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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순의 디카시가 있는 수필] 자화상

시사앤피플 | 기사입력 2023/10/30 [06:29]

[오정순의 디카시가 있는 수필] 자화상

시사앤피플 | 입력 : 2023/10/30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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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종일

바람 한 번 잡아보겠다고

손가락 곱는 줄도 모르고

 

                                                       - 작가 강영식

  

[쪽 수필] S는 법을 입안하고, 논문을 쓰고, 전문 서적의 저자이면서 정작 자기 글이 없다. 직장에서 신지식인 1호로 발표되면서 그의 아내는 틈만 나면 글을 쓰라고 남편을 조른다.

 

그가 게으름을 피해가는 말이 있다. 작가는 통찰력으로 허공을 잡지만, 자신은 눈에 보이는 것도 제대로 잡지 못한다고 엄살을 부린다. 그 대신 한번 외운 시는 절대 잊지 않는다. 마치 수도꼭지 틀면 물 나오듯 시가 졸졸 흘러나온다. 번번이 한 자도 안 틀린다. 그의 아내는 시를 이미지화하여 받아들이고 그는 활자로 외운다.

 

강영식 시인의 디카시 자화상을 만났을 때, ‘바람 한 번 잡아보겠다고라는 표현에서 허공을 잡는다는 S의 표현이 오버랩 되었다. 시상이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날의 풍경 같아서 미소를 짓게 된다.

 

늦가을, 털이 다 날아간 억새의 오그라든 모습이 곱은 손이라니, 마치 썰매 타면서 손 시린 줄 모르고 노는 아이들처럼 작업에 심취한 시인의 모습이 그려진다. 동심을 빌린 표현 때문에 나에게 늦가을 억새는 강영식 시인이다.

 

지나다가 곱은 손을 펴 악수도 해보았다. 디카시를 통해서 사람을 만나는 재미는 문자시와 다른 길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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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정순 수필가 / 시인    

 * 오정순 수필가/시인

* 이 기고는 <시사앤피플>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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