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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컬럼]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 경쟁과 첨단기술 산업

시사앤피플 | 기사입력 2022/11/03 [18:04]

[박성준 컬럼]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 경쟁과 첨단기술 산업

시사앤피플 | 입력 : 2022/11/03 [18:04]

▲ 박성준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시사앤피플] 미국과 중국의 기술패권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미국은 올해 반도체 및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을 통해 그동안 논의되던 반도체와 주요 첨단산업 분야에 대한 대규모 지원을 확정하였고,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을 통해 친환경 및 신재생에너지 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였다. 두 법안 모두 첨단산업 분야에서 자국 내 제조역량을 강화하고 우방국을 중심으로 공급망을 재편하는 동시에 중국을 기술적으로 고립시키고 공급망에서 배제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고 있다.

 

 

특히 미국이 지난 10월에 발표한 대중국 수출통제조치는 중국과의 경쟁에 있어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로 강경한 내용을 담고 있다. 미 정부는 이를 통해 중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업이 미국의 반도체 장비를 구매하는 것을 사실상 금지하였고, 미국의 첨단 반도체 기술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였다. 이번 조치는 중국의 반도체 분야뿐만 아니라 인공지능(AI) 분야, 슈퍼컴퓨터 분야에 상당한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향후 미·중 기술패권경쟁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냉전 종식 이후 급격히 진행되었던 세계화는 무역을 통해 평화를 촉진할 수 있다는 인식을 담고 있었다. 다소 간의 이견은 있었으나, 당시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방 세계는 무역을 통해 기존의 공산주의 진영 국가들의 민주화와 법치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른바 “관여와 확장”이라고 불리는 정책이다. 2001년 중국의 WTO 가입은 이러한 정책적 방향성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공세적 외교를 펼치면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것은 트럼프 행정부 시기부터이지만, 이미 오바마 행정부 시기에 미국은 이른바 “아시아로의 회귀”를 천명한 바 있다. 미국의 관여와 확장 정책이 성공적이지 못하였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으며, 최근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3연임에 성공한 사례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중국은 이미 수년 전부터 권위주의 체제가 강화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른바 리쇼어링과 프렌드쇼어링을 중심으로 하는 첨단기술 산업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은 세계 경제의 효율성 저하를 불러올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최근의 공급망 재편이 그동안 기업이나 국가가 인식하지 못했던 세계화의 위험(비용)을 뒤늦게 인식한 결과라는 해석도 존재한다. 세계화와 광범위한 오프쇼어링은 공급망이 갑작스레 단절되는 일이 거의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가능하다. 만일 공급망의 한 부분에서 단절이 일어나면 상당한 수준의 경제적 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급망 단절과 관련한 위험은 공급망의 복잡도가 높을수록, 지리적으로 넓게 퍼져있을수록 급격히 증가한다. 이러한 특성을 가진 대표적인 첨단기술 산업 분야가 반도체 분야이다. 반도체 산업은 설계와 생산 등의 공정이 세분화되어 있고, 하나의 제품이 완성되기까지 다수의 국가에서 공정이 진행된다. 만약 공급망 단절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가장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업들로 공급망을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각 단계에서 공급망 단절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면 공급망을 구성할 때 이러한 가능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논리를 확장하면 자국 정부가 관여할 수 있는 공급망 단계에서 의도적인 단절을 일으킴으로써 특정 국가에 상당한 수준의 경제적 피해를 주는 것이 가능해진다. 국제정치와 경제가 다시 긴밀하게 얽힌 최근의 지정학적 상황에서 이러한 가능성은 국가 차원에서 위기로 다가오기도 하고 적대적인 국가를 견제하는 힘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와 같은 상호의존성의 무기화는 결국 어느 국가가 더 많은 공급망의 핵심 상품, 기술, 서비스에 대한 접근 권한과 통제 권한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일종의 권력 구조로 발전할 수 있다.

 

 

최근 중국에 대한 미국의 수출통제조치는 반도체 분야의 기술우위에 대한 미국의 자신감과 중국에 대한 견제 의지를 모두 보여준다. 이와 같은 국제정세에서 우리나라의 전략적 선택은 상당히 제한되어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를 가지고 있지만, 국제질서를 선도할 수 있을 정도의 강대국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기술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반도체 등 미국의 첨단산업 글로벌 공급망 재편 구상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또한, 중국의 기술력이 향상되면서 근래에 우리나라 기업과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으므로, 미국과 중국의 첨단산업 분야 디커플링은 우리나라의 기업에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다. 다만, 인플레이션 감축법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의 국내 정치 상황과 자국 우선주의가 우리나라의 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은 불안 요소이다. 일각에서는 다음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된다면 동맹을 중시하는 바이든 정부의 정책 기조가 이전으로 회귀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러한 대외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기술 개발을 통해 첨단산업의 핵심기술과 제조역량을 확보함으로써 공급망에서의 위상을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주요 선진국의 입법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장기적인 시계에서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대한 지원을 추진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반도체 산업은 국제적으로 높은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지만, 이러한 경쟁력은 메모리반도체 분야에 국한되고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는 아직 경쟁력이 부족한 실정이다. 시스템반도체의 시장 규모가 메모리반도체의 두 배가 넘고 수익성이 더 높으며 가격 변동성은 낮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장기적인 안목에서 시스템반도체에 대한 기업의 투자와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정부가 시장과 기업의 경제활동에 얼마나 개입해야 하는지를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미·중 기술패권경쟁으로 대표되는 최근의 지정학적 상황은 개별 기업이 대처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또한, 전통적으로 시장의 역할을 매우 중시하는 미국에서조차 국가적으로 첨단기술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급변하는 국제질서에 대응하기 위해 경제안보와 관련한 다양한 정책을 고안하고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기회 요소와 위기 요소가 공존하는 현 상황에서 제도를 정비하고 역량을 강화함으로써 위기를 돌파하고 또 다른 성장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출처 : 이 원고는 11월 1일자 국회미래원구원 '미래생각')

 

* 박성준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 이 기고는 <시사앤피플>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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