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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찬 컬럼] 유럽에서 아시아가 배워야할 지역민주주의

시사앤피플 | 기사입력 2023/02/14 [22:05]

[채수찬 컬럼] 유럽에서 아시아가 배워야할 지역민주주의

시사앤피플 | 입력 : 2023/02/14 [22:05]

▲ 채수찬 경제학자, 카이스트 교수    

[시사앤피플] 1월말부터 며칠간 유럽에 다녀왔다. 여정에 스트라스부르그가 있었다. 역사적으로 독일과 프랑스의 지배를 왔다갔다 하다가 지금은 프랑스에 속한 알사스지방의 도시로서, 유럽연합의 의회인 유럽의회가 있는 곳이다. 

 

유럽연합은 정치적으로는 느슨한 연합체지만 경제적으로는 단일시장에 가까운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유럽연합에서 주권국가들의 이해가 갈리는 주요문제들은 국가대표들의 협의체에서 결정된다. 그래도 유럽의회는 의원들이 인구비례로 직선되기 때문에 유럽주민대표들이 함께 모여 유럽공통의 문제를 논의하며 유럽이 하나가 되는 문화형성에 기여하고있다.

 

지구상의 어느 지역이나 마찬가지로, 유럽의 역사도 서로 다른 민족, 종교, 그리고 정치체제간의 갈등과 다툼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다. 알사스 지방이 그 산 증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인들이 2차대전 이후 통합적 정치체제를 구성하여 민주적으로 운용해가고 있음은 대단한 성취다. 유럽연합은 유럽인들이 자유와 평등의 정치적 가치를 공유하고, 시장경제를 뒷받침하는 도구로서 훌륭히 기능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인류가 오랜 역사 속에서 골라낸 차선의 정치체제다. 

 

문제도 적지 않아 최선이아닌 차선이라 했지만, 현실적으로 이보다 나은 정치체제는 없다. 민주정치의 핵심은 언론자유와다수결원리다. 큰 집단인 경우에는 의회가 필수기구이며 야당할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자유추구와 평등지향의 담보이며, 시장경제작동의 담보다. 

 

사회 혁신과 진보의 담보이며, 평화의 담보다. 현재 지구상에 벌어지고 있는 많은 불행한 사태들을 보면 폭력에 의한 지배와 독재정치의 결과물인 경우가 많다. 민주주의가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비민주적이며 억압적인 정치체제중 하나인 북한도 국가명칭을 김일성일가 독재왕국이라 하지 않고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고 한다. 

 

그러나 민주정치의 실행은 간단치 않다. 민주주의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하고 이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더욱이 국경을 넘어선 국가연합체에서 민주정치가 작동되려면 서로 스텝을 맞출 수 있는 정교한 동작들이 필요하다. 유럽연합은 정치경제적 기능을 넘어 회원국들 간에 다시는 물리적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예방하는데 기여하고, 외부로부터의 위협이나 공격에 대해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통해 공동대응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왜 아시아에는 아시아연합이나 아시아의회가 생겨날 수 없는가. 민주주의 전통이 약하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경제적인 면에서나 군사적인 면에서 유럽국가들 못지않은 역량을 지니고있어 아시아연합의 주축이 될 법도 하지만 리더십이 전혀 없다. 일본이 상대적으로 일찍 국제화되고 경제성장을 이루었지만,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데 급급할 뿐, 아시아국가들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해보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다. 

 

중국은 후발주자로 경제성장을 어느 정도 이루자, 자기 몸집만 믿고 주변국들을 위협하면서 물리적 지배력확장 야욕을 드러내어 오히려 지역통합에 장애가되고 있다. 한국은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역사상 가져보지 못한 국제적 위상을 누리고 있지만, 거기에 걸맞게 국제적 플레이어가 될 마인드가 없다. 동아시아 3국 중에는 그나마 한국이 앞으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잠재력이 가장 크다. 

 

민주주의에 앞서 있기 때문이다. 2차대전 이후 3국의 정치를 일별해보자. 한국은 반독재투쟁을통해 민주주의를 쟁취했고, 정권교체의 전통을 확립했다. 일본은 정치과정은 민주적이었지만, 10개월의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는 한 정당이 집권해왔다. 중국은 아직도 공산당이 지배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당내의 세력균형도 무너져 독재정치로 가고 있다. 

 

아시아연합이 이루어지려면 동아시아 3국이 성숙해야 한다. 기성세대에서는 어렵겠지만 신세대에서는 가능할 것이다. 세 나라 젊은이들이 활발한 교차유학과 문화교류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해 갔으면 좋겠다. 기성세대의 몫일지 신세대의 몫이 될지 모르지만, 자국내 정치를 보다 민주적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게 선결과제다. 

 

* 채수찬 카이스트 교수

* 이 기고는 <시사앤피플>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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