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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옥의 시 감상] 최병희 시인의 「낭만의 색을 찾아서」

강기옥 문화전문 기자 | 기사입력 2023/02/06 [18:56]

[강기옥의 시 감상] 최병희 시인의 「낭만의 색을 찾아서」

강기옥 문화전문 기자 | 입력 : 2023/02/06 [18:56]

낭만의 색을 찾아

                                      시인 최 병 희

 

제주 섭지코지에 반해

이젤에 화지를 걸친 폼이

걸망스럽다

 

먼저

물로 하늘을 입힌다

 

해안 따라 코발트 블루에 보랏빛 순비기나무

넓은잎 털머위, 목덜미 삐죽한 사구들의 까만 실체들

일 출몰 바닷가 이어지는 파릇파릇한 이끼 갯바위들

반기는 오름 지기들까지 표정들의 절경이 다채롭다

 

어쩜,

한가롭게 풀을 뜯는 언덕의 말

평화롭고 아늑하기까지

파도가 지형의 아픈 상처 쓰다듬는 연륜에

암석 파편의 고난들

용암과 화산재 응해암, 날카롭게 벋은 기암괴벽

마그마 분출파도의 통로 사라진 분석구들

해변 따라 길게 늘어진 산책로 하얀 등대 성산일출봉

 

지금에야 애닲음은 사라지고

고난의 아픈 상처

널 지극히 아끼고 사랑한다는 걸

푸른 물결 흰 포말로 선돌바위 자랑에 우뚝 해

오름 지에 흐드러지게 뽐내는 제주 섭지코지

멋스런 낭만의 색을 찾아

수채화에 담는다

 

 

최병희 시인    

 

 [강기옥의 시 감상] 시든 수풀이든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를 드러내는 일이다. 삶 속에서 깨닫고 느낀 가치나 감동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큐비즘을 적용한 피카소의 그림이나 원교 이광사, 추사 김정희의 필치에서 그들의 삶을 읽을 수 있는 것은 글이 그 사람이라는 의미의 예술적 확장이다.

 

어느 수필가는 그의 자전적 수필집을 출간하고 고위층에 있는 동생과 싸워 등을 돌렸다. 감추고 싶은 가족사까지 속속들이 썼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만큼 진솔한 이야기를 쓰고 싶은 본능이 있지만 일반인은 자기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그래서 짧은 시 한 편에서도 그 사람의 직업이나 취미, 생활환경 등을 읽을 수 있다.

 

위 시  에는 최병희 시인의 삶이 잘 나타나 있다. 아마추어든 전문작가든 상관없다. 눈앞에 전개된 제주도의 풍광을 하나 하나 그림으로 그리는 과정을 따라가기만 하면 한 폭의 그림 같은 시가 남는다.

 

시는 대부분 설명보다 묘사의 방법을 사용한다. 시적 대상을 그대로 그려내기 위한 회화적 기법을 위해서다. 묘사에만 치우치면 시상의 전개가 느린 단점이 있으나 세밀한 정감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다. 특히 회화적 시에서 많이 사용하는 기법인데 최병희 시인도 회화시답게 낭만의 색을 찾아서라는 제목에서부터 묘사적 전개를 암시했다.

 

일상이 용어인 낭만에 미적인 색을 곁들여 독자를 민감한 회화의 세계로 끌어들이기 위한 수법이다. 그래서 과감하게 1연에 화구를 지니고 제주도를 찾은 자신의 모습을 걸망스럽다고 제시한다.

 

걸망은 걸머지고 다니는 바랑을 뜻하는 명사지만 걸망스럽다는 사전에 없는 용어다. 여기에 ‘~하다가 붙어 걸망하다로 파생하면 어른스럽다는 뜻의 방언이다. 이를 경상도에서는 걸망시럽다라고 한다.

 

 

이로 보면 제1연은 이젤과 화지를 걸망처럼 걸친 최병희 시인이 제주 섭지코지에 반해찾아온 장면을 제시한 것이며 2연은 그림을 그리는 장면의 묘사다3, 4연은 제주도에 대한 다양한 상식과 지식과 풍광 등이 나타나 난다.

 

필자도 제주도에 미쳐 90년대에 제주도를 무수히 방문했으나 이렇게 세세하게 살피지는 못했다. ‘코발트 블루’ ‘순비기 나무’ ‘털머위’ ‘목덜미 삐죽한 사구들’ ‘파릇파릇한 이끼 갯바위들’ ‘오름의 표정들이 연출하는 표정들의 절경을 잡아내지 못했다. 제주도민만이 쉽게 알 수 있는 풍광을 제시한 것으로 보아 제주도에서 거주하지 않았나 싶다.

 

최병희 시인의 제주도 연유설은 5연을 통해 알 수 있다4.3 항쟁의 아픔이 가장 큰 한으로 남아 있는 제주도. ‘지금에야 애닲음은 사라지고/고난의 아픈 상처회복한 널 지극히 아끼고 사랑한다는것은 제주도의 역사와 민심을 잘 알고 있다는 증거다.

 

더구나 푸른 물결 흰 포말로 선돌바위 자랑에 우뚝 해라며 자랑스러운 매개물로 시상의 전환을 꾀하는 능력은 제주도를 손바닥 보듯 꿰뚫고 있어야 가능하다. 시의 출발점으로 되돌아와 제주도의 자랑으로 시를 맺는 수미상관의 맺음으로 인해 시와 그림의 경지를 초월한 크로스 오버(cross over)의 경지를 보였다.

 

섭지코지는 제주도의 자랑이다. ‘섭지는 재사(才士)를 많이 배출한다는 뜻, ‘코지는 곶을 뜻하는 말이니 인재가 많다는 양재(良才)동과 같은 의미다.
 
그래서 섭지코지가 자랑스러운 것이다. 섭지코지에서 시를 시작하고 맺은 것은 제주도의 풍광 못지않게 인재가 많다는 최병희 시인의 속뜻이 숨어 있다. 섭지코지에서 멋스런 낭만의 색을 찾아/수채화에 담는다는 마무리가 그 옛날 제주도를 찾던 추억이 떠올라 잔잔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강기옥 문화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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