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앤피플] 40년전 대학원생 시절, 일본에서 태어나고, 독일과 프랑스에서 학교를 다니고, 유럽에서 살고 있는 한국계 미국시민인 언어학자를 만난 적이 있다. 한국에 한번도 가본적이 없다는데 한국말을 한국에서 자란 사람처럼 구사했다.
이 분은 IBM의 초기단계 인공지능 프로젝트에 참여하느라 펜실베니아 대학교에 단기방문 중이었다. 일상언어의 유형인식(pattern recognition)을 연구하고 있었는데, 그는 자기가 구사하는 많은 언어들 중에 한국말을 분석적으로 이해하는 게 제일 어렵다고 했다. 그가 들었던 예가 지금도 기억난다. 사람이 물에 빠지면 영국사람은 도와줘(Help me)하고 소리친다.
프랑스사람은 '나좀 봐(A moi)' 하고 소리 친다. 그런데 한국사람은 '사람 살려'라고 소리친다. 위급상황에서 자신이 살기 위해 인류애에 호소하는 한국사람의 사고구조를 컴퓨터나 로봇이 체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단기체류가 끝나고 떠날 때 그가 한 말은 인공지능을 언어학적으로 구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고 프로젝트를 접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나 이제 인간언어 기반의 생성형 인공지능 회사인 Open AI의 ChatGPT가 보통사람의 질문에 척척박사인냥 대답하는 것을 목도하게 되었다. 물론 정말 내용을 잘 아는 사람이 들어보면 엉터리 대답인 경우도 많다. 기계가 사람 손의 기능을 대체할 뿐만 아니라 어떤 일들은 사람 손보다 더 잘 하는 것처럼, 인공지능이 사람 뇌의 기능을 대체해가고 있으며 어떤 영역에서는 사람 뇌보다 계산을 더 잘 할 수 있게 되었다. 인공지능은 갈수록 일상생활에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투자를 받으려는 사람이나 연구비를 따려는 사람이 인공지능을 활용하겠다고 하지 않는 경우가 드문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게 이상할 게 없다. 생산을 하든 연구를 하든 하드웨어인 장비들이 필요한 것처럼 소프트웨어인 인공지능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반도체 공장에 가보면 사람은 별로 없고 로봇이 거의 모든 작업을 한다. 노동자의 육체노동이 로봇의 기계작업으로 대체되었다. 인공지능은 전문직 종사자들의 정신노동을 대체할 것이다. 교본과 자료축적에 의존하는 기능형 전문직인 회계사, 변호사, 약사, 의사들의 일은 정도는 다르겠지만 상당부분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것이다.
그러나 불확실성 속에서 가정 또는 가설로 출발하여 상상력으로 작업하는 예술가, 과학자, 기업가들의 일은 인공지능으로 대체하기 힘들 것이다. 소프트웨어를 가르치는 전산학과로부터 분리되어 인공지능을 가르치는 전공 프로그램들이 생겨나고 있다. 세상이 바뀌면서 대학 학과들의 이름이 많이 바뀌고 있다. 물리학과, 화학과 등 과학분야 학과들은 이름이 잘 바뀌지 않으나, 공대 쪽 학과들은 이름이 많이 바뀌었다.
화학공학과가 생명화학공학과로 바뀌고, 토목공학과는 건설환경공학과로 바뀌는 식이다. 그런데 기계공학과는 대개 그대로다. 기계공학은 기반기술이기 때문이다. 각종 생산장비, 자동차, 항공기, 무기, 로봇 등 다양한 산업의 생산물이 다 기계다. 인공지능도 많은 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기반기술이다. 그런데 공학을 넘어 많은 직업군과 전문분야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그 영향이 기계공학을 뛰어넘는다. 인공지능의 본질과 기여에 대한 오해도 많다.
인공지능의 본질은 계산과 학습이다. 인간의 사고가 연역적 추론과 축적된 경험의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인공지능도 계산과 학습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컴퓨터의 뛰어난 계산기능과 자료 저장과 처리 기능이 이를 가능케 한다. 그러나 수집된 자료의 양과 질이 불충분하면 인공지능의 기여는 제한된다. 인공지능이 별로 도움이 안되는 분야도 있다. 신약개발에 드는 엄청난 비용을 줄이는데 인공지능을 활용하려는 시도가 없지 않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는 그리 영리한 생각이 못된다. 신약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의 대부분은 임상시험 비용이다. 사람에게 약을 투여해서 시험해보는 임상시험에 인공지능을 활용할 여지는 별로 없다. 인공지능의 위험에 대한 얘기도 요즘 나오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이 인간의 제어를 벗어나 인류에 큰 위험이 될 가능성이 문제인 것처럼 얘기되고 있다. 필자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인간의 실수와 악의에 의해 인간이 해를 입을 수는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그 창조자인 인간의 통제를 벗어날 수는 없다. 물론 기계의 발달이 무기의 발달도 가져온 것처럼 인공지능이 폭력과 범죄의 수단으로 쓰이게 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며 막을 수 없다. 인공지능 개발의 초기단계에서 고민했던 언어의 유형인식 문제로 돌아가 보자.
이제 컴퓨터 용량이 충분하므로 사람들이 경우에 따라 사용하는 말들을 다 배우도록 하면 된다. 한국사람의 사고구조를 분석적으로 규명하기는 어렵겠지만 한국로봇이 물에 빠졌을 때 로봇 살려하도록 입력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 채수찬 경제학자 • 카이스트 교수 * 이 기고는 <시사앤피플>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시사앤피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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