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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주 컬럼] 성선설과 성악설, 하늘로 갈 때 무엇을 가져가야 할까?

이민영 기자 | 기사입력 2023/06/20 [09:09]

[박승주 컬럼] 성선설과 성악설, 하늘로 갈 때 무엇을 가져가야 할까?

이민영 기자 | 입력 : 2023/06/20 [09:09]

 

▲ 박승주 세종로국정포럼 이사장 (전 여가부 차관)   

 

 

[시사앤피플] 이순신 장군은 노량해전에서 맨앞에서 지휘하다가 총탄에 맞아 분연히 전사했다. 최고 지휘관은 통상적으로 안전을 고려해 맨 뒤에 위치하는데, 무엇이 장군으로 하여금 선두에 서서 지휘하게 만들었을까? 곽재우 장군은 의병을 일으켜 많은 전쟁에서 승리하여 명성을 날렸으면서도 나라에서 주는 벼슬을 사양하는 겸양의 자세를 가졌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허위서류를 작성해 공금을 횡령하고, 남이 한 업적도 제 것처럼 내세워 승진하려고 한다. 사람들 사이의 이런 차이는 무엇 때문에 생기는 것일까? 사람이 태어날 때 하늘에서 갖고 오는 성품인 본성의 차이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본성과 관련하여 孟子는 사람은 선천적으로 착하다고 하는 性善說을 주장했고 荀子는 인간은 본래 나쁜 짓을 하려는 성향이 있으므로 교육을 통하여 선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性惡說을 주장했다. 그러나 착한 마음도 물욕에 가려지면 악한 일을 저지르게 되고, 착하지만 인의예지의 덕을 갖추지 못한 사람도 많다. 반면에 순자는 사람은 누구나 이익을 좋아하고 손해를 싫어하기에 만일 있는 그대로의 악한 본성을 따르고 그 욕구를 쫓아간다면 반드시 다툼이 일어나고 사회질서가 어지러워져 혼란을 초래한다면서, 법으로 교화하고 예의로 인도해야 질서가 있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맹자와 순자는 모두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人文學에서 人文이란 사람이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무늬를 말한다. 인성, 인간성이 바로 사람의 무늬인 인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는 죽을 때 무엇을 남기고 가야 하는가? 를 흔히 인문학의 3대 질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세 개의 질문은 사실상 한 개의 질문과 같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출신과 외모를, 사회적 지위를 알자는 것이 아니다. 어떤 성품을 가졌는가? 살아온 과거가 바람직하였는가? 사람으로서 해야 할 도리를 다하면서 살고 있는가? 알아보자는 질문이다. 가치관 중심으로 살았는지, 욕구 중심으로 살았는지를 되돌아보고, 남은 인생 더 가치 있게 살자는 것이다. 왜 그래야 하는가?


여보게, 저승 갈 때 뭘 가지고 가나라는 제목의 책이 있었다. 우리는 사람이 죽더라도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당초의 저세상으로 돌아가셨다고 말한다. 육신은 비록 죽어서 존재하지 않더라도 영혼은 저쪽 세상으로 돌아가서 삶을 계속 영위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저쪽 세상에서의 삶은 어떤 삶일까? 거기에도 신분과 계급이 있고, 경제행위가 있을까?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면 저쪽 세상에서의 삶과 이쪽 세상에서의 삶은 서로 관계가 있을까?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쪽 세상에 있을 때 어떻게 살아야 저쪽 세상에 갔을 때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종교에서는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인문학에서는 사람의 무늬인 인간성을 키우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당초의 저 세상에서 이 땅에 온 목적이 바로 이 사랑을 실천하고 인간성을 높이려는 것 아닐까? 분명히 그럴 것이다. 그래서 모든 종교와 성현들은 사랑을 실천하고 가치관 중심으로 살아가라고 한 것이다. 저 세상에서는 이땅에서 만든 사랑의 크기가 신분이고 계급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삶과 죽음의 관계를 알아야 한다. 삶의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나이와 관계없다. 물리적인 죽음만이 죽음이 아니다. 생을 살아간다고 말하려면 하루하루가 새로움을 느끼면서 의미가 있는 삶이어야 한다. , 살고 있다는 것은 먹고 사는 차원의 삶이 아니라 영적으로 발전하고 있을 때를 말하며, 죽음, 죽었다는 것은 영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단순히 먹고 사는 차원일 때도 죽음이라고 말한다.

 

즉 살아 있다고, 삶을 영위한다고 말하려면 사랑을 실천하여 정신적으로 발전하고 도전하는 삶을 살아야 나는 살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다. 떠밀려 가는 소극적인 삶을 살면서 자신을 정신적으로 발전시키지 못하거나, 육신이 원하는 물질적 욕구와 적당주의에 빠져 의식이 정지상태에 머물러 있다면, 살고 있는 것은 육신뿐이고, 정신과 사고는 죽은 상태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 두 번째 질문,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젊었건 늙었건 적극적으로 젊은 청춘의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쓰이다 간다는 생각에서 주도적으로 일을 만들며 성취동기를 계속 만들어야 한다. 국가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일과 사회와 이웃을 잘되게 하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한다면 그 일의 경중에 관계 없이 기꺼이 나서야 한다. 그러면 세 번째 질문의 답이 나온다. 이 땅에 사랑을 남겨놓고 가는 사람이 되고, 저 세상에서는 사랑의 수준이 계급이기에 신분과 계급이 높은 사람이 된다.

 

* 박승주 세종로국정포럼 이사장(경영학 박사)

* 이 기고는 <시사앤피플>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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