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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헌 컬럼] 디지털 기본권과 보편적 복지

시사앤피플 | 기사입력 2024/11/04 [13:46]

[이지헌 컬럼] 디지털 기본권과 보편적 복지

시사앤피플 | 입력 : 2024/11/04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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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헌 디스커스온 대표    

 

 

[시사앤피플] 디지털 시대의 민주주의는 디지털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디지털 민주주의는 투명한 민주주의, 직접 민주주의, 시스템에 의한 민주주의라는 특징을 가진다. 과거의 민주주의는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평등 이념을 형식적으로 보장하는 제도적인 측면에 그친 한계가 있었다. 굳이 한계라고 표현한 것은 위의 세 가지 특징을 살펴보면 더 많은, 더 나은 민주주의의 실질적인 실현이 가능한 시대에 이미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민주주의는 투명하고, 직접적이며, 시스템적인 민주주의다

 

투명한 민주주의는 말 그대로 모든 정부와 공공 부문의 행위가 공개되는 것이 원칙이라는 의미다. 정부, 의회, 법원,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는 물론 공기업과 다양한 공공적 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기관이나 단체는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공기관이다. 이러한 공기관의 활동이 투명해야 함은 당연하다. 활동, 소통이나 기록을 통해 보유한 정보, 활동 수행을 위한 예산 및 결산, 인력에 대한 정보는 대중적인 검증을 거쳐 인정되어야 한다.

 

현재까지도 공적 정보의 상당한 부분이 공개적이지 않다. 이는 정보의 투명성을 실현할 수 있는 충분한 기술적인 수준에 도달한 오늘날에 매우 맞지 않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예외적으로 공공 질서와 사회 안전보장 등을 근거로 하여 비밀에 속하는 정보를 관리할 수 있는 여지를 둘 수는 있겠으나 이 또한 투명성의 원칙 하에서 관리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직접민주주의는 말 그대로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 정치 권력을 행사하는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바에 의하면, 직접민주주의는 국민투표, 국민발안, 국민소환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실제 이것을 경험한 경우는 없다. 관념이나 이론으로는 존재하나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직집민주주의인 것이다. 실제로 많은 인구와 복잡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현대 사회에서 다양한 사회 구성원의 합의를 거쳐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며, 실제 상대적으로 적은 인구 규모의 국가나 집단에서나 가능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과 스마트 기기를 이용하여 모든 사람이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일상을 경험하는 오늘날은 이러한 직접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는 환경을 이미 충분한 수준으로 갖추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현재의 기술과 인프라 수준으로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직접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한다는 명목으로 채택되어온 대의제라는 제도가 민주주의의 걸림돌 역할을 하고 있다.

 

대의제 하에서 유권자는 대표자는 선출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주권을 위임하게 된다. 주권을 위임한다는 명시적인 계약이나 규정 요건을 갖추지 않았음이 분명함에도 선출된 대표자는 사실상 주권 전체를 행사할 수 있는 것이 현재의 대의제 정치다. 과거에 정보의 사회적인 소통과 합의를 만드는데 큰 비용이 들거나 실제 불가능했던 상황에서 만들어진 민주주의에 대한 대의제의 보완이 민주주의에 대한 억압으로 변질된 것이다. 현재의 디지털 기술은 더이상 개인의 권리를 위임하지 않고도 행사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과 환경을 갖추고 있으며 이런 점에서 직접민주주의는 디지털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원칙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시스템 민주주의는 기존에 인적인 요인에 크게 의존해온 공공적 행위나 통치(거버넌스)를 기술에 의해 뒷받침되는 법과 제도로 구조화하는 것을 말한다. 대의제와 함께 민주주의에 심각한 해를 끼치는 문제가 바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문제이다. 특정한 집단이 공공의 정보나 권한을 독점하여 소수의 이익에 전용하는 사례는 너무나 많다. 부정부패, 권력의 사유화와 남용, 정치적 억압 등이 시스템화되지 않은 형식적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한계라고 할 수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특정인이 이러한 상황에서 사익을 추구하거나 타인에게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는 상황에 대해서 실망이나 분노를 가지게 되고, 정치에 대한 불신과 냉소주의가 팽배해져서 오히려 정치 참여 의식이 저하되고 부정한 집단의 권력 장악을 허용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아이러니에 빠지게 된다.

 

디지털 기술에 기반을 둔 시스템 민주주의는 법과 제도를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검증하는 방식으로 실현된다. 주권자인 국민이 법제도의 제안, 내용 구성과 법안 수립, 공표와 집행, 검증과 개선에 완전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동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사회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 등 일체의 법적 기관은 이러한 원칙 하에서 구성과 운영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영향을 최소화하고 사회적 논의와 합의를 거치는 절차를 필수적으로 포함하게끔 하는 것이 필요하다.

 

디지털 기술은 이러한 공공 시스템을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철학, 자원, 경험을 제공한다. 현재의 법과 제도는 이러한 시스템 민주주의 실현과는 상반되는 경우가 많다. 인적인 요소를 최대한 제거하고 주권자의 구체적인 참여를 보장하는 시스템의 기능을 구현함으로써 공동체와 정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보다 본질적인 차원에서 민주주의의 실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민주주의를 위한 디지털기본권이 필요하다

 

이러한 현대 민주주의의 세 측면은 디지털 기본권이라는 대전제를 원칙과 목표로 바탕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현대 사회가 디지털을 기반으로 발전해가고 있음은 무의미할 정도의 상식이다. 그런데 이 디지털 기술이 구체적으로 사회의 기본 구성원이면서 주권자인 국민 개개인에게는 어떤 의미와 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이해나 설명은 부족해 보인다. 이를 분석적으로 생각해봄으로써 디지털 시대의 누구나 가져야할 자격과 권리, 의무 등에 대한 관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자 한다. 이것은 앞서 이야기한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현대적으로, 디지털의 측면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모든 인간은 존엄성을 가진다. 존엄성이란 환경에 대해 주체에게 부여되는 일종의 자격을 의미하며, 디지털 시대인 오늘날 이 존엄성의 대상이 어떤 환경에 대한 자격을 의미하는 지를 정의함으로써 디지털 기본권의 개념을 도출할 수 있다. 또한 민주주의 원칙에 의거하여 현대 사회에서의 자유와 평등 개념을 확장한 디지털 민주주의 구체적인 내용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기본권은 통신권, 정보권, 수익권으로 구성된다. 통신권은 연결의 권리를 의미한다. 모든 사람은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다른 대상(사람이나 기관)에 연결될 수 있는 권리를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 통신의 자유와도 같은 의미이다. 디지털 시대에 통신권이란 모든 사람이 디지털 통신을 행할 수 있는 자원을 제공받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현재는 개인이 비용을 지불하고 시장의 상품으로서 제공되는 통신 자원을 이용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 진다. 디지털 민주주의의 관점에서는 자유를 제한하고 평등하지 못한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돈이 없어서 굶어 죽는 누군가’에 대한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우리의 상식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정보권은 흔하게 접한 ‘알 권리’와 비슷한 개념이다. 그러나 단지 아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자신의 정보를 보호받을 권리와 일정한 조건 하에서 타인의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는 권리의 양측면을 모두 보장하는 개념이다. 개인의 신상 정보, 지식이나 정보 재산, 사회적 관계에 대한 정보를 보호받는 것은 정보권의 수동적인 측면이다. 그리고 이것과 연결하여 개인의 신상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정보, 지식이나 정보 재산에 이익이나 손해를 끼칠 수 있는 정보, 사회적 관계에 변동을 줄 수 있는 정보 등을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정보권의 능동적인 측면이다. 정보권은 이미 헌법적으로 보장된 교육에 대한 권리와도 연결성을 가질 것이다.

 

수익권은 디지털 환경에서의 경제적 이익에 대한 권리이다. 디지털 시대의 산업은 완전히 디지털 기반으로 작동한다. 하물며 농업이나 어업 조차도 디지털 플랫폼 기반의 유통 구조가 없으면 존속될 수 없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현재의 모든 산업의 결과로 만들어지는 경제 가치는 사실상 디지털 환경이 보장하는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을 유지하는 일은 오로지 시장에 의해서만은 불가능하고 상당한 수준의 사회적 인프라와 공공재, 공공적 지원을 전제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공공재의 원천인 공적 부담을 지는 국민들은 이러한 경제 가치에 의한 수익을 보장받지 못한다. 누군가 복지 행정 등으로 반론을 제기할 수 있겠지만 복지와 산업은 이미 규모의 차원이 다르므로 논쟁의 여지가 없다. 자본주의가 시장과 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를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사회적 분배는 이러한 기본 구조에 의해 결정된다는 측면을 고려하더라도, 현대 산업에서 중추적인 생산재라고 할 수 있는 디지털 인프라의 혜택을 받는 시장과 기업이 과연 사회적 기여를 의미있게 하는 지에 대한 문제제기는 충분히 가능하다.

 

이러한 문제제기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회적 분배 모델을 만들 필요가 있으며, 이것이 디지털 민주주의의 관점으로 정의한 수익권이다. 디지털 인프라에 대한 자유와 평등의 원칙은 시장이나 기업이나 개인이나 -동일하게 존엄하므로 -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하고 이것은 경제적 가치에 대한 권리에 대해서도 같다. 이 수익권을 ‘디지털 수익권’이라고 특별하게 지칭할 수도 있겠으나 앞서 말한대로 디지털 기반의 산업 사회에서의 경제 가치의 원천에 대한 전제로 본다면 수익권이라는 용어가 타당할 것이다.

 

개헌을 통한 새로운 민주주의와 보편적 복지

 

디지털 기본권으로서의 통신권, 정보권, 수익권 개념의 도출은 대단히 구체적인 권리 체계의 재구성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이것은 앞에서 설명한 시스템 민주주의와도 밀접하게 관련된 과제이기도 하며, 참여와 개선에 의해 다양한 요소와 관계가 풍부해지는 과정으로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기본권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보편성과 사회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한 출발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디지털 기본권은 헌법적 수준에서 보장되어야 하는 가치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헌법은 한 세대 이전에 만들어진 유물이며,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대증처방식의 짜깁기 조항으로 가득찬 구시대의 상징이다. 헌법의 개정이 필요함은 두 말 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개헌이 변화된 시대와 사회를 반영하는가와 단지 이해관계의 조정을 실행하는가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당연하게도 시대에 적합한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는 수단이자 원칙으로서의 디지털 기본권이 헌법에 포함시키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오늘날 국민들의 삶과 생활에서 디지털을 떼놓을 수 없는 것처럼,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가 주권자의 삶과 생활을 실질적으로 반영하도록 하여 민주주의의 근본 가치인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도록 하는 역할을 반드시 수행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디지털 기본권 운동이 필요하며, 개인, 기업, 단체, 다양한 사회 조직 등에서 수행할 수 있는 활동 계획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것은 디지털 민주주의에 바탕을 둔 시민사회 운동의 발전 측면으로서의 의미가 있으며, 동시에 정보사회의 고도화에 대한 사회 전체의 적극적인 대응, 디지털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시민주권의 강화로서의 의미를 가질 것이다.(출처 : 복지국가소사이어티 4일 컬럼)

 

이지헌  디스커스온 대표

* 이 기고는 <시사앤피플>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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