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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범 칼럼] 카투사와 한미동맹 70주년

카투사 전사자 26.03%

시사앤피플 | 기사입력 2023/04/28 [12:01]

[한승범 칼럼] 카투사와 한미동맹 70주년

카투사 전사자 26.03%

시사앤피플 | 입력 : 2023/04/28 [12:01]

▲ 한승범 한류연구소장    

병장 때 이야기다. 나보다 직급이 낮은 룸메이트 미군 병사가 어느 날 동두천 시내 자기 집으로 초대를 했다. 평소 친하지도 않았거니와 약간 뺀질거리는 친구여서 의외였다. 하지만 공짜 밥과 술을 먹을 거절할 군인은 없지 않은가. 미군의 부인은 나이가 나보다 한 20살은 더 많아 보였고, 미군보다도 한참 연상이었다. 그래도 20대 초반인데도 남편 상사라고 진수성찬을 차리고 비싼(?) 맥주까지 두 손 공손히 따라주었다. 동방예의지국에서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이모 뻘 되는 미군 부인은 자신의 신세에 대해 넋두리를 늘어 놓았다. 강원도 완전 깡촌에서 자랐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가난한 환경에서 컸다. 아무런 미래가 없는 삶에서 동두천 미군 술집을 전전하다가 어리고 순진한 남편을 만났고 결혼까지 했다.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처음으로 벗어난 순간이었다. 그러자 가족과 일가친척들이 모두 빨대를 꽂을려고 달려들었고, 미군 부인은 안면 몰수하고 모든 관계를 차단했단다.

평소 미군들에게 술을 파는 한국 여자들을 부끄럽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만남 이후로 그 여자들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가난한 세계는 존재하고 그런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손가락질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카투사를 질시 반, 미움 반으로 바라본다. 당나라 군대의 전형으로 인식하고 편한 군대 생활의 상징으로 여긴다. 미군 따까리로 비하하고 간혹 시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모 유력 정치인의 카투사 아들의 황제 휴가 사건으로 카투사가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카투사 무용론도 간간히 언급된다.

1950년 김일성은 적화통일을 위해 민족상잔의 625전쟁을 일으켰다. 바람 앞의 촛불 신세였던 대한민국은 유엔군의 파병으로 반격의 기회를 맞게 된다. 하지만 미군을 위시한 다국적군은 한반도 지리, 기후 등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언어의 장벽으로 전쟁 수행에 커다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때 당시 한반도에서 국제 정세에 가장 밝았던 이승만 박사는 '신의 한 수'를 두게 된다. 8월 세상에 없던 카투사(KATUSA, 미국 육군 증강 한국군) 제도를 들고 나왔다.

외국 군인 입장에서 도저히 식별이 불가능한 국군과 인민군의 차이, 암호 해석, 포로 고문, 한국적 지형 파악 등에서 카투사는 최고의 능력을 발휘했다. 카투사 배치로 인해 유엔군은 비로서 눈과 귀가 열리는 기적이 일어났다. 첫 카투사들은 313명이었고 이들은 8월 16일 일본 요코하마 항에 도착해 훈련을 받았다. 이들은 미 육군 7사단에 배치되어 한 달 뒤의 '인천상륙작전'에 처음 투입되었다.

카투사는 이후 거칠 것이 없었다. 선두에 서서 북한군과 중공군에 맞섰다. 특히 가장 치열했던 장진호 전투에서 카투사는 최소 1만 명 이상의 전사자가 나왔다. 한국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었던 흥남철수 뒤에는 장진호에서 산화한 미군과 카투사의 희생이 있었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한국 육군의 전사자는 142,927명에 달한다. 전체 참가자 813,642명 중 17.6%가 전사하였다. 반면에 미군의 전사자는 36,492명으로 전체 파병자 1,600,000명 중 2.28%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카투사는 어떨까? 미군과 같이 생활하며 생사를 같이 했던 카투사는 총 43,660명 중 11,365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됐다. 카투사 전사자 비율이 무려 26.03%로 그 희생이 가장 컸다.

카투사가 한국 육군에 비해서 월등하게 희생이 컸고, 미군에 비해 10배 이상의 희생이 난 것은 놀라운 일이다. 카투사는 솔선수범해서 최전선에서 북한군들과 싸웠고, 조국을 위해 목숨도 마다하지 않았다. 덕분에 유엔군은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었고, 끝까지 대한민국을 위해 총칼을 내려놓지 않았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만을 돕기 마련이다.

지난 25일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 부부는 워싱턴 DC 한국전 참전 용사 기념 공원(Korean War Veterans Memorial)을 함께 찾았다. 공원 내 '추모의 벽(Wall of Remembrance)'도 둘러봤다. 6·25에 참전한 미군 전사자 36,634명과 한국인 카투사 전사자 7,174명 이름을 새긴 추모의 벽은 작년 7월 설치됐다. 미 전쟁기념 시설에 외국군(軍)의 이름이 새겨지는 것인 카투사가 처음이다.

'추모의 벽'이 세워지기까지 대한민국카투사연합회(이하 연합회)의 보이지 않는 노력도 있었다. 심상돈 연합회 초대회장이 10여년 전부터 '추모의 벽' 설립을 위해 성금 등 각고의 노력을 하였다. 연합회의 김해성 전 회장, 김종욱 명예회장, 윤윤수 고문 등의 힘이 모아져 카투사의 넋을 비로서 기리게 되었다.

올해는 한미동맹 70주년의 역사적인 해이다. 이렇게, 카투사들은 한국전쟁에서 큰 희생을 감내하며 이룬 업적을 빛낼 수 있었다. 그들의 기록은 지금까지도 기억되고 있으며, 한미동맹의 역사를 이어가는 소중한 이야기로 남아있다. 한국전 참전 용사 기념 공원에서의 추모의 벽은 미군과 카투사들의 영원한 우정과 그들의 헌신을 기리는 역사적인 장소로 남게 되었다.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며, 오늘날의 평화와 번영을 이어가는 것이 우리 모두의 소임이다.

 

한승범 한류연구소장 (대한민국카투사연합회 전 이사)

* 이 기고는 <시사앤피플>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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