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접경지의 지정학적 이해관계 충돌 탈냉전시대의 여타 전쟁과 달리, 우크라이나전쟁은 에너지와 식량 등의 資源 보유 강국간의 전쟁인 만큼 세계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컸다. 서방의 전방위적 對러시아 제재는 지상전과 함께 즉각 경제전쟁이 병행되었다. 단기전의 예상과 달리, 간접참여의 미국·유럽과 러시아 간의 총력적 ‘대리전(Proxy War)’ 양상이 되면서 장기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는 침공의 명분을 우크라이나의 ‘非무장화·非나치화· 중립화’로 내세우면서 전쟁이 아닌 ‘특수 군사작전’이라고 불렀다. 소련의 아프카니스탄 침공 때에도 ‘아프카니스탄 인민을 위한 군사작전’이라고 한 바 있다. 모두가 침공의 명분이 약하기 때문이다. 특히, ‘네오 나치(neo-Nazi)’로부터 우크라이나를 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누구의 지지도 받을 수 없었다. 직접적으로는, 친서방 우크라이나 정권이 내보이는 나토(NATO) 가입과 같은 對러시아 안보 위협을 제거하고, 우크라이나에서 탄압받는 친러시아 주민들을 해방, 독립시키는 목표를 전면에 내세웠다. 침공 초기의 목표 달성의 실패로 장기전이 되면서, 돈바스 지역의 장악을 넘어서서 흑해와 맞닿은 거점지역 오데사를 포함한 우크라이나 남부 지역 전체를 통제하에 두려는 ‘영토적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이를 통해 발칸으로 가는 길목인 몰도바까지 연결함으로써 흑해를 완전히 러시아의 內海化하고, 우크라이나를 내륙국가로 약화시키겠다는 야욕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차제에 2014년에 강제 병합당한 크림반도까지 수복하겠다고 저항 의지를 높이고 있어 장기전은 불가피해 보인다. 러시아의 전쟁 명분과 달리 전쟁 발발의 근원은, 유럽과 유라시아간의 접경지에서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오던 강대국간 지정학적 이해관계의 충돌로 봐야 한다. 푸틴의 정치적 스승이자 전략가이면서 우크라이나 공략의 설계자로 알려진 알렉산드르 두긴의 ‘러시아 우선주의’와 과거 ‘러시아의 영광 회복’을 주장하는 민족주의에 푸틴은 심취하였다. 따라서, 단순히 우크라이나 동남부의 영토 10~20%를 차지하면서 친러정권 수립의 욕망에 그치지 않고 ‘유라시아주의’를 구현하려는 대전략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
▲ <보기> 녹색 지역 : 몽골의 침략 이래 유럽과 유라시아 세력 간의 경계지역으로 늘 강대국간의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충돌해온 heart-land.
국제적인 전략가 브레진스키는 일찍이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지정학적 요충지로 우크라이나, 아제르바이젠, 터키, 이란, 한국을 지목한 바 있다. 존 미어샤이머는 세계에서 지정학적으로 가장 불행한 국가로 폴란드와 한국을 든 바 있다. 러시아에게 유라시아의 접경지역은 양보할 수 없는 지정학적 요충지이다. 특히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몰도바, 조지아는 유럽과 접하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이곳에서 ‘현상 변경’이 시도되면 전쟁이 불가피한 것으로 러시아는 공언해왔다. 일종의 ‘레드 라인’인 것이다. 제정러시아의 유럽 경계선은 발트해의 에스토니아, 라트비아로부터,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조지아, 아제르바이젠으로 이어져 있었다. 부동항을 찾아 나섰던 남진정책은 지금도 유효하다. 크림전쟁(1853~1856년) 당시 유일한 부동항 세바스토폴에서의 치열했던 전투는 물론, 1979년의 소련의 아프카니스탄 침공시에도 ‘따뜻한 인도양에 군화를 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남쪽으로 향하는 열망이 숨어있었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시발이 된 2014년의 크림반도 강제 병합과 현재의 전쟁으로 이어지는 것도 흑해로의 진출 거점을 확고하게 지키려는 것에서 나타나고 있다. 크림반도는 신이 러시아에게 선물한 최고의 지리적 ‘패’로 불리기도 한다.
러시아의 전쟁 초기 실패와 교착상태의 전황 대부분의 전쟁은 ‘오판’에 의해 일어나고, 오판으로 곧잘 전혀 다른 결론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푸틴의 전쟁’도 치밀한 준비에도 불구하고, 오판에 의한 초기의 처절한 실패를 경험했고, 전쟁은 현재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무엇 보다 우크라이나의 강력한 저항과 젤렌스키의 지도력, NATO를 비롯한 서방의 단결, 서방의 경제계와 민간인들의 일치된 對우크라이나 지원 의지, 에너지 무기화를 통한 유럽의 분열 시도 등에서 오판했다. 러시아의 정보력과 러시아군의 역량에 대한 과신이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침공 초, 수도 키이우(키에프)를 최대한 신속히 점령해 ‘정권 교체’를 통해 전쟁의 조기 종결을 기하고자 하였으나, 키이우와 하르키우 두 도시 공격은 실패했으며 자진 철군이 이어졌다. 이후, 상대적으로 성공을 거두어온 동남부 지역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변경되었다. 개전 6개월이 경과한 현재 남부의 루한스크지역 전체, 헤르손지역의 대부분, 도네츠그와 자포리아 지역의 절반을 점령한 상황에서, 양측은 전쟁 수행 능력 의 저하와 함께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 <보기> 자료: 블룸버그, ‘22.8.9 1. 검은 사선 부분 : 전쟁전 러시아 점령지(돈바스와 크림반도): 영토의 10% 2. 분홍색 지역 : 침공 후 신 점령지역(헤르손, 자포리아 지역): 영토의 10% 3. 노란색 부분 : 우크라이나의 반격에 따른 탈환지역
러시아의 당면 전략은, 상기 4개의 점령지역을 크림반도 강제 병합 때처럼 신속히 합병함으로써, 서방의 지원 의지를 꺾음 동시에 전쟁을 신속히 끝내는 데 있다. 점령지 일부에서는 이미 현지 주민을 상대로 러시아식 행정제도를 도입하는 등 ‘러시아화(Russification)’가 진행 중에 있다. 점령지 합병은 러시아 영토가 됨을 의미하며 우크라이나군이 이 지역을 공격할 경우, 러시아 본토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강력 대응한다는(필요시 핵 공격 포함) 일방적인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점령지를 안정적으로 유지 관리하려면, 손상된 러시아군의 재편성과 군비 보강 등 군 역량 강화가 전제되어야 하며, 시간 벌기가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당연히 우크라이나는 합병이나 휴전을 수락할 의사가 전혀 없다. 오히려 2014년에 상실한 크림반도까지 되찾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일 정도이다. 우크라이나군에게도 반격을 위한 역량 강화용 ‘시간 벌기’의 기회가 주어질 것이기에 러시아 합병전략의 성공 여부는 두고 볼 일이다. 만일 러시아 전략이 성공한다면 우크라이나는 영토의 20%를 잃게 되는 큰 패배를 의미한다.
김재효 동북아공동체문화재단 부이사장
* 이 기고는 동북아공동체문화재단 8월 26일자 특별기고로써 <시사앤피플>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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