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응석
시인 양남열
어머니가 보낸 보따리 하나
꼭꼭 묶인 매듭 화해하듯 풀어 보니 갖가지 말린 나물들이 다투듯 쏟아져 나온다
떼 부리는 아이처럼 엄마 곁을 떠난지 수십 년 지나 살아도 못난 응석을 달래주는, 매년 엄마 보따리는 늘어만 간다
산나물을 뜯자고 팔순이 넘기까지 어머니의 삶은 얼마나 많은 산을 헤매셨을까 고사리며, 취나물이며 이름도 모를 온갖 나물들처럼
올해도 딸의 응석을 달래려 산을 넘어 못난 딸에게로 왔다
2004년 영국 문화원(British Council)에서 세계 비영어권 102개 국가의 4만 명을 대상으로 ‘가장 아름다운 영어 단어’를 묻는 온라인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인종과 국가를 초월한 인간의 공통적 정감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한 조사였는데 어머니(mothe)가 단연 1위였다. 미국 초등학교의 과학 시간에 ‘상대방을 끌어들이는 성질과 힘을 가진 M으로 시작하는 단어’를 쓰라는 문제를 제시했더니 85%의 학생이 ‘mother’라고 썼다. 정답은 magnetic(자석)이었지만 교사들은 회의 끝에 모두 정답으로 처리했다.
위 사례에서 보듯 어머니는 누구에게나 근원적인 그리움의 대상이다. ‘상대방을 끌어들이는 힘’은 자력(磁力)의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정감이 담긴 사랑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그리움과 사랑의 절대덕 결정체(結晶體)다. 그래서 빅토르 위고는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명언으로 어머니는 신의 사랑을 대신하는 존재로 부각시켰다.
양남열 시인(시 낭송가)의 「고향의 응석」에는 ‘보따리’가 사랑과 그리움의 매개로 등장한다. 그 보따리 속에 담긴 나물들은 사랑의 현현(顯現)이다.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는 사랑은 고사리며 취나물, 이름 모를 나물을 뜯는 위험한 상황의 극복으로 구체화했다.
고생을 마다 하지 않는 어머니의 사랑을 주저리주저리 서술하지 않고 은유와 상징으로 시화하여 어머니를 가슴에 품은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꼬집고 있다. 더구나 낭송가로서의 호흡을 조절하는 운율까지 고려한 시라서 낭송을 곁들이면 속 깊은 울림이 마음을 시큰하게 한다.
흔히 어머니 곁을 떠나 객지에서 생활하는 것을 불효로 여긴다. 더구나 어머니가 팔순을 넘긴 나이이고 보니 그 생각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시상의 전개로 보아 ‘보따리’는 심리적 갈등과 번민의 심도를 높이는 매개물이지만 결국 이를 풀어 쏟아지는 내용물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아프게 확인하는 대상으로 작용한다.
그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화해하며 어머니의 사랑으로 위안 받는 애끓는 사모곡이다. 그래서 제목에 ‘응석’이라는 유아적 정감이 실린 용어를 사용했다.
양남열 시인의 「고향의 응석」을 감상하며 ‘살아서는 세 푼 죽어서는 만 냥’이라는 어머니의 속담을 되새겨 본다. 많은 산을 헤매며 주워 담은 사랑의 보따리가 새해에도 산을 넘어 양남열 시인 앞에 쌓일 보따리의 행복이 또 다른 시로 가슴을 울려주리라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시사앤피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강기옥 문화전문 기자
kangkk5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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