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앤피플] 산을 좋아하는 남편이 MBN의 <나는 자연인이다>를 즐겨보다보니 나도 자주 시청하게 되었다. 그 프로의 출연자들을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왜 자연(산이나 섬)에서 살게 되었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사업에 실패했거나 지인들에게 사기나 빚보증을 서서 집안이 망하고 배신을 당한 경우, 또는 건강이 안 좋아져서 또는 은퇴 후 마음 편히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로빈슨크루소처럼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며 살다보니 힘들고 불편하고 외로운 점도 있지만 자연 속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매일 같이 산을 다니다보니 자연스럽게 건강이 회복되었고 스트레스 받지 않고 마음이 편하고 자유로와 자연에서 살게 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약초를 캐고 밭을 일구며 욕심 없이 살다보니 자연으로부터 위로받고 치유가 되어 마음이 편하고 행복하다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무색하게도 말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가족과의 관계, 좀 더 크면 유치원과 초·중·고 대학교 등 또래나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 또는 여러 소속된 단체에서의 크고 작은 다양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가기 마련이다.
‘인간(人間)’의 쓰이는 한자를 자세히 보면 문 사이로 햇빛이 비치듯 서로 고단한 어깨를 기대며 살아가는 상호의존적인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인간관계는 인간의 만남이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고, 관계된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하고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서로의 욕구와 선한 목표를 이루어가는 ‘우리’라는 사회의 한 조직을 형성하게 되는 것 아닐까?
중국 송나라 때 『태평광기』라는 역대 설화집에는 ‘성문실화 앙급지어(城門失火, 殃及池魚)’라는 말이 전한다. 이는 성문에 불이 나면 그 불을 끄기 위해 연못의 물을 모두 퍼 날라서 연못의 물고기들이 모두 죽는다는 말로 얼핏 보면 연관이 전혀 없는 듯하지만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는 주변의 영향으로 뜻하지 않는 화를 입게 될 때 자주 인용된 말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에 인간관계의 만남을 조심하고 경계해야 하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 것만 같아 무척 아쉽다.
중국 어느 작은 지역에서 발생한 바이러스가 내가 살고 있는 군산과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세계로 확산되어 확진자가 무려 584,728천명이상, 사망자는 647만 명 이상을 낸 팬데믹시대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리고 이런 코로나19로 인해 세계의 수많은 상가들이 문을 닫고 실업난으로 세계 경제가 휘청일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현재 삼 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코로나19는 끝이 보이지 않고 여러 변이로 창궐하며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만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전 세계 사람들은 하나의 지구촌이라는 관계망 속에서 살아간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렇듯이 세계의 모든 우주의 만물은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그물망처럼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나무와 나무가 모여 숲을 이루고 산과 산맥을 이루듯 우연이든 필연이든 부분과 부분이 유사한 상관관계를 통해 전체라는 큰 그림을 구성하게 된 것이다.
아름다운 관계는 큰 그림을 감상하듯 적당한 거리에서 관계를 형성할 때 아름답고 멋진 관계로 오래도록 유지되는 것 아닐까?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친척들과의 관계도 그렇고, 친구나 연인, 지인들과의 관계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인지 이정하 시인의 「고슴도치 사랑」(전문)이라는 시가 문득 떠오른다.
서로 가슴을 주어라/그러나 소유하려고 하지 말라/소유하고자 하는 그 마음 때문에/고통이 생겨나니//추운 겨울날/고슴도치 두 마리가/ 서로 사랑했네//추위에 떠는/상대를 보지 못해/자신의 온기 만이라도/전해 주려던/ 그들은/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상처만 생긴다는 것을 알았네//안고 싶어도/안지 못했던 그들은/멀지도 않고/자신들의 몸에 난/가시에 다치지 않을/적당한 거리에/함께 서 있었네//그들은 행복했네/행복할 수 있었네//
만남은 인연이지만 관계는 서로의 노력이라고 한다. 이웃이든 친구나 연인, 가족이나 친척, 지인들 같은 사람들과의 관계는 ‘오솔길처럼 자주 오고 가지 않으면 금새 풀이 무성해지’듯 낯선 사람들처럼 모르는 관계가 되어지기 쉽다.
하지만 경계가 없이 너무 가까워서 부담스럽거나 너무 멀어서 불편하고 어려운 관계가 아닌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 보고 싶거나 필요하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도록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힘이 되어 주고 정을 나눌 수 있는, 은은한 관계가 오래도록 유지될 수 있는 아름다운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관계는 서로의 유익함과 따뜻하고 선한 마음이 자연스럽게 오고 가야 한다. 일방적으로 한쪽에서만 베풀거나 정을 주면 상대방에 대해 준 만큼 되돌려 받기를 기대하거나 희망에 지쳐 서운함과 속상함이 쌓여 그 관계가 오래 유지되기 어렵다.
또한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는 말처럼 관계의 환경이 부정적이거나 악의적인 영향력으로 정신적인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면 본인도 그런 사람이 되기 쉽기 때문에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성격이 우유부단하거나 결단력이 부족해서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이지 못한 관계에 끌려다닌다면 얼마나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 감정소비로 정신적인 갈등과 상처를 받게 되어 마음이 황폐해지겠는가?
인간관계가 좋아야 행복한 인생을 살 수가 있다. 성공적인 인생의 85%가 인간관계에 있다고 하지 않던가.
<나는 자연인이다>의 출연자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관계에 지치고 상처받아서 산이나 섬 같은 자연 속에 파묻혀 사는 것이 한 편으로는 측은하기도 하고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유롭고 편안하게 살아가는 것 같아 나름대로 안심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따뜻한 정과 사랑을 나누며 아름다운 인간관계 속에서 행복하게 살아간다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오경옥 시인
* 이 기고는 <시사앤피플>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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