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앤피플]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무조건 젊은 층에 신세를 지고 살아야 하는 법은 없다. 평소에 건강관리를 잘하고 술 담배 마약 등 무책임한 생활습관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은 노년에 들어서도 젊은 신체나이를 즐길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공익을 선사하는 사회활동으로 뿌듯함을 느끼며 살 수도 있다. 문제는 노년기에 비자발적으로 혼자 사는 사람들이 돌봄이 필요한 경우이다. 치매 노인이 아니더라도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다른 사람의 돌봄이 필요한 존재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생리적, 정신적, 사회심리적, 경제적 욕구를 충족시키며 살기 위해 돌봄을 주고받는 인간관계가 필요하다.
노인돌봄 서비스의 필요성
특별한 건강문제나 재정적 어려움 없이 은퇴한 개인으로서 평안한 노년을 즐기는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에 대한 돌봄 능력은 필수이다. 몸과 마음과 정신과 영혼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평소에 자기 자신에 대한 건강한 자아상이 없고 균형이 깨진 삶의 패턴을 유지하다가 갑자기 노년에 평안한 정신세계와 물질적인 안정감을 누리기 어렵다. 온전한 노년의 삶을 바란다면 세계보건기구에서 정의한 대로 건강의 의미를 삶의 모든 영역에서 전체적으로 실천하는 균형이 있는 삶을 목표로 해야 한다.
건강한 생활습관과 같은 개인 책임의 영역을 넘어서 국가가 사회구성원 전체의 안전을 위해 도입한 사회제도는 이미 많다. 우선 국민의 세금을 쓰면서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제도가 있다. 타국으로부터 오는 가상적인 침략에 대비하여 국방 안전을 담당하는 군인제도도 있다. 그밖에도 국민 전체의 신체적 안녕과 건강한 사회역할을 위한 국민건강보험제도와 의무교육제도는 보편적인 복지 차원에서 수용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아동, 장애인, 노인과 같은 취약계층은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집단의식수준에서 보편적인 인간 욕구(니즈, needs)로 인정받았을 때 사회구성원 모두가 차별 없이 세금재정으로 운영되는 사회적 차원의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다.
많은 경우에 노년기에 이르러 일상생활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게 된다. 어린아이일 때 네발로 기고, 어른이 되어 두 발로 걷다가, 노인이 되면 세 발로 다닌다는 표현은 지팡이 없이 걷기가 불편한 노년기를 의미한다. 죽음이 모든 인간이 받아들이는 자연스러운 생애과정이듯이 노년기의 신체적 정신적 쇠퇴 현상은 보편적이다. 개인의 재정 상황, 건강상태, 가족관계, 사회적 지위 등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노년기를 맞게 된다. 그렇다면 어린아이가 받는 돌봄 필요가 당연한 것처럼 노인도 차별 없이 돌봄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개인차가 있지만, 노년기에 누구나 보편적으로 필요한 물질적이고 비물질적인 돌봄을 사회적 차원에서 제공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2008년 4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 자리에서 울리히 벡이 말한 바와 같이 한국은 아주 특별하게 다른 나라보다 훨씬 더 위험한 사회이다. 조선왕조 사회체제를 공화정 신체제로 조화롭게 변혁하지 못한 상태에서 외세에 의한 근대화를 경험한 탓이 크다. 202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은 훨씬 더 위험한 사회가 되었다. 높은 이혼율 문제 외에도 젊은 여성들이 결혼을 거부하고, 결혼해도 자녀 출산을 피하는 등 기본적 가족제도가 무너지고 있다. 친자식이나 며느리 등 가족관계에 의존하는 노인돌봄 가능성이 더욱 희박해졌다. 그래도 자본 중심 사회의 돌봄 서비스 시장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는 여전히 여성 중심으로 경제적 취약계층이 담당하고 있다. 어린이집과 요양원에서 종종 아동이나 노인학대 사건이 생기는 일을 거시적 사회문제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스트레스 많은 취약계층 노동자들의 서비스 질이 낮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정치이념과 돌봄의 권리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통일사회당, 사회당, 사회민주당을 이끌었다는 김철이라는 사회민주주의자 정치인 사상가는 “사회주의는 민주주의를 통해 실현되고, 민주주의는 사회주의를 통해 완성된다”라는 믿음을 고수했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 개념의 전체적인 스펙트럼을 균형 있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는 아직도 어려운 것 같다. 돌봄과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하는 민주주의 시민이 이념의 스펙트럼 한쪽 끝에 서서 자유민주주의만 주장할 때 기회균등의 가치가 무너지게 마련이다. 반대로 사회민주주의만 강조하느라 개인의 자유를 소홀히 하면 개인의 선택권과 존엄성이 위협받게 된다. 평등과 자유가 서로 그 가치이념을 존중하여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인권이 보장받게 된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체제만 내세우거나 신자유주의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만 주장할 때 인권은 무너지고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없게 된다.
돌봄민주주의 (원저: Caring Democracy)의 저자 조안 C. 트론토 (Joan C. Tronto)에 의하면 돌봄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있게 된다.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다. 현재 한국과 미국의 민주주의는 허울만 좋은 이념에 불과하다. 민주주의가 표방하는 인권이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자본을 가진 계층의 자유를 지나치게 보호하는 사회경제체제는 불평등사회의 비극을 창출했다.
다른 한편 북한에 엄연히 인권법이 존재하지만, 통일부에서 2023년에 발간한 ‘북한인권보고서’에 의하면, 북한 주민들은 인간 존엄성을 보호하는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들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남한에 어떤 정부가 들어서느냐와 관계없이 북한 주민들이 겪는 인권유린과 그 참상에 눈감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에 맞서 인권을 말살하는 ‘악의 세력’으로 비판받아 온 북한은 자본주의사회 내의 불평등한 인간관계를 비난해 오고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아래 미국과 한국과 같은 자본주의사회에서 더욱 심화해 온 불평등문제와 마약과 도박 등 도덕적 해이 문제는 줄곧 북한의 비판대상이 되어왔다. 결론적으로 조선민주주의공화국이나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대한민국 모두 취약한 인권 보호의 실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이든 북한이든 최상의 가치로서의 인권존중이념을 실천하는 정치적인 의지 없이 돌봄민주주의 체제로의 발전은 어렵다. 남북이 공동으로 추구하는 인권주의 체제를 도입하려면 평등을 중시하는 사회주의자와 개인의 자유를 더 우선시하는 자본주의자가 만나서 대화하고 협상해야 한다. 서로 물어뜯고 싸우는 이 험악한 현실에서 돌봄민주주의가 실현되려면, 먼저 우리의 가치관부터 새로 수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시점에서 나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생각한다. 이를테면 인권 중심의 사회자본주의와 같은 새로운 이념이 필요하다. 인권주의는 <정치발전담론, 2024>의 저자 박한식 교수가 평화체제를 위해 필수적이라고 강조하는 새로운 이념이다.
조안 C. 트론토는 <돌봄민주주의, 2024>에서 돌봄을 제공할 권리와 돌봄을 받을 권리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주장했다. 누구나 평등하게 돌봄 서비스를 주고받으려면 국방의무제와 같은 선상에서 돌봄의무제를 새로 구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대한민국헌법에 따라 만 18세 이상의 남성에게 부여된 병역의무는 국민의 의무로서 보편적 가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노인을 비롯한 장애인 등 취약자를 돌보는 법제화된 의무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본다.
돌봄의무청의 수립
신자유주의 체제 내에서 중산층이 줄어들고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는 가운데 부모와 자식 간 또는 친척과 지인들 사이의 자연스러운 교류가 줄어들고 자연스런 돌봄을 위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인 상호연계망과 대인관계가 무너지고 있다. 서로 아는 사람들끼리도 무관심해지는 개인 중심 사회 분위기 속에서 노인의 고립감은 제도화되어 있다고 보아도 과장이 아니다. 이런 가운데 노인의 고독을 문제시하여 소위 취약계층만을 대상으로 혜택을 주는 선별적 복지프로그램은 오히려 수치스러움을 유발하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영국에서는 혼자서 외롭게 사는 사람들의 사회문제가 심각하여 ‘고독청’이라는 정부 기관을 설립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모방하여 문화체육관광부와 지역문화진흥원이 2023년에 실행한 사업으로서 전국적으로 5개 단체의 ‘연결사회 지역거점 프로그램“을 선정했다. 외로움을 느끼는 주민을 발굴하여 인문문화예술과 상담서비스 등 사회적 연결 기회를 제공하는 일이 이 프로그램들의 주요 목적이다.
나는 한국 정부가 ’고독청‘보다는 ’돌봄의무청‘을 설립하기를 제안한다. 누구나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동료 시민을 보호하는 국민의 의무를 완수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현재 요양원이나 아동보호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취약계층 대상의 근로자는 대개 여성들이고 전문직보다 훨씬 낮은 보수액을 받고 있다. 돌봄 노동직의 급여가 간호사, 의사, 사회복지사 등 전문직보다 낮다는 것은 돌봄노동을 그만큼 가치 있게 보지 않는다는 사회적 동의의 결과이다. 앞으로 인공지능 로봇이 교수,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직을 대체하게 되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직업으로서 돌봄 전문직이 주로 남게 될 것이라는 미래전망이 있다. 현재는 돌봄직종인 요양보호사, 어린이집 교사 등에 대한 처우가 매우 낮은데 전통적으로 여성과 이민노동자 등 비전문직 노동자들이 담당해왔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이 꺼리는 소위 4D (위험하고, 더럽고, 천대시하고, 하기 어려운) 일에 대한 보수가 높아지지 않는 상황에서 취약계층 노동자들이 주로 돌봄노동을 하는 상황을 바꾸려면 돌봄에 대한 가치관부터 변화해야 한다.
돌봄의무제를 통한 평등한 인간관계
자본주의식 물질문명이 창출한 폐해는 전쟁의 위험뿐이 아니라 불평등한 사회체제이다. 돌봄 사업의 운영 면에서 현재 평등한 인간관계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국민 보호를 위한 보편적인 돌봄의무제를 도입한다면 주로 저학력 여성과 이민노동자가 열등한 처우를 감수하면서 그야말로 먹고살기 위해 돌봄직업에 종사하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다. 돌봄의무제 도입으로 모든 유형의 불평등을 한꺼번에 극복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혜택을 받는 기회 면에서 평등한 인간관계를 촉진할 수 있다.
사회주의식 돌봄체제에서는 돌봄 서비스의 질 면에서 그 다양성이 다소 희생될 여지가 있겠으나 누구나 의무적으로 돌봄 서비스를 다양한 방식으로 제공할 기회가 주어질 수 있겠다. 이를테면 모든 성인이 일생에 한 번 원하는 시기에 6개월이나 1년 동안 아동, 노인, 장애인 등 돌봄 수혜자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할 기회를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다. 남녀노소 모든 국민에게 돌봄 서비스를 제공할 기회와 수혜자격이 동시에 주어지는 개념이다. 모든 국민이 의무적으로 서로 돌보고 돌봄을 받는 상호혜택의 개념은 현재 남성들에게만 주어지고 있는 국방의무보다 훨씬 평등한 인간관계 구축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국방의무를 거부하는 남성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공적 서비스로 대체할 기회가 주어진다. 돌봄의무를 거부하는 시민을 위해서도 그에 상응하는 세금이나 대체 공공서비스 방안을 마련할 수 있겠다.
돌봄민주주의를 위한 이념과 상생문화
현재 인류사회는 폭력적이다. 전쟁을 통해 자국의 경제 상황을 개선한 경험이 있는 제국주의 역사를 가진 미국과 일본 같은 나라는 군수산업이 얼마나 큰 이득을 선사하는지 익히 잘 알고 있다. 대한민국도 국방이라는 이름 아래 군사력과 전쟁 무기산업부흥에 앞장서 왔다. 사람을 죽이는 문명에서 사람을 살리는 평화체제로 변화하기는 어렵다. 인간의 생명권과 인권을 존중하는 정신문화의 기반 없이 불가능한 일이다.
민주주의 체제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근본 이유는 인권을 존중하는 정신문화가 파괴적인 물질문명에 맞대응할 정도로 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회민주주의 체제이든 자유민주주의 체제이든 대부분 현대사회에서 인권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독재정권은 오랫동안 인권탄압 면에서 전 세계 국가들로부터 비판을 받아왔다. 그에 못지않게 북한은 미국을 비롯한 서구 문명의 경제적 불평등문제와 퇴폐적인 문화적 약점을 비난해 왔다. 양측 체제 모두 평등과 자유를 균형 있게 구현해오고 있지 못한 현실이다. 사람을 살리고 인권을 존중하는 새로운 이념이 필요하다.
과연 한국 사회는 사람을 살리고 생명을 돌보는데 더 관심이 있는가? 아니면 얼빠진 좀비처럼 제국주의 세력에 아부하면서 사람을 죽이는 문명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가? 돌봄민주주의 실천에 관심이 있는 일반 시민은 이 질문에 먼저 대답해야 한다. 상생과 공존 그리고 언젠가 이룰 한민족 통일을 위해 남북이 공동으로 추구하는 정치적 이념은 인권주의 중심의 사회자본주의이다.
행복추구권을 보장하는 노인보호의무제
한국 사회의 전통적으로 상생적인 정신문화가 보유한 생명보호 원칙은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인간의식을 깨우고 양심세력을 발달시키는 책임과 직결한다.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대한민국에서 헌법은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부모에게는 아이를 돌볼 의무뿐이 아니라 양육권이 주어진다. 양육권은 의무이자 권리이다. 부모로서 자기 아이를 돌볼 권리를 사회적 차원에서 보장받는 것이다. 부모의 의무를 저버리는 비극적인 사례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부모는 아이를 돌봄으로써 행복을 느낄 수 있다. 행복추구권으로서의 양육권이 보장되는 이유이다. 헌법 질서의 최고 가치로 해석되는 제2장 제10조에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 조항이 있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돌봄의 가치를 사회적 차원에서 행복추구권으로 인식하는 것을 돕는 법 조항이라고 볼 수 있다.
성인 인구 모두가 결혼하지 않고, 결혼한 모든 부부가 아이를 가지지 않는 사회에서 많은 수의 노인은 가족관계에서 돌봄을 기대할 수 없다. 설사 자식이 있는 경우에도 요즘 부모가 있는 자녀들은 부모에 대한 기본적인 돌봄조차 하기 어려운 바쁜 생활을 한다. 대부분 현대인은 직장생활과 개인적 삶의 자유에 필요한 시간 이외에 부모를 돌볼 시간을 내기가 어려운 사회구조 속에 살고 있다. 다른 한편 치매 인구의 증가는 세계적 추세다. 특히 우리나라는 고령사회로의 진입 속도가 매우 빨라 향후 노인치매환자는 2040년에는 2백만 명 그리고 2050년에는 3백만 명을 넘기게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치매 노인을 비롯한 모든 노인이 누릴 기본권리로서 돌봄을 받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헌법에 모두가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선언하고 있지만, 실제로 치매노인들과 같이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평등한 대우를 받고 있지 않다.
돌봄을 제공할 젊은 층 인구가 감소하는 초고령사회에서 돌봄의무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치매 노인을 포함하는 취약계층의 인권보장과 학대 방지를 효과적으로 제도화할 수 있다. 병력의무제에 참여함으로써 국민의 보호받을 권리와 책임을 실현하는 것과 같이, 노인의무돌봄제를 통해 노년에 이르러 시민 모두 돌봄을 받을 권리를 국가 차원에서 보장할 수 있다.(출처 : 8월 12일자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컬럼)
* 도영인 전, 우송대 교수 * 이 기고는 <시사앤피플>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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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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