했다. 극심한 경영난이 지속돼 심각한 어려움에 처하기도 했다.

 

손 대표는 돌아가신 부친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강원도 외진 산골에 텃밭을 장만하고 주말이면 그곳을 찾아 정신을 일도하곤 했다. 여기에서 그는 부친을 생각하면서 강한 정신력을 가지곤 했다.

 

아들이 양복기술에 도전한다고 했을 때도 그는 이곳을 찾았다. 작고하신 아버님께 보고도 할 겸 부친의 지혜를 얻고자 했던 것이라 했다. 맑은 정신이 되살아나면서 그는 아들의 도전이 명쾌하게 옳은 일임을 인식하게 됐다.

 

아마 도전한국인본부도 나의 이런 마음을 감지한 것인지 발표 당일 높게 평가됐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손 대표는 이날 ‘3대 가업의 전통과 도전의 삶을 살아온 가문으로 전문성이 입증돼 대한민국 명품·명인인증위원회에서 명인인증서를 수여한다고 발표할 때 와락 눈물이 쏟아졌다고 한다. 

 

▲ 조영관 도전한국인운동본부 상임 대표가 명동 소재 손병천 미성양복점에서 명인 인증패를 전달하고 있음    

 서울역사박물관에는 손 대표의 부친 고 손의진 씨가 평생을 들고 다니던 검정색 양복전용 가방이 보관돼 있다. 수 많은 시민들은 이 유품 앞을 지날 때 약속이라도 한 듯 잠시 멈추고 있다. 아름다운 옛 추억은 이들의 발걸음을 잠시 중단시키고 어르신을 사랑과 관심으로 지켜보게 하고 있다.

 

지금 손 대표의 아들 손혁진 씨는 강남에서 성실하게 양복점을 운영하면서 조부의 정신과 부친의 솜씨가 어울어진 모습으로 한 땀 한 땀 손질을 하면서 명품 양복 만들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손 대표는 맞춤은 상당한 기술을 필요로 한다, “숙련된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는 10년 이상의 세월이 걸리며 여기에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어야 완벽한 옷이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양복은 만든다는 표현보다, 하나의 작품을 창조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장인 정신이 있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맞춤 양복이 탄생한다고 강조했다.

 

아들 혁준 씨는 부친에게 현재 6년을 배우고 독립해 자신의 양복점을 정상적으로 잘 운영하고 있다. 이제 그가 4년만 더 배우면 10년을 채우게 돼 명인 대열에 낄 것으로 전망된다.

 

손 대표는 아버지가 할아버지에게 그렇게 배웠던 것처럼, 자신도 하나부터 열까지 맞춤 양복의 모든 것을 아버지에게 배웠다, “직업적으로 아버지는 스승으로 존경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도제 교육의 장점을 설명했다.

 

손병천 대표는 돌아가신 아버지도 아들이 명인에 선정된 것을 알고 계실 것"이라며, 이제서야 아버지의 뜻을 이뤄 드린 것 같아 기쁘다고 밝히며 뿌듯해 했다.

 

이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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