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앤피플] 오랜만에 미국 보스턴을 방문하여 이 일대의 바이오 기업들을 둘러보고 있다. 그 중 바이오텍 기업들의 특정한 공정을 대행해주는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기업인 「깅코 바이오웍스」를 방문하면서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 회사는 자신의 업종을 스스로 「바이오 파운드리」라고 부르고 있다. 반도체 업계에서 다른 반도체 생산업체들로부터 제조를 위탁받아 대행해주는 대만의 TSMC 같은 제조전담회사를 「파운드리」라고 부르는데서 따온 것임은 분명하다.
반도체 파운드리든 바이오 파운드리든 공통점은 대규모 설비투자가 필요한 공정을 개별 회사들이 진행하는 게 아니라 한데 모아서 위탁회사에서 실행하는데 있다. 그런데 파운드리와 같은 성격의 업종들이 최근 많이 생겨났다. 요즘 농사는 옛날처럼 사람 손으로 짓는 게 아니고 포클레인, 트랙터, 콤바인 등 중장비를 이용해서 짓는다. 그래서 모내기든 수확이든 대행해주는 비즈니스가 생겨났다.
농부들로서는 이제 스스로 작업하는 것보다 대행업자를 활용하는 게 경제적이다. 또 생각해보면, 쿠팡 같이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도 대규모 배달 망(network)을 활용하여 소비자들의 구매비용을 절감시켜준다. 마켓컬리, 올웨이즈 같은 식품배달업체들 역시 대량구매와 대량배달망을 통해 가정의 식품구매 비용을 절감시켜준다.
이러한 업종들의 공통점은 큰 고정투자(overhead investment)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작업을 개인이나 개별회사가 하지 않고 한데 모아 전담업체가 대행하는 것이다. 대량생산에서 오는 비용절감효과, 곧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를 집단적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이런 위탁업종들이 급성장하고 있는 오늘의 경제상황을 「규모공유의 경제」 (scale-sharing economy) 라 불러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이번 보스턴 방문 중에 MIT 캠퍼스에 있는「랩 센트럴」도 돌아보았다.
랩 센트럴은 바이오 창업기업들에게 업무공간, 연구공간, 그리고 공동사용 장비를 제공해주는 기관이다. 랩 센트럴의 비즈니스 모델은 굳이 분류하자면 공정을 위탁하는 규모공유의 경제보다는 시설이나 기기를 빌려주는 「공유경제」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유경제는 얼마전 민박연결 기업인 에어비앤비, 승차연결 기업인 우버 등 인터넷을 활용하는 연결기업들이 생겨나 큰 흐름으로 자리잡은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규모공유의 이점은 분업(division of labor)의 이점과 일맥상통하지만 똑같지는 않다. 공통점은 대량생산의 이점이다. 서로 다른 점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분업을 살펴보자. 경제학의 시조 아담 스미스는 시장의 크기가 분업의 정도를 결정한다고 했다. 수요가 커져야 분업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분업의 이점은 전문화에서 나온다. 개인 각자가 양복도 만들고 구두도 만드는 것 보다는 양복쟁이가 다른 사람들의 양복을 모두 만들고 구두쟁이가 모든 사람의 구두를 만드는 게 효율적이다.
양복 만들기와 구두 만들기가 각각 전문화되어 생산성이 오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대량생산이 가능해진다. 역으로 보면, 대량생산을 하지 않을 거라면 분업도 필요 없다. 주로 수요 쪽에 뿌리를 둔 분업과 달리 규모공유는 주로 공급 쪽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규모를 공유하는 업종들이 최근 급성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하드웨어의 발달이다. 반도체 파운드리나 바이오 파운드리가 생겨날 수 있었던 이유는 반도체 생산장비, 그리고 바이오 공정에 필요한 세포배양시설이 고도화되고 효율화되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넓은 땅에 농약을 뿌릴 수 있는 드론이 나오자, 농약 뿌리는 작업은 대행업자에게 위탁하는 게 대세가 되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도 규모공유의 경제가 발전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특정한 작업을 누가 언제 필요로 하는지를 신속하게 소통할 수 있는 기술의 발전이 효율적인 장비공유를 가능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25조원까지 올랐던 깅코 바이오웍스의 시가총액은 지난 반년 사이에 10분의 1로 떨어졌다.
팬데믹 기간 동안 mRNA백신을 개발한 모더나와 같은 바이오텍 기업들로부터 받았던 위탁물량이 팬데믹의 종료로 급감한 것이 주원인으로 보인다. 앞에서 규모공유 비즈니스모델이 공급 쪽의 효율성에서 유래했다고 분석했지만, 그래도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비즈니스는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비싼 장비나 기기를 필요로 하는 공정이나 작업을 전문기업에 위탁하는 규모공유의 경제는 시설이나 기기를 빌려 쓰는 공유경제와 마찬가지로 앞으로 경제의 한 축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 채수찬 경제학자, 카이스트 교수 * 이 기고는 <시사앤피플>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시사앤피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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