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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 컬럼] 못나기만 한 인간은 없다

누군가 귀중하게 쓰임 받는 날이 있다

시사앤피플 | 기사입력 2022/09/09 [06:42]

[김영 컬럼] 못나기만 한 인간은 없다

누군가 귀중하게 쓰임 받는 날이 있다

시사앤피플 | 입력 : 2022/09/09 [06:42]

 

▲ 김영 변호사( 전, 전라북도 정무부지사)    

 

 어렸을 적 외모 콤플렉스가 있었다. 다른 형제들보다 유독 얼굴도 안 생긴 데다 몸집도 왜소한 편이었다. 게다가 일곱 살에 입학을 했으니 중학교 1~2학년 때까지 1번 아니면 2번은 내 차지였다. 이 와중에 나를 압박한 것이 하나 더 생겼다. 시골에서는 부자인 줄 알았는데 도시인 전주로 나오니 우리 집은 가난한 편에 속했다. 악바리로 공부에 매달렸던 건 그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일곱 살에 입학했을 때부터 나는 덩치 큰 형들을 피해 먼 길을 돌아서 집에 온 적도 많았다. 일단 피하고 보자는 약자의 심리가 작동한 것이리라.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도, 곱슬머리에 옥니가 있으니 굳센 의지로 잘살 거라는 말도 잠시의 위안일 뿐이었다. 어릴 적 마음 한켠에 있던 열등감은 성인이 되어서도 완전히 지워지진 않았다.

 

장인어르신 친구의 주선으로 처음 아내를 만났을 때에도 키 작은 외모 콤플렉스가 발동했다. 도시적인 이미지에다 늘씬했던 아내에게 첫눈에 반했다. 그녀를 놓치고 싶지 않은 열망이 컸지만 자신이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아내는 서울대병원 간호사라는 직업이 있었고 나는 고시에 합격한 직후여서 아직 돈벌이를 못하는 상태였다. 그리고 2년의 사법연수원 생활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결혼을 전제로 선을 보았지만 나는 사법시험에 합격했다는 것 말고는 갖춘 게 아무것도 없었다. 별말 없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웃던 내게 아내가 말했다.

합리적으로 말씀을 잘하시네요.”

외모 콤플렉스를 말끔히 씻어내는 순간이었다. 외모와 전혀 상관없는 말을 잘한다는 소리에 외모 콤플렉스를 극복했다는 사실은 납득하기가 어렵지만 사실이었다. 누군가 나를 알아봐줬다는 사실이 중요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그 대상이 첫눈에 반해버린 그녀라면 더욱이 말할 것도 없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은 김구 선생을 떠올리고 있었다. 외모에 자신이 없어 관상을 공부한 끝에 좌우명으로 마음이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자고 다짐했다던 백범 김구 선생 말이다. 내가 백범 선생처럼 남을 변호하는 일에 가장 필요한 말을 잘하는 변호사가 되자는 좌우명을 가슴에 새긴 건 그때였다. 변호사는 법 논리로 판사를 설득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하듯 내가 세상을 향해 출사표를 던진 건 아내의 칭찬 덕분이었다.

 

나는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그녀에게 청혼을 했고,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고,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해 지금에 이르렀다. 사실 콤플렉스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외모 콤플렉스로 자신감이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외모는 표면적인 것에 불과한 것이다. 아내 역시 강해 보이는 인상이 콤플렉스라고 한다. 나이를 먹어가다 보니 외모보다는 내면적인 성숙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내가 운동에 중독된 것처럼 열을 올리는 것도 따지고 보면 왜소한 체구 때문인 듯도 싶다. 결국 내 단점을 운동으로 극복하여 건강 체질로 전환한 지금 체력만큼은 젊은이들 못지않다고 자부한다.

 

나는 법무법인 백제의 대표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전주지방검찰청 범죄피해구조위원, 전북 행정심판위원, 전북교육청 소청심사위원, 전북지방변호사회 회장, 전주경실련 공동대표, 전북대학교 총동창회장, 전라북도 정무부지사도 역임했다. 누군가에게는 자랑으로 들리겠지만 자랑이 아닌 치열하게 살아왔다는 자부심이다. 앞으로도 부단히 나를 계발하면서 나의 길을 만들어 갈 생각이다.

 

언젠가 소설가 박범신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그의 소설 촐라체를 주제로 강연했을 때다. 그때 박범신 작가가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나를 키워주고 성장시킨 마음의 동력은 열등감이다. 열등감을 가진 사람이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다른 이의 입을 통해 처음 확인한 순간이었다. 나 역시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하여 줄곧 노력을 해왔기에 깊이 공감하였다.

 

사자성어 가운데 계명구도鷄鳴狗盜라는 말이 있다. 직역하면 닭 울음소리와 좀도둑이란 말인데, 못나고 쓸모가 없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귀중하게 쓰임 받는 날이 있다는 일화에서 나왔다.

 

춘추전국시대에 맹상군이 천하의 인재들을 불러 모으자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곁으로 몰려왔다. 그런데 그중에 좀도둑과 재주라고는 그저 닭울음소리를 흉내 낼 줄 밖에 모르는 사람이 있었다. 천하의 인재를 자처하는 맹상군의 식객들은 학문과 지략이 없는 좀도둑과 닭울음소리 흉내를 내는 사람을 하찮게 여기고 무시하였다. 그러나 맹상군은 그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박대하지 않고 대접해 주었다.

 

어느 날 이웃 진나라왕의 초청으로 진나라로 들어간 맹상군은 큰 위기에 놓였다. 바로 그때 맹상군의 식객이던 좀도둑이 값진 호백구를 구해와 난처한 처지의 맹상군을 도왔다. 닭 울음소리를 잘 내는 사람은 첫닭이 우는 소리를 내 성문을 열게 만들어 맹상군이 탈출할 수 있게 도왔던 것이다. 이렇듯 서로 달라서, 제각각이서 우리 인간은 그 하나하나가 소중한 존재이다. 따라서 존재이유에 그 원인과 결과가 없는 인간의 삶에서 못나기만 한 인간은 없는 것이다.

* 김영 변호사(전 전라북도 정무부지사)

* 이 기고는 <시사앤피플>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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