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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옥의 시 감상] 쪽방으로 이사한 달

하종우 시인 '쪽방으로 이사한 달'

강기옥 문화전문 기자 | 기사입력 2023/03/24 [22:57]

[강기옥의 시 감상] 쪽방으로 이사한 달

하종우 시인 '쪽방으로 이사한 달'

강기옥 문화전문 기자 | 입력 : 2023/03/24 [22:57]

쪽방으로 이사한 달

                                          시인  하 종 우

 

고층 건물 사이를 비집고 살다가

쫓겨난 달은

그의 고장 달동네를 이사하여

잘 산다.

 

담장도 커튼도 없는 달동네

쪽방 창틈으로 몰래 숨어 들어와

가난과도 행복하게 동침을 청한다.

 

달은

홀로인 쪽방 할아버지의 마른 가슴

따뜻이 보듬고 누운

할머니가 되어.

 

 

하종우 시인의 시집    

 

 [강기옥의 시 감상] ‘잘 산다~ 산다.’는 같은 말이지만 그 의미는 큰 차이가 있다. 흔히 말하는 잘 산다는 물질적으로 빈곤하지 않은 윤택한 삶을 말하고 ~ 산다.’는 경제적인 부와 관계없이 모든 일에 만족해하며 넉넉한 여유를 즐기는 삶을 말한다.

재력가의 후손들이 벌이는 이권 싸움을 왕자의 난이라 하지만 피보다 돈을 앞세우는 그들을 왕권 시대의 권력투쟁으로 보도하는 심리에는 시기 반 부러움 반의 심리가 내재해 있다. 부친의 시신이 식기도 전에 빈소에서 재산싸움을 하는 장례예식장의 풍경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즈음에 하종우 시인의 시집 서울 참새는 이 시대를 사는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따스하게 제시한다. 잘 살기 보다는 잘~ 사는 가치의 아름다움을 제시하는 그의 시들은 동양적 여백의 미와 기독교적 사랑이 혼재된 참된 삶의 의미를 은은한 서정으로 펼쳐 놓는다.

 

건물 사이에서 쫓겨난 달은 일상의 소시민을 상징하여 가난에 찌든 이들의 아픈 생활을 예단하게 한다. 계급사회의 양반 귀족에게 밀려난 상민의 삶이요, ‘·멕시칸·유색인종 출입 금지라는 입간판을 내세우며 인종을 차별하던 미국 하층민의 설움까지 대변한다.

 

그래서 쪽방으로 이사한 달은 부의 상징인 고층 건물달동네쪽방을 대조시켜 시의 주제를 강하게 암시한다. 빈곤층과 부유층의 대조적인 삶을 길게 전개할 수 있는 서사적 특징을 지녔으나 하종우 시인은 따듯한 삶의 잘~ 사는 이야기로 압축했다. 311행의 짧은 글 속에서 소설과 같은 구조를 상상해낼 수 있는 묘미가 곧 이 시의 특징이다.

 

쪽방으로 이사한 달이 시선을 끄는 것은 누구나 쉽게 목격할 수 있는 일상을 통해 긴장된 감정을 유발하게 하는 소재의 선택이다. 막연하게 달동네로 쫓겨난 달을 잘 산다.’는 한 행의 서술어로 처리한 것이 독자를 궁금하게 하는 앙큼한 매력이다.

 

그곳에서 쫓겨나 달동네 신세를 져야 할 주인공을 잘 산다고 한 것이 궁금증을 증폭하게 하는 역설이다. 그러고는 2연에서 담장도 커튼도 없는 달동네/쪽방 창틈으로 몰래 숨어 들어와/가난과도 행복하게 동침을 청한다.’담장도 없고 커튼도 없는지극히 가난한 대상을 제시한다. 그렇게 어려운 상황을 점층적으로 고조시켜 놓고는 가난과도 행복하게 동침을 청한다.’며 결기 있는 능청을 떤다.

 

물신주의를 벗어난 노장사상과도 같은 여유와 현실에 적응하는 적극적 행위로 시상의 반전을 일으킨다. 가난과 행복하게 동침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빌딩 사이에서 쫓겨난 것이 아닌가 하는 궁금증을 유발한다. 그러나 이는 곧 박애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선택한 자신의 삶을 고백한 것이다. 다문화 가정을 위해 봉사한 목사로서의 삶이 시 속에 녹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연에서는 푸근한 할머니로 등장한다. 스스로 찾아든 달동네, 하종우 시인의 달동네는 어려운 사람들이 사는 곳이 아니라 달이 찾아가 봉사하는 마을이다. 시인이 스스로 달이 되어 봉사하며 사는 동네, 즉 하종우 시인이 사는 마을이 달동네다. 그곳에는 사랑과 자비와 봉사의 따뜻한 섬김이 있다. ‘홀로인 쪽방 할아버지의 마른 가슴/따뜻이 보듬고 누운/할머니가 되어.’ 마른 가슴들을 어루만지는 봉사자로서의 사랑이다.

 

시인은 신이다. 시인, 시인, 시인을 빠르게 반복하면 신이 된다. 그래서 신과 시인은 동격이다. 절대적 사랑을 베푸는 시인으로서의 신, 그의 시집에는 신과 같은 사랑으로 봉사하는 아름다운 정신이 살아 있다. 빌딩 숲에서 쫓겨난 달을 다시 그 숲 사이로 되돌려 보낼 필요를 느끼며 그의 시 세계에 침잠해 본다. 내 마른 가슴에 비치는 그 누군가의 달빛에 감사하면서.

강기옥 문화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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