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송세영 회장(대한민국 고엽제전우회 동대문지회)을 만나살아 있는 동안 내 이웃을 위해 봉사하며 살겠다[시사앤피플] 이석우 기자 = 송세영 회장(77, 대한민국 고엽제전우회 동대문지회)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청춘”이라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그는 지난 달 24일 한·중 수교 30주년 기념 주한 중국특명 전권대사 싱하이밍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송 회장은 지난 3일 인터뷰에서 젊게 사는 것은 ‘신사고’를 가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수십년 간 무역업(자동차 부품)에 종사하면서 항상 일일신 우일신하면서 새로움을 갖고자 했다.
이러한 습관을 갖게 된 계기는 월남전 파병시절부터였다. 그는 “전쟁터에서 민첩하게 움직이는 몸놀림과 새로운 생각(적군의 침입)을 하는 것은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본능이 표출된 행동”이라 봤다.
그는 어떤 명령이 하달되면 당장 이행하고, 속히 움직이는 습관은 그 때부터 생겼다.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군인정신’ 이다. 지금도 책임감, 민첩함, 애국심, 봉사정신 같은 가치는 누구도 그를 따라갈 사람이 없을 것 같다.
전우인 이한종 씨(제조업)는 “송 회장은 참으로 훌륭한 분이다”며, “노후에도 왕성한 봉사활동으로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 내고 존경스럽다”고 극찬했다.
송 회장은 “‘월남전’에서 생사를 넘나들던 순간에도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마치고 귀국해 우연한 기회에 무역업에 종사하게 됐다”며, 특히 “1992년 이전 미수국인 중국에서 활동을 한 경험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고 귀뜸했다.
그는 미수교국인 중국과 한국의 수교 분위기가 고조될 때 민간인으로서 민간외교를 한다는 마음으로 현지 지인들과 함께 대한민국 발전을 위해 나름 노력했다.
지인 전권천 씨(분당)는 “올해 한·중수교를 기념하여 감사패를 받은 것은 실로 위대한 업적의 증표”라 했다. 그러면서 전 씨는 “송 회장의 인생기록을 위해 그동안 한·중 관계 증진에 협력했던 개인 자료들을 정리해 보존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송 회장은 22세 때 월남전 파병 장병으로 부산항에서 배낭을 매고 승선하던 때가 항상 눈에 선하고 했다. 그는 1967년 파월 군사령부에 배치됐다가 포병 대대로 전보돼 전쟁의 현장에서 지냈다. 이 때 “애국심과 생존에 대한 본능적 감각이 생기게 된 것 같다”고 했다.
군대에서 시작한 외국생활은 제대 후에도 이어져 차츰 외국어 실력이 조금씩 늘게 돼 국제무역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송 회장은 무엇이든 “한번 한다면 끝까지 한다”는 정신으로 살아왔다.
그는 사람이 살면서 가장 힘든 것 중의 하나가 ‘배고픔’이라 했다. 지금이야 먹을 게 풍부하지만, 그 당시는 먹거리가 늘 부족해 굶주림이 연속이었다.
그는 태권도 3단의 건장한 청년이었지만, “배고픔만은 참을 수 없었다”고 전했다. 당시 전투 현장에서 “종이컵에 뜨거운 음식을 담아 먹곤 했는데 손이 뜨거워 힘들었던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배고픔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알기 때문에 어려운 이웃과 나눠 먹는 것과 남을 돕는 것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게 됐다”고 했다.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는 송세영 회장. 이번 추석 명절에도 어려운 전우를 찾아 쌀을 전하고, 시간 나는 대로 회원들과 함께 지역 봉사활동에 나섰다.
‘월남전’은 1964년 9월 11일부터 1973년 3월 23일까지 약 8년 8개월간 치러진 남북 베트남 전쟁임과 동시 냉전시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진영 간 국제 전쟁이다.
당시 한국의 젊은이들은 국가의 부름을 받고 세계평화와 국위선양을 위해 월남으로 파병돼 연인원 325,517명이 월남전에 참전했다. 이 중 전사자 4,873명, 사망자 226명, 전상자 및 실종자 10,962명이 희생됐다.
미국은 게릴라전에 대비하기 위해 울창한 숲과 산림을 제거할 목적으로 다이옥신이 함유한 고엽제를 대량 살포했다. 이로 인해 인체에 치명적인 피해가 발생해 참전용사 중 5,099명이 사망하고, 12,000명이 부상 및 상이자로 남았다.
송 회장은 “함께 생활했던 전우들이 지금은 병마에 시달리면서 늙어 죽어가고 있는데 고엽제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당시 살아남은 전우들은 1991년 7월 고엽제대책본부를 발족하고, 이후 1997년 12월 사단법인 월남전 고엽제전우회를 설립해 현재 대한민국 고엽제전우회를 이루고 있다. 동대문지회는 2008년 5월 7일 발족했다.
동대문 관내 보훈가족은 5,000명으로 설립 당시 고엽제전우회 동대문지회 회원은 약600명이었다. 하지만, 매년 노병들이 사망해 회원이 감소돼 현재 회원은 150명 정도가 활동 중이다.
송 회장은 2019년 1월 9일 3대 회장에 취임해 회원들과 함께 지역사회 봉사활동에 나서고 있다. 회원들 또한 오랜 기간동안 이런 활동을 경험해 와 모두 불평 없이 동참하고 있어 감사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회원들은 담배꽁초 줍기, 길거리 청소하기, 불우이웃돕기, 방역지원활동, 어린이 길거리 보호 등 주민들이 필요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봉사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금년 들어 코로나19 때문에 집합활동이 어려워지자 소모임 위주로 매주 2회~3회 동네 주변 공원에서 청소하기, 방역활동 등을 지속 진행해 왔다. 지금까지 진행해 온 지역은 새샘근린공원, 장미어린이공원, 전국마음맏당공원, 전농2소공원, 장안근린공원, 간데메공원 등 45곳이다.
송세영 회장은 “진정한 호국정신은 목숨을 바칠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며, “우리 또래는 호국정신으로 뭉쳐 있어서 무엇이든 비장한 각오로 진지하게 받아 들이는 편”이라 했다.
그는 1968년 파월장병 위문공연 때 가수 김세레나, 故 코메디언 송해 선생 등이 월남 현지에 와 공연할 때 폭탄 2발이 무대에 떨어졌다는 에피소드를 전했다. 그 때 다행히 불발이 돼 모두 목숨을 건졌다. 송 회장은 “바로 그 현장에 있었기에 송해 선생이 생존해 있을 때 그 얘기를 자주 하며 추억을 나눴다”고 했다.
송 회장은 “지금 살아 있는 것은 덤으로 사는 것과 같다”며, “살아 있는 동안 늘 감사하고,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는 마음을 갖고 싶다”며, 밝게 웃었다.
송세영 회장은 1946년생으로 경원대 경영대학원, 고려대 생명환경대학원 등을 수료하고, 서울 제1자동차부품협동조합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예재상사 대표이사, 제3대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동대문지회장 등을 맡고 있다. 그는 주한대사의 감사패, 대통령 감사장 외 다수의 표창장을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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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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