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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 뜰에 산수유가 노랗게 활짝 피었다. 토요일 아침이 가장 여유로운 편인데 오늘(3/16, 토)따라 날씨도 화창하고 마음도 봄기운으로 설랜다. 아내가 평창동 가나아트센타에서 열리고 있는 '박대성 해외 순회 기념전'에 가보자고 했다. 지난 2월초 부터 열고 있는 이 기념전을 언론을 통해 소식을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박대성 화백이 40년 전부터 가나아트와 인연을 맺은 1호 전속작가이며 또한 이건희컬렉션의 대표적인 작가로도 유명했지만, 나는 그가 경북 청도 출신이기에 동향인으로서 더 큰 관심을 갖고 언젠가 꼭 한번 만나 보고 싶었다. 오늘 본인을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림을 통해, 작품세계를 통해 박대성 화백을 만나보는 귀한 시간을 가졌다. 참으로 귀한 체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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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아트센타에서 제공하는 유인물을 통해 기념전에 대한 개요를 먼저 살펴 보자.
"가나아트는 전통 수묵을 현대적으로 변용하여 동시대 한국화의 세계화를 이끈 소산 박대성(小山 朴大成)의 해외 순회 기념전,<소산비경(小山秘境)>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지난 2년간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 다트머스대학교 후드미술관(Hood Museum of Art at Dartmouth College)등 총 여덟 곳의 해외 기관에서 한국 수묵화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준 소산의 행보를 돌아보며, 순회전을 계기로 확인된 박대성과 한국화의 새 지평을 조망하고자 한다. 순회전 출품작과 최근 완성된 신작으로 구성되는 본 전시는 박대성이 화업 전반에 걸쳐 천착한 주제와 소재의 가장 완숙한 형태를 선보이며 그의 예술 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고, 해외 화단에서 주목한 소산수묵의 독창성을 발견할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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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이글을 쓰면서 제목을 <소산비경 탐방기>로 달고 싶어졌다. 이 분야에는 문외한이지만, 박대성 화백의 수묵화를 바라보며 계속 집중하다보니 어떤 신비한 비경의 셰계를 탐방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단순한 흑백의 수묵화를 통해 보이지 않는 여러가지 색(色)의 세계가 겹겹이 잠복해 있는 듯한 감을 느꼈다. 눈에 표출되어 나타나지 않지만, 그 흑백의 이면에 숱한 의미의 세계가 저마다의 자연적인 색깔(자연으로서의 존재가치)을 품고 내재해 있는듯 했다. 박대성 화백이 이번 순회전에 대해 "하루아침에 된것이 아니다. 일평생 '보이지 않는 뿌리'를 찾았기 때문에 관객들이 그 진정성을 느낀 것이다"라며 소회를 밝혔다고 하는데, 그 마음과 발언의 요지에 공감이 간다. '보이지 않는 뿌리'는 곧 그가 그림을 통해 평생토록 탐색해온 자신의 인생에 대한 근원적인 희망과 불교적인 자화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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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성 화백의 일대기를 보면, 그는 수년간 세계 각지를 누비며 유명한 산천과 전통 시장, 유적지, 시골 마을, 대도시 등을 찾아 다녔다. 한국화를 현대화해야겠다는 생각이 움튼 1994년, 박대성은 서양 현대 미술에 대해 배우고자 현대 미술의 메카인 뉴욕으로 향했고, 아트스튜던트리그(The Art Student League of NY)에서 수학하며 소호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났을 무렵, 그는 불현듯 뉴욕에서는 현대 한국화에 한 획을 긋지 못하겠다 판단했고 가장 한국적인 곳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하는데, 그때 떠올린 곳이 한국 전통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는 도시 경주였다. 고향인 청도와 인접해 있는 경주는 박대성에게 제2의 고향이 되었다. 그는 주로 경주의 역사, 문화 유적지를 그렸다. 작가는 작업실 주변에 츨비한 유적지의 진수를 포착하는 동시에 그에 담긴 역사적 의미나 중요성을 담으려 했다. 중요 유적지를 방문하고 이를 여러번 그린 후에는 그에 깃든 정신성을 발견했고 자신만의 구도로 재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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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 작업실을 연 후 2000년대 들어 박대성은 서예 탐구에 열을 올렸다. 1988년 중국에서 이가염(李可染, Keran Li)을 만났을 때 그가 먹과 서예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을 박대성은 마음에 새겼다. 실크로드 여행을 떠났을 때 박대성은 바위에 새겨진 암각화와 상형 문자를 여럿 보았고, 그대로 스케치북에 옮겨 그렸다. 그는 암각화가 글의 원형이라고 여겼고, 글이 그림으로부터 발전했다고 생각했으며, 따라서 그림을 그리는 것과 글을 쓰는 것에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그림과 글의 영속적인 관계성을 깨우친 그는 그림을 그리는 작업 속에 글의 본질과 함께 작가로서의 재능과 인격이 융합된 자신만의 고유한 창작 세계를 일구어 가기 시작했다. 이것이 박대성 화백의 작품의 근간을 이루는 수묵화의 기법인 동시에 미학이며 그후 오랜 숙련의 과정에 오늘과 같은 박대성 해외 순회 기념전, 즉 <소산비경>과 같은 경지의 작품세계로 까지 발전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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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박대성은 왼쪽 팔이 없는 외팔이 화가다. 1945년 경북 청도 운문면 출신으로 7남매중 막내로 태어났는데 5살이 되던 1949년 여름, 운문산에 은거하던 빨치산에 의해 왼쪽 팔을 잃었다.
집안이 풍지박산이 되고 고아가된 박대성은 정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중졸로 학력을 마감했다. 그런 그가 수묵화의 대가로 거듭나 한국화의 위상을 세계화하는데 선구자적 위업을 달성했으니 그 인간적인 애환을 이겨낸 정신력은 물론이거니와 작품에 대한 집중적인 열성과 노력은 우리가 감히 상상을 못할 정도로 크고 놀랍다. 그래서 필자는 가나아트센타의 방명록에 이렇게 썼다. "오늘 위대한 청도인을 만나고 갑니다. 그 인생과 작품에 담긴 의미를 마음에 깊이 간직합니다"
아!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있는가! 왼팔의 부재로 오는 아픔은 나머지 한 손에 잡은 붓으로 천지를 진동시키는 울림으로 영적인 암각화를 그렸으며, 못다한 배움의 부족은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내공의 연마로 하늘로 향한 탑의 형상을 쌓았으니 그 작품(소산비경)에 깃든 독창적인 천재성은 범인이 가히 상상도 못할 세계로까지 확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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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소산비경> 기념전에 축사한 분들 가운데 존 스톰버그(John Stomberg) 다트머스대학교 후드미술관장의 평론이 특별하다.
"박대성의 작업은 한국 미술의 과거와 동시대 미학을 융합한다. 그의 필법과 소재, 그리고 재료 사용은 전통의 방식을 고수하나, 동시에 그가 색채를 표현하고, 작품의 크기와 구성을 결정하는 방법은 현대적이다"
박대성 화백을 평하자면, 그는 전통 수묵을 기반으로 양식에 경계없는 표현을 시도하여 한국화의 새 지평을 연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지난 2년간 독일, 카자흐스탄, 이탈리아, 미국 동,서부를 순회하며 총 여덟 곳의 해외 기관에서 한국 수묵화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준 그의 행보는 가히 초인적인 미학의 달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런 작가를 간접적인 체험이지만 동향인으로 만났다는 게 필자로선 그저 꿈같고 기적같이 느껴진다. 실로 말 할 수 없는 기쁨과 감동의 시간을 즐기며 아내에게 (나를 데려와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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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성 해외 순회 기념전(소산비경) 관람을 마친 후 가나아트센타 부근에 있는 쌈밥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북악산이 바라다 보이는 창가에서 북악 능선의 아름다운 흐름을 느끼며 쌈밥을 먹고 있는데, 잇달아 식당에 들어오는 손님들 가운데 오랫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을 발견했다. 오래전에 파리에 있는 OECD본부에서 근무했으며, 귀국후 상명대학 대학원장을 역임했던 홍은표 박사를 뜻밖에 만나게 된 것이다. 교회 동료인 세 가족들과 같이 구역예배를 마친 후 점심을 먹으러 왔다고 했다. 오랫만에 만났지만 예전과 다름없이 밝고 활기 찬 모습이 보기에 참 좋았다.
우리 내외는 식사를 마치고 떠나기 전에 홍 박사 일행들에게 식당 카운터 옆에 비치되어 있는 쌀 강정과 인절미 과자를 선물로 사드렸다. 홍 박사께서는 우리가 만류하는데도 불구하고 주차장까지 따라 나와 배웅을 해주셨다. 물론 그 전에 우리 또한 그 식당에서 팔고 있던 배다리 막걸리 한통을 사서 들고 나왔다. 집에 가서 두 내외가 오랫만에 여운있는 주말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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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 막걸리는 제법 유명한 토속주다. 쌈밥집 벽에 붙어 있는 홍보 전단에 의하면, "박정희 전 대통령께서 1966년 부터 1979년 서거하신 당일까지 14년간 '대통령 전용 막걸리(고양쌀 막걸리)를 별도로 빚어 납품했던 역사적인 술이다."라고 적혀 있었다.
집에 돌아와 낫또로 간단히 저녁을 떼운 후 매일하는 성경읽기와 QT를 마친 다음 오랫만에 배다리 막걸리로 부부간에 대화의 진미를 나눴다. 배다리 막걸리를 조금씩 음미하면서 가나아트센타에서 구입해 온 박대성 화백의 도록(圖錄)과 병풍형 그림책을 펼쳐 보았다. 낮에 봤던 그림들이 연상되면서 마음속으로 끝없는 미학의 심연에 빠져드는 느낌이 들었다. 술기운 탓일까? 나는 갑자기 눈물이 질끔 났다. 한 인간의 삶과 영혼이 부채살처럼 펼쳐지며 호소하듯, 간청하듯 말을 걸어 왔다. 직접 만나보고 싶었지만 그림으로 밖에는 만날 수 없는, 나보다 세살 위인 동향의 그분이 내게 친절히 말을 걸어오는 듯한 느낌이다. "보소, 이 사람아, 나도 열심히 살았다네. 잃어버린 왼팔이 나를 구원했다네. 그 현실적 상실감이 내게 영원으로 잇대는 희망을 불러 일으켜 주었고, 그 외로운 아픔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아름다운 색깔을 내 수묵의 그림속에 융화시키는 깨우침으로 채워졌네. 그것이 내 그림이 되었고 글이 되었고 재능이 되었고 마침내 인격이 되었네. 그래서 나는 이제 누구보다 행복하다네. 부처보다 더 깊은 깨우침으로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는 이렇게 말하며 빙긋이 웃고는 다시 경주에 있는 작업실로 돌아가는 모습이었다. 술기운으로 느끼는 환상이지만 그 모습은 내게 영원히 잊지 못 할 진정한 구도자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나도 덩달아 참으로 행복한 토요일 밤길을 걷고 있다.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그 위대한 <소산비경>의 봄 길을 탐방하고 있다.
아! 위대한 인생이여! 위대한 예술이여! (출처 : 감격사회 510호. 3월 18일자 컬럼)
* 이승율 동북아공동체문화재단 이사장
* 이 기고는 <시사앤피플>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