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화 컬럼] 주택정책의 장기적 청사진이 필요하다
시사앤피플 | 입력 : 2023/01/26 [13:07]
[시사앤피플] 사상누각처럼 올라가던 집값이 급락하면서 ‘집을 팔아라’ 정책이 ‘집을 사라’ 정책으로 반전했다. 우리나라 국민이 오랫동안 경험으로 체득한 익숙한 풍경이다. 지난해의 금융·조세·공급 관련 규제 완화에 이어 올해 1·3 대책에선 분양가 상한제·전매제한·중도금대출 제한·실거주 의무 등 아파트 분양과 관련한 대부분의 규제가 폐지됐다. 미분양 증가에 따른 부동산금융 부실이 금융권 신용위기와 경제위기로 확산되리라는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어서 막힌 돈줄에 호흡기를 대 주는 조치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다만 늘 그렇듯 급한 불을 끄는 ‘조치’와 ‘대책’이 있을 뿐 전환의 시대를 대비하는 ‘정책’과 ‘비전’은 잘 보이지 않는다.
주택정책의 장기적 청사진을 그리기 위해선 주택이 갖는 두 가지 특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주택은 가계에 주거서비스(점유와 소비)를 제공하는 필수재라는 특성과 가계의 부가 형성되는 자산(소유)이라는 특성을 동시에 갖는다. 주거서비스는 개인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필수재이기 때문에 소득·연령에 상관없이 전 계층에 영향을 주는 반면, 자산으로서의 주택은 구매력 있는 가계의 투자 활동 영역에 속한다. 이 때문에 주택정책은 한 축으로는 주거복지의 실현을, 다른 한 축으로는 내 집 마련을 통한 자산 형성 지원을 목적으로 한다.
우리나라에서 후자의 정책적 중요성은 전자를 압도해 왔다. 특히 민간주택시장에서 자가 거주 가구는 임차 가구에 비해 주거 안정성이 높기 때문에 소유 기반 주택정책은 주거복지를 높이는 가장 중요한 정책 수단의 위치를 차지해 왔다. 자가점유율의 제고는 주택정책의 핵심적 가치로 여겨졌고 다양한 공적 지원이 무주택자의 주택 마련을 위해 부여됐다. 이에 비해 주택 구매력이 낮은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주거복지정책이나 점유 중심의 사회적 주택 공급정책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그나마 경제성장률이 높고 소득이 주택가격보다 빠르게 상승하던 시기에는 소득이 낮은 젊은 세대가 저축을 통한 종잣돈으로 정부의 ‘자산 사다리’ 정책의 수혜를 누리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성장의 둔화와 소득 양극화, 주택의 금융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소유 중심의 주택정책, 즉 내 집 마련을 지원하는 것으로 주거 안정화와 주거복지를 달성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주택가격이 정점을 향해가던 2021년만 보더라도 새로 집을 구입한 103만 명은 무주택자였으며 다주택자의 수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자가점유율의 경우 2010년 54.2%에서 2021년 57.3%로 상승했다. ‘꼭지’를 잡은 무주택자 100만 명과 이들로 인한 자가점유율 지표의 상승이 대한민국의 주거복지 수준을 높였다고 보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주택가격 폭등에 따른 무주택자의 ‘패닉 바잉’은 점유 기반의 공공주택 재고가 민간 임대차시장의 변동성을 완충해주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목적을 잃은 1주택자 우대정책 역시 시장참가자에게 왜곡된 유인을 제공하였다.
이상과 같이 주택가격의 폭등과 급락이 교차한 최근 몇 년간의 경험은 우리나라 주택정책의 모순과 이로 인한 시장의 취약성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특히 금융이 주택시장을 주도하는 ‘주택의 금융화’를 피하기 어렵다면 주택정책의 밑그림에서 ‘자산’ 정책과 ‘주거서비스’ 정책은 분리될 필요가 있다. 자산 또는 소유의 영역에서 주택정책의 원칙은 주택이 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자산시장의 일부임을 인정하고 투자 수익에 따른 형평성 있는 과세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에 따라 주택 관련 조세는 1주택자에 대한 혜택이나 다주택자에 대한 징벌적 차원이 아닌 조세의 효율성과 형평성 원칙에 기초해 재설계되어야 한다.
주거서비스 또는 점유의 영역에서는 주거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다양한 공급모델이 필요하다. 주체별로 공공임대의 경우 분양전환 방식을 지양하고 주거 취약층을 흡수할 수 있는 재고 확보가 관건이다. 민간임대 영역에서는 임대계약의 공공성 강화와 사업자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우리나라의 임대사업 모델은 임대업의 낮은 채산성을 주택 매각을 통한 청산 수익으로 보전해 주는 구조인데, 이러한 모델로는 서비스 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는 충분한 임대주택 재고를 확보하기 어렵다.
임대차계약의 공공성을 강화해 주는 대신 투자의 불확실성을 낮춰주거나 세제 혜택 등이 부여되어야 주택 공급자가 분양사업이 아닌 임대사업에 투자할 유인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공공성 기준에 부합하는 충분한 임대주택 물량은 자산시장에서의 금융 충격이 주거서비스 불안정으로 고스란히 전가되는 현재의 구조를 개선하고 주거 안정성을 강화하는 정책적 버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출처 : 국회미래연구원 미래생각 1월 25일자)
* 이선화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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