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앤피플] 파리올림픽 개막식 분위기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한바탕 신나게 놀아보자'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센강의 다리와 양쪽 연안, 그리고 건물 지붕 위를 무대로 발레를 비롯 갖가지 음악과 춤이 펼쳐졌다.
고전적인 요소도 있지만 현대적이고 대중적인 양식이 주조였다. 필자가 잠시 머물렀던 40년전 파리는 분위기 있는 도시였다. 파리에 가면 '멀쩡한' 사람도 감상적이고 낭만적이 되었다. 마주치는 한국인들 중에 화가, 디자이너, 음악인, 영화인 등 예술인들이 많았다.
그때와 비교하자면 파리올림픽 개막식에 표현된 파리의 분위기는 인종, 문화 등 여러측면에서 '다양성'이 두드러져 보였다. 그리스 포도주의 신인 디오니소스가 데카당적인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이상할 게 하나도 없다. 노출 논쟁이 있는데, 사실 고대 그리스 올림픽 선수들은 나체로 경기를 했다. 비주얼면에서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파리의 자랑인 미술품들을 그래픽으로 적극 활용하지 않은 것이다.
개막식 직전에 철도시설에 대한 사보타지가 있었지만, 개막식 자체는 무사히 치뤄져서 다행이다. 그리스 도시국가들 간의 제전이었던 고대 올림픽을 부활시킨 근대 올림픽을 제창한 것은 프랑스인 피에르 드 쿠베르탱이었기 때문에 제1회 아테네 올림픽 다음으로 1900년 제2회 하계 올림픽을 개최한 곳이 파리였다. 이번 올림픽은 1924년 파리올림픽 이후 꼭 백년만에 다시 파리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파리올림픽 개막식에 참가한 선수대표단 중에는 국가가 아닌 난민 선수대표단도 있었다. 국가간 또는 사회적 폭력 상황으로 자기 나라에 살지 못하고 있는 선수들이 인류의 스포츠 제전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배려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는 참가가 허용되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 올림픽 기간 중에는 올림픽 휴전이 있었다. 침략전쟁은 잘못된 것이지만, 국제정치적 이유로 특정국가에서 개최되는 올림픽에 참가를 거부하거나 특정국가의 참가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 올림픽 정신에 맞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요즘 세상은 그렇게 가고 있다. 정치와 관련 없는 러시아 출신 예술가들도 국제 무대에서 배척당하고 있다. 톨레랑스는 관용 내지 포용을 뜻하는 프랑스 말이다.
표현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하며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는 행동은 가능하면 허용하는 게 원칙이다. 톨레랑스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한계가 명확한 것은 아니다. 인류역사에 항상 있어온 침략전쟁은 이제 정당성을 잃었다. 그래도 계속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힘 있는 집단의 힘 없는 집단에 대한 대량학살도 계속되고 있다.
이런 일들이 언젠가는 사라질 것인가. 답은 비관적이다. 개인 차원의 폭력적 범죄가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집단 차원의 폭력도 제어하기 위해 노력은 하지만 제거는 힘들다. 온 세계의 정치가 톨레랑스에서 멀어지고 있다. 영국의 브렉시트, 미국의 트럼프현상, 유럽각국의 극우파 득세, 러시아와 중국의 전체주의 성향 강화 등은 그런 흐름의 일부다. 한국에서도 이전에 보지 못했던 타협 없는 정치가 질주하고 있다.
최근 프랑스에서는 극우파가 의회를 장악하리라는 예상을 깨고 좌파연합이 제1당이 되었다. 중도파 대통령과의 동거 곧 코아비타시옹이 불가피해졌다. 이는 대통령과 총리가 외치와 내치로 영역을 나누어 권력을 분담하여 운용하는 체제다. 현재 미국은 대통령과 상원다수는 민주당, 하원다수는 공화당이어서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도 의회가 여소야대 상황이라 대통령과 의회가 사사건건 대립하고 있다. 선거에 의해 집권이 결정되는 민주주의체제하에서 유권자들이 반반으로 진영이 나뉘어 있는 경우, 권력이 불안정하게 왔다갔다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혼란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견제 시스템이 작동하므로 전체주의 체제보다는 훨씬 낫다. 코아비타시옹이든 여소야대든 견제를 통한 '현실적' 톨레랑스라도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전세계적으로 톨레랑스가 후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요인은 인구적 요인이다. 브렉시트, 트럼프현상, 극우파 득세의 배경에는 이민문제로 인한 갈등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길어진 수명에 따른 사회적 부담과 세대간 갈등도 인구적 요인의 일부다. 또 하나의 요인은 기술혁신에 따른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양극화다. 혁신에 의해 인류의 전반적인 생활수준은 향상되고 있지만 기술을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자의 간극이 벌어지고 있다.
불평등이 커지고 있다. 파리올림픽 개막식에서는 프랑스 혁명 구호인 자유, 평등 박애를 주제로한 내용들이 표현되었다. 박애를 남자들간의 우정인 프라테르니테가 아닌 여자들 간의 우정인 소로리테로 대체한 것은 인상적이었다. 파리올림픽이 진정한 다양성의 축제가 되길 기원한다. 인류사회에 다양성이 꽃피려면 톨레랑스를 기반으로 자유와 평등이 모두 진전되어야 한다. 톨레랑스는 올림픽 정신이다.
* 채수찬 경제학자 • 카이스트 교수 * 이 기고는 <시사앤피플>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시사앤피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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