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륜차(오토바이) 분야 국내 TOP, 이진수 ㈜모터뱅크 회장고향에 거액 투자 약속 실천 중 건축물 부실 공사 30여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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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앤피플] 이민영 기자 = 2021년 4월 21일 부안 3 농공단지에 이륜차(오토바이)와 고령자 또는 거동이 불편자한 노약자를 위한 삼륜/이륜 오토바이 반제품을 해외로부터 수입하여 삼륜형 차량을 완제품으로 만들어 출시하겠다고 투자협약을 부안군과 체결한 후 만 3년이 될 즈음 이진수 ㈜모터뱅크 회장을 만나 인터뷰했다.
이 회장은 아무리 사소한 약속이라도 지켜야 한다는 게 어릴 적부터 몸에 밴 철칙 중 하나이다. 그는 고향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고향인 부안을 자주 찾았다.
3년 전 고향에서 군수 등과 함께 업무협약을 체결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지켜야 할 큰 약속이었다. 그때부터 이 회장은 머릿속이 온통 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제조사 사장이라면 누구나 경쟁사보다 질 좋은 제품을 값싸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그러나 기술력이나 경비 절감 등 관련 노하우는 개인차가 크다. 이게 경쟁력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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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륜차(오토바이) 업계에서 이 회장만큼 관련 노하우를 갖고 있는 분은 많지 않다. 이 회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는 현장에서 아무도 알 수 없는 기밀이나 귀신만이 알 수 있는 사항을 가장 많이 아는 분으로 통한다. 이게 학위논문은 쓰지 않았지만 그가 이륜차(오토바이) 박사로 통하는 이유이다.
그는 “코로나19 펜데믹 시절 이후 환율이 많이 올라 부품 수입 관계로 많은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고향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고향의 일부 고약한 사람들이 억측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일부 공직자는 도와주는 척하며, 이권을 챙기려 할 때 기대와 달리 실망이 생기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럴 때마다 ”큰 일을 하면 언제나 마(魔)가 끼게 마련이다. 꾸-욱 참고 일을 해라“는 어릴 적 부친의 말씀이 생각나 꾹꾹 참아냈다고 한다. 정말 어렵고 힘든 일이 닥칠 때마다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그 순간을 극복해 낼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진수 회장은 1995년 ㈜모터뱅크를 창업해 이륜차(오토바이) 분야 국내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는 3년 전 334억원이란 거액을 투자하기로 협약한 바 있다. 이제 그 약속은 어느 정도 마무리한 상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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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최고의 제품을 즐비하게 전시해 놓은 1~2층 쇼룸을 바라볼 때 가장 기분이 좋고 행복감이 찾아오는 순간이라 했다. 그 기저엔 고향 사랑과 프로 정신이 깔려 있는 것 같아 보였다.
그는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에서 태어나 감교초 12회 출신으로 자수성가형 기업인으로 소문난 명사 중의 명사이다. 그의 수 많은 에피소드와 희노애락의 사연은 그가 얼마나 많은 사회적 경험이 있었는가를 짐작케 해 준다.
그리고 이진수 회장은 선이 분명한 인사로 통한다. 전라도 말로 치자면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다’는 의사가 분명한 기업인이다. 이것이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 돼 손해를 보는 때도 있다고 했다.
그는 1968년도에 달랑 430원을 가지고 고향을 떠나면서 나는 꼭 성공해 내가 태어난 고향에 내려와 그럴싸한 사업을 하겠다는 각오를 가졌던 분이다. 그의 말 대로 이 회장은 이륜차(오토바이)분야에서 성공해 지금 고향에 돌아온 것이다.
이 회장은 이 밖에도 언론인으로서 이륜차(오토바이)관련 신문(m스토리)을 발행하고 있으며, 이와 관련이 있는 전국규모의 단체(한국수입이륜차환경협회)의 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 회장은 사업만 잘 한 게 아니고 자식 농사를 잘 지었다. 그의 자녀(1여 1남)중 1녀는 외국 유학 후 결혼해 독립해 잘 살고 있으며, 1남은 또한 결혼하여 2남 1녀의 아빠가 돼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그는 적성에 맞았는 지 아버지 이진수 회장의 사업에 함께 해 같은 나이 또래에서 한발 앞서가는 사업가로 열심히 노력하며 부친이 지내 온 궤적대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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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의 고향 지인 김 모씨(68/남)는 “이 회장이 너무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애들만큼은 잘 키워보고 싶었을 것”이라며, “그래도 아이들이 최선을 다해 부모의 기대에 응해 줘 이렇게 훌륭하게 돼 다행”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 회장은 어렵고 힘들 때마다 작고하신 부모님과의 묵언의 대화를 통해 지혜를 얻었다고 한다. 그는 “사업을 하다 보면 힘들 때가 있기 마련인데 그 때마다 몰래 부모님(산소)을 찾곤 했다”고 실토했다.
어릴 적 그는 부친으로부터“1원 없는 10원이 없고 10원 없는 100원이 없다며 잔돈이 모여야 큰 돈이 된다. 잔 돈을 잘 못쓰면 후회가 적지만, 큰 돈은 잘못 쓰면 더 큰 후회가 있다”는 말씀을 들으며 성장했다. 부안에 큰 돈을 투자한 것도 그의 부친으로부터 얻은 지혜가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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