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년에 사군자를 벗 삼던 아버지는 자주 난을 치며 시간을 새겼다
낚시 다니다가 보아 두셨을까 여기에도 한 점 쳐 두셨네
[시작노트] 한강변을 지나오면서 차량이 정체되어 잠시 머무는 동안, 창문 밖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잘 친 군란이 보였다. 행여 차가 움직일까 봐 가슴 조이며 셔터를 눌렀고 언술은 즉석에서 피어났다.
아버지가 정년을 맞기 전 나는 화실에 등록을 해드렸다. 중앙청에 가는 버스를 타면 안국동에서 내리게 되고 오가는 거리가 익숙하면 퇴직의 안타까움을 덜 느끼라는 배려였다.
그렇게 시작하여 사군자를 열심히 습작하시면서 틈나는 대로 난을 쳐서 모아두었다가 연말이면 연하장으로 사용하라고 육 남매에게 나누어 주셨다.
어머니에게는 부활절에 봉헌하라고 달걀에 난을 쳐서 한 바구니 주셨다. 돌아가시고 나서 유품을 정리하자니 병풍용 사군자 그림을 그려서 비닐에 고이 싸두셨다.
* 오정순 수필가 / 시인 * 이 기고는 <시사앤피플>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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