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앤피플] 2023년 10월 하마스-이스라엘 분쟁이 발발한 뒤 열린 미국의회 청문회에서 하버드 대학교, 펜실베이니어대학교, MIT 등 3개 대학교 총장들에게 한 의원이 '유태인 종족학살을 부추기는 발언이 대학교의 학칙 위반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총장들은 발언의 문맥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답변하였다.
이에 대해 정치권과 대학후원자들이 세 총장의 사임을 요구하였고, 교수들은 총장들을 지지하였지만, 하버드와 펜실베이니어 대학교 총장들은 결국 사임하게 되었다.
2024년 4월 미국 대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이스라엘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라고 요구하며 교정에 텐트치고 야영하는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컬럼비아 대학교 등에서 학교당국이 물리적 힘으로 이를 막자 교수들이 집단행동에 나서 미국의 핵심가치로서 헌법에 보장된 말하는 자유와 언론출판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총장을 비판하고 나섰다.
야영운동을 물리적으로 막으려고 하는 대학당국들은 반유태주의가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정당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민간인 과잉살상에 대한 항의를 반유태주의로 치부하는 논리는 언뜻 수긍하기 힘들다.
야영운동은 현재로서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미국 대학캠퍼스에 퍼졌던 남아프리카의 인종격리정책에 대한 항의운동과 같은 양상을 띠고 있으나, 갈수록 베트남전 시작 후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초반의 종전 때까지 미국을 휩쓸었던 반전운동과 같은 양상을 보일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베트남 전쟁은 미국이 당사자였던 전쟁이어서 미국인들의 희생이 큰 전쟁이었으므로 지속적으로 확산되었던 것이고, 이해관계가 크지 않은 이슈에 대한 야영운동이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유태인들은 재계와 언론계 그리고 학계에 큰 세력을 가지고 있고 미국 정치에도 큰 영향력을 미친다.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니겠지만, 일반적으로 미국 정책과 보통사람들의 사고에는 알게 모르게 친유태주의적인 틀이 작용하고 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을 동정하는 움직임은 특이하다. 미국의 보통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이슈가 아니기 때문이다. 혹자는 군사적 목적을 위해 민간인 수만명을 살상하는 행위에 대한 반응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동안 비슷한 일이 중동에서, 아프리카에서, 동유럽에서 수 없이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지만 미국의 보통 사람들은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미국 대학교 캠퍼스에서는 왜 갑자기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그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가 보이는 행태라고 생각된다. 노골적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사람 아닌 야생동물 정도로 취급하는 그의 전쟁수행 방식은 이해관계를 떠나서 양식 있는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인구밀집지역을 폭격으로 초토화하여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만들고, 적군이 숨어있다고 병원을 무차별 공격하여 부상자들이 치료도 받을 수 없게 만든다. 배고파서 식량배급차량에 몰리는 사람들을 향해 총질을 하며, 목숨걸고 식량을 전달하는 구호봉사요원들이 탄 차량을 공격한다.
그리고 이 모든 행위들을 하마스 테러리스트들이 1000여명의 이스라엘인들을 살해했다는 것으로 정당화한다. 이런 행태가 지속되자 미국 대학교 교정에서 공분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네타냐후를 지지하는 세력은 팔레스타인인들이 현재 살고 있는 땅에 국가를 세우는데 반대하며, 이미 피난민처럼 몰려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땅을 한 치라도 더 빼았기 위해 이스라엘인들이 더 들어가 살도록 지원한다.
이에 대해 분노하며 저항하면 테러리스트로 취급된다. 현재 이스라엘에 구금되어 있는 수천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대다수가 이스라엘과 싸운 적군이 아니고 여자와 노인을 포함한 전투능력 없는 힘없는 사람들이다.
네타냐후와 같은 유태인 지상주의자들이 생각하는 이스라엘 사람과 팔레스타인 사람의 근본적 차이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체계에서 받아들이기 힘들다.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은 이런 가치의 간극을 밖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내었다.
그리고 보면 야영운동의 확산으로 반유태주의가 일어나는 것을 우려하는 미국 대학총장들의 생각이 틀린 것만은 아니다. 다만 반유태주의의 확산을 막는 길은 야영운동을 막는 게 아니고 네타냐후 같은 극단주의자들이 날뛰지 않도록 막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생존은 서방 진영, 특히 미국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 미국의 여론이 비우호적으로 돌아서는 것은 이스라엘에 좋은 뉴스가 아니다. 물론 국제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이든 미국 내 친유태세력의 영향력에 의한 것이든 미국의 친이스라엘 성향은 변치 않을 것이다. 미국의 여론은 네타냐후 집권세력에 대해 부정적이다. 네타냐후는 내려와야 한다.
* 채수찬 경제학자·카이스트 교수 * 이 기고는 <시사앤피플>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시사앤피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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