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앤피플] 인류는 제2차 세계대전(1939년-1945년) 이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중동전쟁(1~4차), 아프가니스탄전쟁 등 크고 작은 전쟁이나 분쟁을 경험했지만, 그나마 큰 전쟁이 동시에 일어나지 않아 80여 년 동안 평화로운 시대를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우크라이나·러시아전쟁 중에 이스라엘·하마스전쟁이 발발하면서 인류는 제5차 중동전쟁에 이어 제3차 세계대전 확산까지 염려하는 불안한 상황을 맞고 있다.
1948년 UN 창설 이후 지금까진 미국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주도적으로 전쟁이나 분쟁을 막아왔다. 그러나 이젠 전 세계 곳곳에 한반도 같은 위험요소가 도사리고 있는 상황에서 두 개의 전쟁까지 동시에 터져 미국이 감당하기 힘들게 됐다. 미국이 어느 한쪽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작년 2월 우크라이나·러시아전쟁 이후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재정 지원은 군사, 경제 및 인도주의적 지원을 포함해 모두 1130억 달러(약 150조원)에 달한다. 웬만한 국가 1년 예산이다. 그런데 10월 현재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할 수 있는 남은 재정은 우크라이나 2개월 치 전쟁 비용에 해당하는 54억 달러밖에 안 된다.
지난 7월 의회에 요청한 우크라이나 지원 내년예산 240억 달러도 언제 반영될지 불확실하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하마스전쟁까지 터져 이스라엘에도 지원해야 하는 바이든 행정부가 급기야 지난 12일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를 묶어 20억 달러(2.7조원)를 지원하는 ‘패키지 예산’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스라엘·하마스전쟁이 악화되면서 이스라엘 지원 필요성이 커지자 의회에 발이 묶인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도 함께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하원의장 공석으로 어떤 법안도 처리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미국 정가에선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4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면 우크라이나를 버릴 수 있다”고 언급하자, 바이든 대통령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휴전 협상에 들어가도록 압박할 것이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점점 발을 빼고 있다는 증거다.
문제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도 서서히 발을 빼고 있다는 점이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산 곡물 수입을 금지하겠다고 밝히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중단 가능성을 언급했고, 슬로바키아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철회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최근 이스라엘·하마스전쟁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관심과 무기를 이스라엘로 돌릴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미국이 두 개의 전쟁을 지원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미국이 우크라이나 지원을 줄이고 이스라엘 지원에 힘을 쏟을 때 러시아가 더 적극적으로 우크라이나를 공격한다는 점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스라엘·하마스전쟁이 일어날 것을 예상이라도 했는지 전쟁 전에 서방이 군사 및 경제지원을 중단하면 “우크라이나는 1주일이면 끝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러시아군에 10월 말까지 우크라이나 대도시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실제 러시아는 이스라엘·하마스전쟁이 일어난 이후 지속적으로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
러시아는 현재 이스라엘·하마스전쟁을 매우 우려한다면서 중동평화와 안정을 위해 중재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스라엘·하마스전쟁이 더 확산될 경우 미국의 관심이 중동지역으로 쏠리는 틈을 타 푸틴 대통령 말대로 우크라이나를 1주일 만에 점령하겠다는 속셈이다. 즉 러시아가 장기적으론 중동평화를 주장할지 몰라도 단기적으론 이스라엘·하마스전쟁이 더 확산되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어제(18일) 베이징에서 열린 '일대일로 정상 포럼'에서 시진핑 중국 주석을 만나 무려 5시간 동안 공식 중·러정상회담과 일대일 단독회담을 가졌다. 단독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에게 중국의 대만 공격을 눈 감아 줄 테니 중국이 중동평화 중재를 하되 적당히 시간을 두라고 부탁했는지 모른다. 그 틈을 타 우크라이나를 점령하겠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다.
만약 시진핑 주석이 푸틴 대통령의 부탁을 들어 이스라엘·하마스전쟁에 시간을 끌며 중동평화 중재에 비협조적일 경우 미국은 중동에서 힘든 싸움을 해야 한다.
중·러정상회담 후 푸틴 대통령은 이스라엘·하마스전쟁에 대해 "가자지구 병원에 대한 폭격은 재앙이며, 이는 분쟁을 멈추라는 신호라고 강조하면서 이번 분쟁이 더 이상 악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즉 중동평화만 언급했지 이스라엘을 공격하진 않았다.
그러나 시진핑 주석은 하루가 지난 지금까지도 아무 말이 없다. 두 정상은 이스라엘·하마스전쟁 관련 공동 기자회견을 하거나 공동 성명서를 내지도 않았다. 이는 두 정상 간에 모종의 비밀 전략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장시간 정상회담을 하고 있을 때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을 방문해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만났다. 이스라엘에 대한 연대를 표하고 미국의 지지 입장을 재확인시켜주기 위해서였다. 특히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포기했으면 했지 중동에서 확실한 거점이자 가장 든든한 우방인 이스라엘만큼은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보여준 것이다.
미국은 지난 9월 초 중동평화를 위해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수교 협상의 큰 틀을 가까스로 만들었다. 그런데 최근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스라엘과의 수교 협상을 중단했다. 이스라엘이 하마스에 대해 대대적인 공격을 가하자 아랍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스라엘과 계속 수교 협상을 이어가는 데 큰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다. 결국 중동에서 미국의 입지가 줄어든 셈이다.
만약 중동에서 이스라엘·하마스전쟁이 더 확산돼 미국이 중동에 올인하고 있을 때, 북중러가 동맹을 결성하여 북한은 대한민국을, 중국은 대만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목표로 동시에 공격한다는 시나리오도 우리 정부가 염두에 둬야 한다. 말도 안 되는 추측이라고 여길지 모르나 전쟁은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발생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미국은 당연히 한미일 군사협약에 의해 우리나라를 지원하겠지만, 만약 한반도 전쟁이 우크라이나·러시아전쟁처럼 장기화되고 중동에서 동시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미국의 우선 지원 대상국은 우리나라가 아닌 이스라엘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우리 정부가 최근 두 전쟁을 바라보며 우리나라가 지정학적으로나 국제정치학적으로나 우크라이나를 닮았다는 점을 직시하면서 새로운 외교안보전략도 세워야 한다.
* 김삼기 작가/컬럼니스트 * 이 기고는 <시사앤피플>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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