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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옥 칼럼] 풍도(馮道)의 교훈과 무정설법

풍도의 교훈과 무정설법

시사앤피플 | 기사입력 2023/06/28 [20:53]

[강기옥 칼럼] 풍도(馮道)의 교훈과 무정설법

풍도의 교훈과 무정설법

시사앤피플 | 입력 : 2023/06/28 [20:53]

 

▲ 강기옥 본지 문화전문 기자 (시인)    

 

 

[시사앤피플] 언론조차 진보와 보수로 양분된 상황이라 그런지 요즈음의 언론은 조선시대의 당쟁을 생중계하는 듯하다. 상대방의 업적은 무조건 폄훼하고 공격하는 말싸움이 정치 뉴스의 대부분이다. 정치인은 공인이기 때문에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클 수 밖에 없다.

 

작은 실수라도 용납하지 않는 것이 정치판의 속성이기 때문에 일상의 언어도 신중해야 한다. 그래서 후당(後唐) 시대의 풍도(馮道)는 입을 재앙의 문(口是禍之門)'이라는 시로 교훈했다. 상사의 비위에 거슬리지 않게 말조심하여 오조팔성십일군(五朝八姓十壹君)의 전설 같은 실화를 남겼다. 다섯 왕조의 여덟 성씨를 가진 열한 명의 임금을 섬겼다는 뜻이다.

 

口是禍之門 입은 화를 불러들이는 문이요

舌是斬身刀 혀는 자신의 몸을 베는 칼이다

閉口深藏舌 입을 닫고 혀를 안에 감추면

安身處處牢 어디에 머물든 일신이 편안하리

 

자신을 십무낭자(十無浪子)’로 자처할 만큼 부족함을 느낀 풍도는 신중한 언행으로 이를 극복했다. 부도옹(不倒翁)’이라는 세인들의 칭송이 그의 삶에 부합하는 것이기에 정치인에게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실증한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 지도자의 필수조건은 달변이다. 히틀러는 선동적 언어로 독일 국민을 전쟁터로 내몰았고, 케네디는 민주적 언어로 미국민의 자존감을 북돋웠다. 어떤 언어에 매료되느냐는 시대 상황과 그에 편승한 민중의 선택에 달렸다. 무력보다 효과적으로 민심을 움직이는 것이 언어인 만큼 민중은 화자의 속내를 잘 읽어야 한다.

 

소동파가 여산의 고승 상총(常聰) 선사를 찾았을 때 선사는 동파에게 유정설법(有情說法)만 들으려 하지 말고 무정설법(無情說法)을 들으라고 충고했다. 이 뜻이 무엇인지 궁리하며 산천을 헤매던 동파는 계곡의 물소리를 듣는 순간 무릎을 치며 깨달았다. 그때 쓴 것이 오도송(悟道頌)이다.

 

溪聲便是廣長舌 개울 물소리가 곧 장광설인데

山色豈非淸淨身 산빛이 어찌 청정법신이 아니겠는가

夜來八萬四千偈 어젯밤 다가온 팔만 사천 게송을

他日如何擧似人 뒷날 남들에게 어떻게 들어 보일 수 있으랴

 

물소리를 부처님 말씀으로, 산천을 청정법신으로 깨달아 자연 속에서 팔만 사천의 법문을 듣는 희열을 느낀 것이다. 그로 인해 무정설법의 법열(法悅)을 어떻게 세상 사람들에게 전할지 걱정하기에 이르렀다.

 

요즈음엔 무정설법이 없다. 귀로 듣고 눈에 보이는 실체적 언어에서 현상을 구하려 하는 유정설법이 판을 친다. 완곡한 표현은 오히려 공격의 단서가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시문(詩文)의 한 부분만 취하여 제 입맛에 맞게 해석하는 것만 단장취의(斷章取義)가 아니라 상대방의 말 중에서 어느 한 부분을 꼬투리 잡아 공격하는 것도 단장취의다. 직서적으로 바꾸어 말하면 단언취의(斷言取義). 상대방의 말을 가로채 자신의 의견을 사정없이 쏟아내는 행위다.

 

공격적인 언어의 말싸움이나 토론보다는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제대로 해석하는 무정설법의 미학을 확산하면 어떨까. 여기에는 언론의 역할이 크다. 진보나 보수나 아름다운 사회 구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선동적 언론에 풍도(馮道)의 교훈이 생각나는 요즈음이다.

 

* 강기옥 본지 문화전문 기자(시인)

* 이 기고는 <시사앤피플>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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