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앤피플] 지난달 어느 날 아침 등산길에 진달래가 처음 보였다. 드디어 봄이 오는구나 하는 설렘과 함께 감염병사태에 짓눌렸던 지난 삼년과 달리 올해는 봄다운 봄이 되겠구나 하는 기대가 피어 올랐다.
늘 함께 등산하는 진돗개 설이와 빠삐용 믹스견 빠삐도 길가 풀뿌리 냄새를 킁킁 맡으며 해찰이 길어졌다. 그런데 다음날 보니 온 산에 진달래가 활짝 피었다. 통상 며칠 걸려 피던 게 하루만에 다 핀 것이다.
또 다음날에는 개나리와 목련이 동네 길가에 보이기 시작하더니, 바로 다음날에 온 전주시내에 다 피어 버린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 다음날에 벚꽃이 피더니, 바로 다음날에는 전북대학교 교정이 온통 벚꽃 천지가 되었다. 이렇게 봄꽃들이 불과 며칠 사이에 한꺼번에 만개하는 걸 보는 건 평생 처음이다.
물론 필자의 평생이란 게 백 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니 이게 비정상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 때문이라고 지구환경 연구자들은 말하고 있다.
지구상의 기후변화 주기로 보면 우리는 지금 추운 빙하기 사이의 따뜻한 간빙기에 살고 있다. 이러한 주기적 기후변화는 지구가 흔들거리며 공전하는 동안 태양으로부터 받는 에너지 양의 변화에 따라 발생한다. 그래서 간빙기 동안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더라도 다가오는 빙하기를 피할 수는 없다.
빙하기가 오면 인류문명은 어떻게 되는가. 이런 걱정을 하는 사람은 없다. 지금 인류는 오는 빙하기를 걱정하는 게 아니고, 현재의 간빙기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구온난화를 걱정하고 있다. 인류 활동의 영향으로 이산화탄소가 지나치게 많이 배출되어, 통상 몇 만년에 걸쳐 진행되는 온난화 과정이 몇 십년만에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게 관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가 걱정하고 있는 것은 앞으로 몇 십년간 일어날 일들, 길게 보아도 앞으로 몇 천년간 일어날 일들이다. 현생인류(Homo Sapiens)가 삼십 만년전부터 살아온 걸 생각하면 매우 근시안적인 관점이다. 그러나 또 한편 생각해보면 몇 만년 뒤까지 걱정하는 것은 오지랖이 넓은 어리석은 일이다.
몇 만년 뒤의 일은 인류의 지적능력과 가치관을 뛰어 넘는 주제다. 이상기후로 한꺼번에 핀 봄꽃에 대한 소회를 말하다가 얘기가 현실감 없이 지나치게 근본적인 데로 나가버렸다. 그래. 지구온난화를 걱정하자. 현실적으로 닥쳐온 문제니까. 인류는 지구온난화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 큰 흐름을 멈출 수는 없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이에 적응해 가고 있다. 그런데 지구온난화가 심각한 현안문제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대통령은 기후온난화를 불편한 가짜뉴스 정도로 치부한다. 그런데 트럼프가 대표하는 별난 정치의 흐름은 기후온난화와 비슷한 데가 있다.
그동안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행해온 통상적인 정치의 틀에서 보면 트럼프류의 정치는 비정상이다. 그렇지만 세계 여기저기서 이런 별난 정치가 거역할 수 없는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음도 부정할 수 없다. 태극기부대와 개딸이 판치는 한국의 팬덤정치도 그 중의 하나다.
트럼프가 기소되었다. 전직 대통령들이 감옥에 가는 데 익숙한 한국사람들이 보면 이상할 게 없지만, 정치보복을 금기시하는 그동안의 미국정치의 전통에서 보면, 중대범죄도 아닌 일로 전직 대통령이 기소된 것은 그 자체로 별난 일이다.
트럼프가 시작한 별난 정치의 흐름에서 일어난 사건이니, 트럼프가 자초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이상기후가 추세가 되면 이에 적응해 가는 수밖에 없다. 별난 정치도 이제 하나의 추세인가. 아니면 이를 되돌릴 수 있을 것인가.
* 채수찬 • 경제학자 • 카이스트 교수 * 이 기고는 <시사앤피플>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시사앤피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시사앤피플
댓글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