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옷 입은 놈 큰 날개만 달린 놈 삐쩍 마른 놈은 실속 없어
이틀이나 굶었는데 이게 웬 떡이야
ㅡ 작가 조영래
[쪽 수필] 한국 여성문학인회 행사 차 남산 문학의 집으로 가는 길이다. 7호선에서 3호선으로 환승하기 위해 고속터미날 역을 지나는데 내가 찾는 티셔츠가 매장에 헐값에 걸려 있다.
이 것을 만난 것이 운수대통인데 검정비닐에 둘둘 말아준다. 잘 차려입고 행사에 가는데 검정 봉다리가 조금 거슬린다.
작아져라작아져라 하며 부피를 줄이다가 장의자에 앉아 차량을 기다리자 하니, 신사 한 분이 바시락거리더니 쇼핑백 속의 물건을 가방에 넣고 그 쇼핑백을 쓰레기통 위에 얹어놓고 문 열린 전철로 뛰어든다.
뒤이어 전철은 미끄러지듯 사라지고 그제서야 나는 일어나 그 쇼핑백을 들고 와 내 물건을 넣으려는데 그 안에서 영수증과 봉투가 보인다. 오만원 권으로 물건을 사고 거스름 돈을 받아 급한 김에 가방에 투척하고 와서 그만에 잊어버린 모양이다.
나는 멍하게 배추색 지폐를 석장이나 챙겨들고 구겨지지 않은 쇼핑백에 내 물건을 넣었다. 다음 전철을 타고 문학 행사장으로 가는 내내 실실 웃음이 흘러나온다. 내가 운을 따라 간 것이 아니라 운이 나를 불러 들였으니 거미보다 더 운수 좋은 날이다.
거저 생긴 돈은 써도 아깝지 않다. 그날의 커피 값은 내가 냈다. 알 수 없는 게 운이라는 것.
* 오정순 수필가 / 시인 * 이 기고는 <시사앤피플>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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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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