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활동이 전 지구적인 환경 변화를 초래하면서 새로운 지질시대인 ‘인류세’가 시작되었다는 주장이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다시 말해 산업화를 기점으로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와 폐기물 그리고 무분별한 개발 활동이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의 손실과 같은 지구환경 스케일의 변화를 가져왔고, 현 인류의 활동은 새로운 지질시대를 열 정도로 전 지구적인 환경 변화를 초래했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지질시대가 구분될 만큼의 변화가 진행되고 있었으나 오랫동안 사람들은 그 영향에서 자유로운 듯 보였고 지구환경의 변화가 반대로 인간에게 큰 영향을 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살아왔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인한 초대형 기상재난, 생태계 파괴와 관련된 코로나19 등과 같이 큰 사건을 겪고 난 후에야 우리가 사는 환경이 예전과 같지는 않다는 것을 느끼고 ‘대전환’의 필요성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듯하다. 관건은 ‘과연 그동안의 경제성장 중심의 패러다임으로 형성된 관성에서 얼마나 빨리 벗어나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합한 방식으로 생산·소비·폐기할 것인가’이며, 또한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으로 발생하는 리스크를 어떻게 진단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어떻게 적응·회복할 것인가’이다.
이러한 사회 대전환의 시기에 세계 각국은 그린딜 또는 그린뉴딜이라는 이름으로 구조적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유럽 등의 해외 주요 국가들은 녹색전환을 국가 성장 패러다임 전환의 방향성으로 설정하고 점진적이고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20년부터 추진된 한국형 뉴딜 또한 '친환경 저탄소 등 그린경제'로의 전환을 목적으로 하는 그린뉴딜을 중요한 국가발전전략으로 삼았다. 그러나 녹색전환은 최근 몇 년 사이에 등장한 새로운 개념은 아니며 ‘녹색성장’ ‘녹색경제’ ‘녹색혁신’과 같은 용어로 관련 국내 정책이 추진된 바 있다. 여기서 드는 한 가지 의문은 ‘과연 우리나라는 녹색전환을 어떤 방식으로 추진해왔으며 그 성과가 어느 정도인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녹색성장지표가 녹색전환의 모든 성과를 보여주지는 않지만 국가별 환경·자원 생산성, 천연자원량, 환경의 질, 경제적 기회 및 정책 대응도, 사회·경제 지표 등 다양한 영역의 정보를 담고 있어 공신력 있는 통계자료 중 녹색전환의 성과를 가장 포괄적으로 보여준다. OECD 녹색성장 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일본, 이탈리아, 영국과 유사한 국가 프로파일을 가지는데, 이들 국가는 높은 인구밀도, 상대적으로 높은 PM2.5 노출 농도, 평균보다 낮은 온난화, 평균에 가까운 자원·환경 생산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 지표의 연간 변화율 데이터를 보면 각기 다른 변화의 방향성을 짐작할 수 있는데 여기서 우리나라는 다른 OECD 국가와는 매우 다른 녹색전환 양상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높은 경제성장률과 함께 높은 온난화 진행 속도는 다른 OECD 국가의 변화 경향과 비교했을 때 가장 구별되는 특징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높은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자원·환경 생산성의 향상을 도모하였으나 빠른 온난화와 대기질 악화와 같은 녹색전환과 반대되는 환경·보건 성과를 얻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09년 녹색성장 국가전략이 발표될 때 이미 패러다임 전환을 이야기하였으나 관련 성과지표의 현 수준과 방향성은 여전히 경제성장 과정에서 환경이 훼손되는 기존의 경로에서 크게 변화하지 못했음을 나타낸다. 경제와 환경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정책과 국가전략도 중요하지만 모든 경제 주체들이 변화를 통하여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가 있어야 지속가능한 변화의 모멘텀이 형성될 수 있다. 경제적인 이익은 계산 가능하고 객관적인 사실로 여겨지는 반면 환경이 훼손되는 데에 따르는 사회·경제적 손실은 주장처럼 들린다. 이러한 현세대의 인식 수준을 인정하고 환경 보전의 경제적인 실익과 훼손으로 인한 피해를 금전적인 가치로 환산하여 소통할 필요가 있다. 기후환경을 보전하는 데에는 금전적인 인센티브를 그 반대 방향에는 세금을 징수하는, 논리는 단순하지만 시행이 어려운, 정책 수단이 설득력을 얻고 필요성에 공감대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아직은 환경과 인간에 미치는 영향을 경제 언어로 풀어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녹색전환 국가전략이 의례적인 선언에 그치지 않고 중장기적으로 진정성 있는 변화 노력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즉 모든 생산, 소비, 폐기 주체는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별일 없으면 이러한 환경에서 살게 될 것이다’라고 생각했던 환경의 베이스라인을 완전히 교체하고 우리에게 당연하게 주어졌다고 여겼던 환경에 대한 인식을 조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의 인식 수준을 진단하고 바람직한 ‘전환’ 방향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논의하는 공론화 장이 열릴 필요가 있다. 반면 미래세대와의 소통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미래세대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어려운 과정을 거치지 않고 새로운 패러다임 안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도록 환경 문해력을 높이는 교육과정을 경험할 기회를 충분히 제공할 필요가 있다.
한편, 녹색전환은 경제성장 패러다임의 전환에만 적용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녹색성장이 더 이상의 환경영향을 줄이는 경제활동으로 녹색전환의 한 축을 형성한다면, 이미 파괴한 생태계 질서를 복원하는 노력(즉 저질러놓은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는 활동)이 다른 한 축이 되어야 하며, 그리고 환경이 복원되고 보전되기까지 발생 가능한 제2, 제3의 코로나, 자연재난에 적응하는 노력이 또 하나의 축을 형성해야 한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녹색전환 비전을 미래의 국가발전전략 방향과 일치시키는 작업은 앞에 남은 숙제이다.(출처 : 국회미래연구원 '미래생각' (11.8))
* 김은아 국회미래연구원 혁신성장그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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