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달픈 인연들 시인 최영숙
인연은 아름답고 애달픈 사연만 있으련가 여겼습니다 그렇지도 않은 것이 어설프게 잘난 것에도 인연이 이어 가더이다 이 세상에 내가 이루고 만든 것이 잘나고 아름다운 것이 얼마나 될까요 그것마저 회색빛 저 빌딩숲 사이로 멀어져가고 도시의 섬 속에 그림자처럼 남아 있더이다 나는 자랑스런 존재이고 그 가장자리에 높게 앉아 있어야 하는 욕심을 부렸더니 그 인연들은 호수의 물안개로 휘감아 호수를 억누르는 태세이더니 햇빛의 강렬함에 흔적 없이 사라지더이다 그 고달픈 미련의 인연도 같이
인문학은 인간 본연의 가치를 발견하기 위한 표현활동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다. 객관적인 자연과학에 비해 주관적이고 감성적이기 때문에 그 표현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철학, 종교, 법률을 비롯하여 연극, 음악, 미술, 건축 등이 곧 인문학의 영역이다.
키케로의 「휴마니타스」(humanitas) 이후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궁중의 연회에 반드시 시낭송을 감상할 만큼 시는 문화의 중심이었다. 서정시 리릭(lyric)이 하프를 닮은 고대 그리스의 악기 ‘리라’이 어원인 만큼 서정시는 곧 악기에 맞춰 부르는 노래 가사였다.
최영숙 시인의 「고달픈 인연들」은 연기설에 사유적 배경이 보인다. 아름다운 인연과 애달픈 인연뿐인가 했더니 어설프게 잘난 것에도 인연이 있더라는 고백이 이를 증명한다.
그 연기는 1,2행의 기(起) 3,4행의 승(承)으로 빠르게 전개하다가 5,6행에서 전(轉)으로 접어들어 삶을 돌아보는 계기를 제시한다.
“이 세상에 내가 이루고 만든 것이/잘나고 아름다운 것이 얼마나 될까요.”
인연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자기 성찰이다. 이 시에서 인문학의 본질을 생각해 보는 것은 ‘회색빛 저 빌딩숲’과 ‘도시의 섬’과 같은 자연과학의 산물을 포용했기 때문이다.
시적 균형을 이루기 위한 자연과학의 포용, 그것은 도연명조차 늦게야 깨달은 무정설법(無情說法)의 적용이다. 곧 자연현상에서 법문을 듣는 시인의 경지인 것이다.
‘나는 자랑스런 존재이고/그 가장자리에/높게 앉아 있어야 하는 욕심’을 부리면 호수의 물안개가 휘감아 가버리거나 강렬한 햇살에 흔적조차 사라지는 상황을 맞는다는 깨달음, 그것은 허무의 발견이지만 그와 같은 절망 상황에서 ‘그 고달픈 미련의 인연도 같이’라는 마지막 행ㅇ[서 또 다른 반전으로 희망을 제시한다. 이 반전이 「고달픈 인연들」의 매력이다. 평소 따듯한 인간미를 지닌 최영숙 시인의 심성이 그대로 드러난 시라서 더 반갑다. <저작권자 ⓒ 시사앤피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강기옥 문화전문 기자
kangkk5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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