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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옥의 시 감상] 쉰의 벤치

<쉰의 벤치> 전애희

강기옥 문화전문 기자 | 기사입력 2023/04/13 [10:48]

[강기옥의 시 감상] 쉰의 벤치

<쉰의 벤치> 전애희

강기옥 문화전문 기자 | 입력 : 2023/04/13 [10:48]

쉰의 벤치

                                                   전애희 수필가

 

마흔 아홉/내일이면 쉰 살이 된다.

갑자기 발등으로 뱀이 지나가는 느낌이다.

후략-

 

쉰 살이 되면/뾰족한 생각이 둥글둥글해질까

쉰 살이 되면/불꽃 같은 사랑을 꿈꾸던 환상이 식어질까

쉰 살이 되면/어둠 속에서도 지혜를 발견할 수 있을까

쉰 살이 되면/원수 같은 한을 씻을 수 있을까

쉰 살이 되면/꼬드김에 넘어가지 않을까

쉰 살이 되면/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쉰 살이 되면/생존을 끌고 가는 개미의 속뜻을 알게 될까

쉰 살이 되면/백 년 묵은 느티나무처럼 의연해질 수 있을까

쉰 살이 되면/거룩한 신의 뜻을 알 수 있을까

 

세대교체라는 미명하에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나이

경쟁 속에 시달리다 진급에서 탈락하는 나이

성에 대해 초조해지는 나이

애틋함에 둔해져 몸 전체를 봉해버린 듯한 느낌이 드는 나이

허락 없이 뱃살이 찌는 나이

뒤집힌 바퀴벌레처럼 불면에 시달려야 하는 나이

에스컬레이터의 손잡이를 잡아야 하는 나이

틈틈이 화장기를 고쳐야 하는 나이

눈이 와도 그저 오나보다 하는 나이

전철에서 빈자리 없나 두리번거려야 하는 나이

그만 살 나이도 아닌데 불현듯 사는 게 뭔지 물어보는 나이

캐스팅하지 않은 긁힌 복권처럼 짓밟히는 나이

그 나이 듦에 대하여

 

[작품 감상] 평균수명이 늘고 기대 수명도 연장되면서 사람의 나이를 분별하기가 참 어려워졌다. 50대가 40대로 보이고 심지어 60대도 40대로 보인다식생활 개선으로 인한 영양 섭취와 의학·약학이 발달한 덕분이다그래도 그 나이 듦에 대하여’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평균수명이 61세든 83세든 마찬가지다세월에 대한 감회는 예나 지금이나 공통된 느낌으로 표현한 시가 많기 때문이다.

위 시 <쉰의 벤치>에 나타난 세월의 정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예부터 내려오는 공통적인 정서의 깊이를 더하면서 능숙하게 시의 기법을 적용했다특히 이 시의 주제어 기능을 하는 갑자기 발등으로 뱀이 지나가는 느낌이다.’라는 표현은 소동파의 한시에서도 읽을 수 있는 공감각이다

 

欲知垂盡歲 세월의 다함을 알고자 함은

有似赴壑蛇 골짜기 사이로 가는 뱀과 같다네

修鱗半已沒 뱀의 반이 이미 사라져 버리면

去意誰能遮 가려는 뜻을 그 누가 막겠는가

 

소동파가 세모(歲暮)에 동생 소철에게 궤세(饋歲), 별세(別歲), 수세(守歲)의 풍속을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세 편의 시로 써 보낸 작품 중 마지막 편 수세(守歲)의 전반부 4행이다.

연말에 친지를 초대하여 같이 술 마시며 선물을 나누는 것을 궤세라 하고가족과 함께 술과 음식을 나누는 것은 별세잠을 자지 않고 날을 세우며 지키는 것을 수세라 한다그런데 소동파는 근무지를 벗어날 수 없어 가족과 함께 세시풍속을 지키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랜 작품이다그중 세월이 지나가는 것을 골짜기로 빠져나가는 뱀에 비유하고가버린 뱀은 어쩔 수 없다는 체념과 아쉬움을 그려냈다전애희 수필가의 <쉰의 벤치>는 세월에 대한 느낌은 시대를 초월한 공통의 정감임을 확인하게 한다.

 

평소 느끼지 못하던 세월을 쉰을 앞둔 순간에 차가운 뱀의 속성으로 의식하는 것은 왜일까세월의 속성을 뱀에 등치(等値)하는 감정이입은 이 시의 압권이다그러다 보니 에서는 보다 원숙한 삶에 대한 기대감을 상상한다지천명(知天命)의 여유와 윤택한 사고의 대한 바람직한 변화를 즐거운 마음으로 기대하는 변화다더구나 각 문장의 서두를 쉰 살이 되면이라는 조건문의 반복으로 자신을 되돌아보는 생각의 여유를 주었다주제를 강조하기 위한 점층적 효과의 노림수다.

 

그러나 에서는 반전을 이루어 나이 듦에 대한 두려움이 다양하게 나타난다그것은 세대교체라는 미명하에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나이로 압축된다추풍낙엽과 같은 신세에서 파생되는 갖가지 염려가 나이와 연관되어 두려움으로 나타난 것이다더구나 에서는 쉰 살이 되면이라는 전제를 내세운 문장과 달리 나이라는 명사로 끝을 맺어 긴장도를 높였다연이 긍정적인 의식의 확산인데 비해 연에서는 부정적인 염려로 전환했기 때문에 형식면에서도 대조적인 변화를 취했다그런 중에 아무리 나이 들어도 여자는 여자라는 말을 실감하듯 틈틈이 화장기를 고쳐야 하는 나이라는 여성성이 정겹다여성에게 화장은 밥보다 소중한 가치이므로 아무리 늙어도 미는 가꿔야 한다는 일종의 교훈이다.

 

전애희 수필가는 수필집 향기를 노래하다에 삶의 현장에서 보고 느낀 감회와 어린 시절 고향의 추억들을 발표했다전체 5부 중 3부는 시처럼 수필처럼이란 부제로 30편의 시를 실었다제시문대로 수필처럼 읽을 수 있는 시라서 한겨울에 마시는 동치미 국물처럼 시원한 맛이 있다그중에 실린 <쉰의 벤치>는 백세시대에 취해 있는 요즈음 사람들에게 한 번쯤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마흔 아홉과 쉰의 차이는 한 살밖에 안 되는데심리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가져다 준다쉰 살그것은 기념비적 나이다인생 칠팔십이라면 이쯤에서 중간점검을 하고 기존의 생활 형태를 재조율할 필요가 있다.

가장 친했던 친구가 서른 여섯에 세상을 떠났다그리고 언니는 쉰 살이 되자마자 떠났다쉰 살을 맞이하는 기분이 남다른 것은 이런저런 복합적인 영상이 뇌리를 꽉 메우기 때문이다.

 

연의 후략 부분이다여기에서 전애희 수필가는 이 시를 쓴 이유를 밝혔다삶의 의미를 어느 것에서 발견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에 쉰을 넘기는 기분도 사람마다 다르다그 어간에 던져주는 <쉰의 벤치>는 제목부터 쉼과 생각과 삶의 반추라는 철학적 사유를 유도한다.

조선 전기의 문신 정수강은 잠 못 이룬 밤은 삼경을 지나는데/찬 비를 좇아 근심이 생겨나네/내일 아침 내 귀밑털을 보면/흰 눈 몇 가닥 더 솟아났을까라며 세월을 흰 머리 솟아나는 아쉬움으로 표현했다우탁을 비롯하여 많은 시인 묵객이 탄로가(歎老歌)를 남겼지만 전애희 수필가처럼 노년의 양면성을 구체적으로 고찰하지는 않았다.

 

시의 전개에서 보이는 구조적 특징은 기()연에서 제기한 문제를 부연 설명한 수필적 전개와 승()의 연에서 제기한 노년의 아름다운 삶에 대한 여유와 멋의 상상()의 에서는 나이 들어 불편한 삶의 예상으로 맺고 결()을 생략했다이는 연의 마지막 행 그 나이 듦에 대하여가 대체한다즉 독자 나름대로의 삶을 생각하게 하는 여운으로 남긴 것이다수필가가 쓰는 시라서 생각의 여유가 더 깊다.

 

재수 없으면 백 세까지 산다고 했다건강하지 못한 장수는 재앙이라는 뜻이. <쉰의 벤치>를 통해 백세시대를 윤택하게 사는 방법을 생각해봐야 할 때다.

 전애희 수필가

 

전애희 수필가
* 이 기고는 <시사앤피플>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기옥 문화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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