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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찬 컬럼] 일본식민지지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시사앤피플 | 기사입력 2023/03/17 [17:35]

[채수찬 컬럼] 일본식민지지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시사앤피플 | 입력 : 2023/03/17 [17:35]

▲ 채수찬 경제학자, 카이스트 교수    

 [시사앤피플] 필자가 중학생 때의 일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영어 약자의 뜻을 몰라 고개를 갸우뚱하자 옆에 있던 '백운면 큰아버지'가 그 약자를 구성하는 영어단어들을 또박또박 말하였다. 필자는 놀랐다. 큰아버지는 무능력자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한테 이 이야기를 하니, 큰아버지가 아버지 형제 중에서 머리가 제일 좋았다고 해서 또 놀랐다. 아버지 형제들 중에는 수재로 알려진 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백운면 큰아버지는 고등학교 시절에 항일운동으로 옥고를 치뤘고, 일제강제동원에 끌려 갔다가 탈출하기도 했다. 이후 일제경찰의 고문 후유증으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했다.

 

2018년 한국대법원은 일본식민지지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일본의 가해기업들이 배상하도록 판결하였다. 이는 일본 정부와 사법부의 입장과 배치되는 판결이어서 한일관계에 걸림돌이 되어왔다. 일본식민지지배의 성격에 대한 한일간 입장이 일반국민의 인식면에서나 법체계 면에서나 근본적으로 달라 생긴 문제다.

 

이를 국제법정에서 해결해줄 수도 없는 문제라서 창의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게 현실이다. 최근 한국정부는 제3자 보상 방식을 제안했고 일본정부는 이를 환영했다. 한국정부의 해법은 두가지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 첫째는 피해자들의 입장을 반영한 본질적 해결책이 아니고 정부가 외교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편의적 해법이라는 점이다.

 

이런 해결책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자명하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한국인도 일본인도, 그리고 온세계가 다 알고 있는 것은 문제의 본질이 금전적 보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금전적 보상은 정신적 피해보상의 수단일 뿐이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에 대한 보상에서 중요한 요소는 가해자가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거나 아니면 인정하도록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다.

 

둘째로, 한국정부의 해법은 인류가 지향해야 할 보편적 가치의 측면에서 볼 때 잘못된 해법이다. 물론 오늘의 지구상에도 폭력으로 이웃나라를 침략하고 이웃민족을 지배하려 드는 나라들이 있다. 긴 인류역사에서, 이런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고 인식되고, 그래서는 안된다고 국제규범으로 선언된 것은 아주 최근, 그러니까 요즘 사람들이 제2차세계대전이라 부르는 사건 이후일 따름이다. 그런데 2차대전 이후에도 폭력에 의한 지배는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나 없어지지 않고 있다. 아니, 아직도 많은 나라 많은 사람들이 이런 폭력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한반도 인접국인 러시아는 폭력에 의한 지배를 불법적 행동으로 인식하는 가치와 규범을 무시한다는 것을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과시하고 있다. 또 하나의 한반도 인접국인 중국도 최근의 행동을 보면 이런 가치와 규범을 존중하는 나라로 보여지지 않는다. 일본은 어떤가. 2차대전 이후 일본은 분명히 폭력에 의한 지배를 배척하는 규범을 준수하는 나라다.

 

그런데 일본은 이런 보편적 가치를 지향한다고 명백히 선언할 기회를 사용하지 않고 지내보내는 경우가 많다. 한일간 과거사로 인한 이슈가 나올 때 취하는 일본정부의 행동이 그렇다. 이 문제는 한국정부가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일본 스스로가 해결해야 될 문제다. 이런 맥락에서, 일본식민지지배 강제동원 피해자 보상에 대한 창의적인 해결책은 한국정부가 낼 게 아니고 일본정부나 일본 사회에서 내는 게 순리다.

 

필자가 외국에 있다가 2004년에 국내로 들어와, 행사가 있어 전북독립운동추념탑을 방문했을 때 추념탑 옆에 있는 전북출신 독립유공자 588인의 이름을 각인한 현창비를 보게 되었다. 거기에는 진안군출신 유공자로 채도석이라는 이름이 올려져 있었다. 진안군 백운면 큰아버지의 이름이다. 

 

채수찬 경제학자, 카이스트 교수    

* 이 기고는 <시사앤피플>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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