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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찬 컬럼] 원모심계하는 외교전략이 안 보인다

시사앤피플 | 기사입력 2023/03/24 [17:10]

[채수찬 컬럼] 원모심계하는 외교전략이 안 보인다

시사앤피플 | 입력 : 2023/03/24 [17:10]

채수찬 경제학자, 카이스트 교수    

 [시사앤피플] 1970년대 헨리 키신저와 저우언라이의 비밀회담을 거쳐, 리처드 닉슨과 마오쩌뚱의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면서 소련과 거리를 두었던 중국은 최근 미국과 대립하며 러시아와 가까워지고 있다.

 

중동에서 미국의 우방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는 자국 언론인 자말 카슈크지 살해사건 이후 서방국가들과의 관계가 악화되었고, 최근에는 미국을 적대시하는 이란과 관계를 개선하였다. 어지럽게 펼쳐지는 합종연횡 국면에서 그나마 하나의 가닥을 찾는다면, 민주주의진영 대 전제주의진영으로 세계질서가 재편되는 경향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도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중국은 국력이 커지자 밖으로 힘을 과시하는 외교를 구사하고 있어, 주변국들이 느끼는 위협이 커지고 있다. 중국의 대만침공 가능성을 두고는 미국과 중국이 일전불사하겠다는 태도로 거친 말과 몸짓을 주고 받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켜, 약소국의 주권을 존중하지 않겠다는 것을 행동으로 선언한 상태다. 주변국 중에서는 일본이 한국과 안보면에서, 특히 대중국 관계에서, 같은 배를 타고 있다.

 

그러나, 과거 일본 식민지지배의 경험이 있는 한국은 일본의 잠재적 공격성향에 대해 경계할 수 밖에 없다. 이 문제는 일본이 풀어야 한다. 과거사에 대해 한국인들이 신뢰할 수 있는 말과 행동을 보여야 한다. 그동안 일본은 한국인의 요구가 있을 때에만 마지못해 과거사에 대해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한국인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일본이 맘만 먹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강제동원 피해자배상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은 인류보편적 가치보다는 일본인의 자존심을 내세워 인색하게 대응해왔다.

 

일본의 인색한 대응으로 생기는 문제를 한국이 해결해줄 수는 없다. 일본이 풀지 못하니 우리가 풀겠다고 한국정부가 나서서 될 일이 아니다. 공식채널과 인적네트워크를 동원해서 일본정부와 일본사회를 설득해 한국민의 입장을 이해시켜야 한다. 식민지지배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보상 문제를 국제적으로 이슈화하여 일본인들이 스스로를 뒤돌아보게 만드는 노력도 해야 한다. 최근 한국정부가 취한 일련의 대일외교 행보를 보면서, 잘못된 일처리에 대한 실망을 넘어, 현정부의 외교역량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일본식민지지배하 강제동원 피해자배상에 대한 해법이 잘못되었다. 피해자들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은 현정부의 제3자배상안은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이 될 수 없다. 무엇을 풀겠다는 제안인지 어리둥절해진다. 현정부는 정말로 누가 내든지, 어떤 돈이 됐든지, 피해자들에게 돈만 지불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한 것일까. 더 심각한 것은 이번 제안에 드러난 현정부의 가치관과 국가관이다. 이 제안에 대해서는 한국민 대다수가 동의할 수 없을 뿐더러, 이런 문제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가치판단과도 괴리가 있다. 이런 제안을 해법이라고 내놓을 수 밖에 없는 옥죄는 상황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제3자배상 제안 뒤에 이루어진 한일정상외교의 내용은 필자를 더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현정부가 일본정부의 호감을 얻은 것 외에 무엇을 얻었는지, 원래 무엇을 얻으려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전략적 설계가 보이지 않는다. 원칙도 실리도 없는 졸속외교로 보인다. 이번 대일외교 행보는 두고두고 한국정부에 부담이 될 것이다. 정치는 지역정치라는 말이 있다. 자국 국내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외교는 실효성이 없다.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이번 대일외교 행보로 인해 현정부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떨어질 수 밖에 없고, 이로 인해 현정부가 추진하는 다른 정책들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대일외교 행보로 인한 문제가 커지자 대통령이 나서서, 일본정부가 그동안 여러 번 식민지 지배하에서 한국인이 입은 고통에 대해 사과했으니, 강제동원 피해자배상 문제는 일본정부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이제 일본과 함께 미래로 가자고 국민을 향해 거침없이 얘기한다. 국가지도자로서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성찰해보고 고뇌에 찬 결론에 이르러, 먼저 진지하게 국민을 설득한 뒤 행동에 나서는 수순이 아니다.

 

일단 뭔가 성과를 내고 보자는 조급한 마음에서 일을 벌여 놓고, 문제가 생각보다 커지자 그럴듯한 논리로 이를 정당화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이런 공감얻기 힘든 이야기를 대통령이 나서서 하도록 할 정도로 현정부 외교팀에는 생각있는 사람이 없는가. 최근 한국정부의 대일외교 행보는 현정부가 앞으로 닥쳐올 한반도 주변의 격랑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역량을 지니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대일외교에서 드러난 현정부의 역량이 이 정도라면, 미국, 중국, 북한과의 관계도 제대로 설정되어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현정부내에 원모심계하는 전략가가 있는가.

 

* 채수찬 카이스트 교수

* 이 기고는 <시사앤피플>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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