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컬럼] 기부와 나눔, 변하지 않는 부(富)의 철학적 가치소외된 이웃에 대한 따뜻한 마음과 관심을 잃지 말자재산이 어느 정도 있어야 부자(富者)라 할 수 있을까? 현재 기준에서 10억 원 이상의 금융자산이 있거나 연 가구 총소득 1억 원 이상을 부자로 보는 통계도 있지만 실제로 이러한 기준으로 부자를 구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부자라는 개념은 분명한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는 상대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부유할 부(富)자를 파자해보면 부(富)란 움막을 뜻하는 갓머리 부수를 사용하여 집 안에 밭(田)이 있다는 뜻이다. 문자가 만들어지기 전 선사시대 관점에서 사냥이나 채집(採集)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부유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처럼 부자의 기준은 가변적이지만 변하지 않는 부(富)의 철학적 가치도 있다. 프랑스와 영국 등에서는 “귀족은 책임을 갖는다”는 의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표현을 통상적으로 사용하였다.
진정한 의미의 귀족이라면 전쟁과 기근 등으로 나라가 위기 상황이 되었을 때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고, 이웃들의 형편을 살펴보고 그들이 곤궁에 빠지지 않도록 돌보는 것을 응당 그들이 가지고 있어야 하는 사회적 책임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고(故) 이건희 회장이 취약계층을 위해 기부한 내용을 확인하는 것으로 생일선물을 대신했다는 일화와 국회의장 시절 무엇보다 먼저 국회 환경미화원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킨 정세균 전 총리가 남모르게 소외된 이웃을 위해 꾸준한 기부를 이어왔다는 일화 등이 조용히 회자되고 있다.
어느 사회에서나 영향력 있는 부자와 리더들은 그들이 나누었던 재산의 크기가 아니라 시의적절하게 소외된 이웃과 함께 고통을 나누었던 선한 뜻과 일관성 있는 나눔의 습관으로 기억되고 있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최근에는 중산층의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사회적 책임은 특정한 사람이 아닌 그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 모두에게 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굿윌스토어, 아름다운 가게 등 비영리 단체를 통한 물품 기부가 활성화되고 시간이 갈수록 그 외연이 확대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인식의 전환 때문이기도 하다.
NGO뿐 아니라 대학에서도 교육의 기회균등을 위한 학교발전기금을 모금하고 있는데 얼마 전 전주대, 전남대 등 대학 소속 환경미화원들이 뜻을 모아 학교발전기금을 기부한 것이 화제가 되었고, 연세대에서는 코로나19로 위축된 미래세대 교육을 활성화하기 위해 혁신적인 방식의 유산기부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하였다.
코로나 19라는 재난 속에서도 취약계층과 미래세대를 위한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 아직도 희망이 있다는 방증(傍證)이기도 하다. 하지만 외출할 때 마스크를 쓰는 것이 일상화되었고 이웃과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올바른 생활양식으로 여겨지고 있는 팬데믹(Pandemic) 상황이 지속되면 예측할 수 없는 불안이 증가하면서 사회적 관심도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은 조심스럽게 서로에 대한 물리적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모두가 함께 선한 뜻을 모아야 하는 국가재난의 시기이다. 코로나19라는 전염병 차단을 위해 물리적 거리를 두는 것은 모두에게 유익한 일이지만 이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소외된 이웃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세월이 지나서 코로나19 상황을 되돌아볼 수 있게 되었을 때, 모두가 힘든 상황 속에서도 소외된 이웃에 대한 따뜻한 마음과 미래세대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리지 않았다고 자부할 수 있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국민 모두는 역사에 남을 위대한 사람들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박상준 걱정은행 작가(목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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