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서비스라는 말이 있다. 「사회보장기본법」 제3조 제4호는 사회서비스를 “국가ㆍ지방자치단체 및 민간부문의 도움이 필요한 모든 국민에게 복지, 보건의료, 교육, 고용, 주거, 문화, 환경 등의 분야에서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고 상담, 재활, 돌봄, 정보의 제공, 관련 시설의 이용, 역량 개발, 사회참여 지원 등을 통하여 국민의 삶의 질이 향상되도록 지원하는 제도”라고 한다.
이를 근거로 「사회서비스 이용 및 이용권 관리에 관한 법률(사회서비스이용권법)」은 사회복지사업법상의 사회복지서비스와 보건의료기본법에 따른 보건의료서비스를 사회서비스로 정의하고 있다. 한편 사회서비스 전자바우처에서는 이를 “일반적 의미에서 개인 또는 사회전체의 복지증진 및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사회적으로 제공되는 서비스로서 공공행정, 사회복지, 보건의료, 교육, 문화를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한다. 이에 반해 돌봄이라는 용어는 2010년대 중반 이후부터 점점 더 많이 사용되어 오고는 있음에도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정의하고 있지 않다. 때문에 개념이나 범위가 어떠한지 알기도 쉽지 않다.
윤 대통령은 올해 1월 보건복지부로부터 새해 업무보고를 받은 자리에서 돌봄의 준시장화에 따른 경쟁시스템을 언급하였다. 여기에 사회서비스의 산업화, 돌봄과학화와 테크놀로지 등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는 왜 돌봄 준시장화를 말하는가
언급한 바와 같이 돌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정해진 바가 없으며, 사회서비스도 역시 명확하게 무엇이다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다만 사회서비스이용권법을 근거로 하면 사회복지서비스와 보건의료서비스가 사회서비스다. 그렇다면 이 법에 따른 사회서비스와 돌봄을 구분하기 쉽지 않다(이하에서는 양자를 혼용하여 사용하고자 한다).
한편 준시장 또는 유사시장(quasi-market)은 미국의 경제학자 윌리엄슨(Williamson)에 의해 처음 사용된 용어다. 그는 공공행정이나 재정에 있어서는 기존의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자유시장에서와 같은 효율성을 얻을 수 있도록 설계된 공공부문의 제도적 구조로서 정책결정자에 의해 생성되는 자유방임형의 교환형태라고 한다. 이에 따르면 준시장은 행정 등과 같은 공공부문에서 자유시장에서와 같은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국가의 정책결정자에 의해 설계된 제도라는 특징을 가진다. 이는 공법학에서 말하는 사화(私化)이론과도 유사하다.
이러한 맥락해서 현재 한국의 돌봄구조는 어떤가 하는 점이다. 사실 국민기초생활제도나 기초연금 등 공공부조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가 준시장시스템에 의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먼저 공급주체라는 측면에서 그렇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민간에 의해 서비스가 제공된다. 이때의 민간에는 사회복지법인 등 비영리법인도 포함된다. 독일이나 일본이 사회복지법인 등을 공공으로 취급하는 것과는 다르다. 때문에 공공주체가 매우 비중을 낮게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아무튼 이용자의 선택지 보장에 따른 서비스 질 강화는 장기요양보험제도 도입 시 정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 중 하나다. 많은 민간기관이 들어서면서 선택권 강화에 따른 공급자간 경쟁이라는 면에서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용방식과 재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조치방식을 제외한 대부분 즉, 장기요양, 어린이집,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병원 등 많은 서비스에서 이용자의 의사에 따라 기관을 선택하고 이용하도록 하고 있다. 그에 따른 재원은 주로 세금이나 사회보험료로 충당한다. 현금방식인지 바우처(Voucher)방식인지에서 차이는 있지만 이용자 본인이 일정액의 비용을 부담한다는 점에서도 같다. 나아가 조치방식이든 현금방식이든 바우처방식이든 역시 제공주체 대부분은 민간이며 조치방식이라고 해서 경쟁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이미 대부분의 돌봄영역이 준시장화 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돌봄 준시장화 지시는 ① 사회서비스원의 기능이나 역할축소 ② 돌봄에 대한 정부예산억제 ③ 기업 등의 진출을 위한 진입벽 완화 ④ 다른 사회서비스에의 확대 ․ 적용 등을 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즉, 금번 업무보고에서는 우선 노인맞춤돌봄서비스에 중산층과 취약노인을 대상으로 유료서비스를 시행하겠다고 한다. 현재 노인맞춤돌봄서비스는 조치방식에 따른 무료서비스로서 주로 사회복지법인과 같은 비영리법인이 수탁을 받아 권역별로 운영하고 있는 비경쟁시스템이다. 그런데 여기에 기업 등이 참여하도록 하고, 경쟁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재원만 다를 뿐 장기요양과 전혀 다를 바 없게 된다.
이는 문재인 정부에서의 돌봄정책과는 확연히 다른 것으로 생각된다. 이때는 준시장화보다는 오히려 공공성 나아가 공공화가 중요한 의제였고 그 결과로 등장한 것이 사회서비스원이기 때문이다. 준시장화를 무조건적으로 반대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동안의 결과로 볼 때 돌봄의 민간공급이 서비스 질을 높여줬는지는 의문이다. 즉, 돌봄에서의 경쟁시스템과 서비스 질이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일본의 경우 콤슨(COMSN)사건 -(COMSN, Inc(Good-Well Group) 기업이 2000년 2월부터 5월까지 50억엔의 광고선전비를 사용하고, 같은 해 전국에 1,208개의 사업소를 확대 설치하였지만 결국 6월 사업소를 약 40% 줄인 731개소로 조정하고 4,400명의 직원 중 약 1,400명이 퇴직한 것과 2007년 10월 지원금 횡령 등 비리사건으로 48년만에 폐쇄명령을 받고 문을 받게 되면서 ‘개호난민’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기게 했던 사건이 대표적이다 - 을 겪으면서 오히려 민간공급을 제한하고 정부 ․ 지방자치단체나 사회복지법인과 같이 경제적 상황이나 이익 등에 좌우되지 않는 공공주체가 서비스제공기관이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공급주체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업이 참여하게 하고 경쟁시스템도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하기 위해서는 적정한 이윤이 보장되어야 한다. 개인이 진입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복지를 돈을 쓰는 문제로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복지재정확대에 대한 고민은 없어 보인다. 저예산 저복지의 대표적인 국가가 우리나라다. 장기요양만 하더라도 도시든 농촌이든 인력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 높은 노동강도에도 불구하고 턱없이 낮은 임금이 주요한 요인이다. 법으로 인건비에 대한 지급비율을 정해놓고 있는데도 그렇다. 때문에 기업에 대한 유인효과도 크지 않아 보인다.
과학화와 테크놀로지는 준시장화의 문제가 아니다
윤 대통령은 “돌봄이 과학화되고 많은 테크놀로지가 들어가면 사회서비스가 고도화된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과학화나 테크놀로지가 준시장에서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사회서비스는 제도다. 제도는 국가에 의해 설계되고 시행된다. 이는 비록 민간이 공급주체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로 공공성을 갖는다는 의미다. 즉, 이용자가 누구인지, 누가 어떤 방식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지, 비용은 얼마인지, 공급주체의 진입 · 규제 · 퇴출 등과 관련된 시스템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등을 모두 법으로 결정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돌봄기술의 적용에 대한 최종적 판단과 책임은 정부에게 있다. 즉, 보편적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우리나라에서는 누구라도 돌봄이나 사회서비스로 인한 혜택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은 마치 소득이 충분한 사람만이 수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으로 오해할 여지도 있다.
나아가 돌봄과학화라는 것이 현재 상황에서 적절한지도 의문이다. 언급한 바와 같이 제도적 복지의 핵심은 보편성이다. 따라서 과학화 이전에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표준화이며, 그 필요성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표준화를 통해 서비스의 질이 일정 수준 담보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고도화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표준화가 되었다는 것은 과학화가 함께 이루어졌다는 것이며, 여기에 다양한 테크놀로지 기술을 접목하여 누구에게라도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어야 한다.
복지국가원리를 생각하며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다고 선언하고, 이에 따른 의무를 국가에게 부여하고 있다. 이것이 국민의 사회적 기본권을 보장하는 복지국가원리의 핵심이다. 그리고 이때의 기본권에는 이용자가 국가 · 지방자치단체에 대해 적절한 서비스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 이용자가 자신이 선택한 서비스제공기관에 대해 서비스를 받을 권리, 일정 소득수준 이하의 이용자나 그 부양의무자가 비용납부의무를 면하는 권리 및 서비스보장의 권리와 이용자가 자유롭게 복지서비스의 해지 내지 해제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 등을 포함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돌봄이나 사회서비스는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분야가 아니며 이에 대한 책임은 역시 국가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서비스가 공공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국가는 국민의 권리실현을 위한 공적 책임을 가지고 있으며, 그 조화로운 실현을 위한 구체적 방법은 준시장인지 아닌지라는 성격과 관계없이 공공목적의 달성을 위한 요소로서 기능하게 된다. 따라서 어떤 형태의 기관이 사회복지서비스의 공급주체로서 이 시장에 진입할 지 여부는 각자의 의지나 입장에 따른 문제에 지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국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의제는 준시장화나 여타의 것이 아니라 이용자의 보호 및 권리보장을 위해 어떠한 역할을 수행할 것인지, 적정한 재정 확보를 통해 이용자와 공급자간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지, 규제메커니즘을 어떻게 설정함으로써 복지국가의 지속가능성을 확립할 것인지 등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많은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출처 4월 24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 장봉석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이사 * 이 기고는 <시사앤피플>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시사앤피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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