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아 컬럼] 원자재 공급 안정성이 중요한 미래의 물질 순환
시사앤피플 | 입력 : 2023/02/20 [08:48]
[시사앤피플] 유럽은 2008년 원자재 이니셔티브(raw materials initiative)를 시작한 이래, 2011년에 첫 번째 핵심원자재(critical raw material) 리스트를 발표하는 등 일찍부터 원자재 공급 안정성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대비해왔다. 그리고 최근 핵심원자재법이라는 강력한 카드를 준비하고 있음을 국제사회에 공개하였고 올해 3월까지 법안을 발표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한편, 미국은 작년 통과시킨 인플레이션 감축법 안에 세제 혜택을 받기 위한 조건으로 배터리에 포함된 핵심 광물의 원산지를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된 국가로 제한하고, 전기자동차의 경우 재활용 지역을 북미로 제한하는 등의 내용을 포함하였다. 이렇게 주요 국가들을 중심으로 핵심원자재 공급 리스크를 관리하려는 움직임이 눈에 띈다.
지금까지는 자원이 풍부하거나 환경규제가 상대적으로 약한 일부 국가에서 전 세계에 원자재를 공급하고, 선진국 등 소비가 많은 국가에서 사용된 제품 안에 자원이 매립되는 방식의 발산형 물질 흐름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제는 중간재 이후의 제조에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국가들이 원자재 공급이 과거와 같이 원활하지 않을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어 역내에서 원자재를 공급받고 최종재를 생산하는 군집화된 물질 흐름으로 패턴이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물질 흐름 패턴의 전환은 디지털전환과 녹색전환에 따라 바뀌는 미래 주력산업에 필요한 핵심원자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전략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전 세계에서 음으로 양으로 진행되고 있다.
핵심원자재 공급 안정성을 높이는 주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원자재 공급자를 다각화하는 방법이다. 가능하다면 이 방법이 빠르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으나 이미 중국은 핵심원자재 가공산업의 중심이며 그 영역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어 일부의 원자재에만 적용 가능한 방법이다.
둘째, 핵심원자재를 역내에서 생산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새로운 광산을 개발하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광산을 개발하더라도 금속광물 제련 등의 원자재 가공은 그 과정에서 환경오염물질이 다량 발생하기 때문에 이로 인한 지역주민과의 갈등을 해결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며, 환경규제 수준이 높은 국가에서 지불해야할 환경부담금 또한 상당하다. 즉 단기간에 핵심원자재 생산 공장을 세우는 것도, 그리고 그 공정을 친환경적으로 전환하는 것도 사회적으로, 기술적으로, 경제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만만치 않다.
셋째, 핵심원자재를 함유하고 있는 제품을 재활용하는 방법이다. 유럽이 이 세 번째 선택지에 주목하는 것은 그동안 순환경제 관련 정책 및 기술개발에 공을 들여온 것과 무관하지 않다. 지금까지 공개된 EU 핵심원자재법 내용에서 유럽이 국제사회에서 순환경제 산업과 규범의 주도권을 가지고 가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여기서 잠시, 순환경제란 무엇인가? 돈을 지불하는 활동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경제는 항상 순환해왔기 때문에 '순환경제'에서 '순환'은 불필요한 수식어라고 이야기하는 경제학자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순환경제는 경제활동을 물질의 흐름에서 바라보는 개념이고 물질순환경제가 좀 더 정확한 표현일 수 있다. 기존의 선형경제가 생산에 필요한 자원을 무한정 새로 채굴하여 공급 가능한 조건에서 작동 가능한 방식이라면, 순환경제는 환경적으로, 경제적으로 그러한 조건이 형성되기 어려운 여건에서 우리가 경제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으로, 신규 자원의 사용을 최소로 하기 위하여 사용된 제품과 물질을 폐기하지 않고 생산에 다시 활용하는 시스템이다.
순환경제는 본래 환경·생태적인 필요성에 의해서 시작되었지만, 대전환의 시기에 다양한 부문의 전략 요소로 부각되고 있는데,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전략뿐만 아니라 원자재 공급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중장기 전략으로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전 세계적인 흐름에서 우리나라는 핵심원자재 공급 안정성을 높이기 위하여 어떠한 대비를 해야 할까? 우리나라와 같이 천연자원이 부족하면서 원자재 가공 대국을 옆에 둔 산업화가 진전된 국가의 자원의존도를 낮추는 중장기 전략으로 재생원료 사용 및 재제조와 같은 순환경제 전략을 강화하는 세 번째 방법이 가장 확실한 대비책이 될 것이라고 본다.
배터리 재활용의 경우 최근 원자재 공급망 안정 관련하여 중요한 전략으로 부각되고 있는데 배터리뿐만 아니라 로봇, 항공·우주, 반도체, 디지털 산업, 신재생에너지 등 미래 산업에서 중요한 핵심원자재 확보 전략으로서 순환경제 산업 및 기술 경쟁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미래에 물질이 순환한다면 어느 지역적 범위 안에서 순환하게 될까?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미래에는 물질 흐름이 군집화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우리나라는 어떤 물줄기에 합류할 것인지, 또는 새로운 물길을 만들어낼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유럽의 핵심원자재법이 공급 리스크를 줄인다는 의미는 원자재를 공급하는 국가 범위에 신뢰할만한 국가만 포함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핵심원자재법은 물질 흐름에 영향을 주는 하나의 조각이며, 이미 이슈화된 탄소국경조정, 그리고 그 훨씬 전에 발표한 화학물질등록·평가·승인법(EU REACH) 등을 통하여 유럽은 그들이 설정한 환경 규범에 부합하지 않는 생산자와의 거래를 어렵게 하는 한편, 그들의 질서를 다른 국가들도 따르는 방향으로 규범을 선도하고 있다.
이렇듯 미래의 물질 흐름은 신뢰할 수 있는 국가끼리, 다양한 국제적 아젠더에서 뜻을 같이할 수 있는 국가끼리 이루어질 것이며, 그 함께하는 뜻 중에 환경국가로의 지향점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핵심원자재 공급안정성 강화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시장전망과 개별 산업의 유불리를 고려한 개별 부처의 대응 수준 이상의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다.
우리는 어떤 국가와 뜻을 같이하는(like-minded) 국가가 될 것인지, 어느 수준의 환경국가를 지향하는지, 국가발전의 지향점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이 필요하다. 전 세계적인 대전환기에 '우리나라가 어떤 방향성과 가치를 지향하고 있는가?'에 대한 대답 없이 핵심원자재 공급안정성 강화 정책을 수립한다면 관련한 외교통상전략, 미래산업전략, 중점기술개발 전략 각각이 마치 두더지 잡기 게임을 하듯 위기에 처한 산업을 긴급하게 지원하는 방식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출처: 국회미래연구원 2월 14일 미래생각)
* 김은아 국회미래연구원 혁신성장그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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