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청호 교수, 가상현실(VR)을 이용한 고인의 재현과 삶과 죽음의 문제가상현실과 인공지능 결합, 특정인의 모습이나 목소리 재현 가능
바야흐로 가상현실(VR)이나 증강현실(AR) 기술은 이제 게임과 같은 특정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많은 영역에서 활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가상현실과 인공지능 기술을 결합하여 특정한 사람의 모습이나 목소리를 재현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게 되었다.
실제로 이러한 기술을 사용하여 방송으로 제작된 휴먼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 시리즈는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고인의 생전 모습을 사진이나 편지, 가족들의 기억 등을 바탕으로 하여 가상현실 기술로 구현하고, 부족한 데이터는 딥러닝 기술을 통해 마련하여 고인의 모습을 재현하였다.
이 뿐 아니라 엠넷(Mnet)의 ‘다시 한번’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터틀맨과 김현식을 생성적 적대 신경망(GAN)을 사용한 기술로 재현했다. 이러한 시도들을 통해 남겨진 가족은 잠시나마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을 통해 재현된 고인을 경험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으며, 이들의 모습은 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하였다. 이처럼 고인을 기술적으로 재현하는 시도들에 대한 시각은 다양하다. 혹자는 고인의 기억을 간직하고 그리워하는 남겨진 가족들에 대한 정신적 애도를 통해 심리 치유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고 본다. 행복하고 꿈을 꾸는 듯한 잠시 동안의 만남은 남겨진 가족에게 가족이 떠난 이후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왔던 그간의 삶에 대한 자그마한 보상이 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시도들이 아직은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수준은 아니다. 재현된 고인은 실제 사람을 만나는 것과는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으며 잠시 만나 얼굴 볼 수 있고 짧은 대화를 하게 하는 수준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시도를 통해 유족들은 잠시 고인과의 추억을 회상하고 기억하는 기회를 갖게 되고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잠시 동안의 만남 이후 현실의 삶에 돌아온 이들이 어떠한 마음을 갖게 될지는 더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다. 현실에 더 충실히 하겠다는 다짐이 남겨진다면 다행이지만, 차갑고 외로운 현실에서 더 큰 허망과 실망감에 빠지게 된다면 이는 남겨진 가족에게 또다른 상처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의료적이고 심리적인 자문은 물론 오랜 기간의 제작기간 동안 공들여 준비했기 때문에 현실과의 간극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이런 측면에서 왜곡된 고인의 재현은 어떤 인간의 삶도 대신하거나 대체할 수 없다는 기존의 믿음에 거스르는 것일 뿐 아니라, 그리운 이들을 가슴에 묻고 현실을 묵묵히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삶의 의미를 퇴색시킬 수 있다.
더군다나 앞으로 기술이 더 발달하게 된다면 상황은 악화될 수 있다. 진짜와 가짜의 구분이 불가능할 정도로 정교화게 구현된 고인을 만나게 되고 짧은 대화 뿐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원할 때마다 얘기를 나누게 된다면 어찌될 것인가. 더 나아가 누구나 생전에 이렇게 자신을 ‘저장’해 놓는 것이 가능하게 되고 마음껏 사후에 고인을 재현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그러한 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경험하고 무엇을 느낄 것인가. 최악의 경우, 고인의 재현이라는 가상현실이 일상화된 메타버스(metaverse)가 ‘망자 비즈니스’로 자리잡게 된다면 이는 인간의 왜곡된 욕망이 투영된 또다른 매체가 될 소지가 크다.
고인을 기술적으로 재현하는 것은 단순히 그 실현 가능성만을 논하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할 수 있는데 왜 하지 않느냐의 태도보다는, 할 수 있지만 정말 그렇게 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과 간절한 바램을 저버리는 것 사이에서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다. 고인을 시뮬레이션하는 이러한 서비스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과 논의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저작권자 ⓒ 시사앤피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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