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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칼럼] 강기옥의 '혼란한 시대의 국정지표'

강기옥 문화전문 기자 | 기사입력 2023/07/21 [00:15]

[기자 칼럼] 강기옥의 '혼란한 시대의 국정지표'

강기옥 문화전문 기자 | 입력 : 2023/07/21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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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기옥 시인/문화전문 기자

 

 [시사앤피플] 예전에는 해마다 국정지표를 발표하여 내일에 대한 기대를 한껏 부풀렸다. 대부분 손에 잡히지 않는 이상적인 문구로 정부를 믿고 따르라는 구호였다. 그 이면에는 민심을 통제하려는 강제적 의미도 담겨 있었다.

 

민주주의의 토착화’ ‘복지사회의 건설’ ‘정의사회의 구현

 

아직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아 한국적 민주주의를 토착화해야 한단다. 그러기 위해 정의사회의 구현이라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실체가 없는 추상명사로 제시한 강권적 역사는 역사 바로 세우기에 의해 벌을 받았다.

  

되풀이되는 것이 역사라지만 지난날을 되돌아보는 이유는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데 있다. 오늘날 우리가 지향해야 할 국민적 지표는 무엇인지 생각해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국민의 뜻을 하나로 모으려면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공통의 지표가 있어야 한다.

 

국정지표는 그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한다. 1701년 폴란드의 압제에서 벗어난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1세는 이웃에 비해 인구가 적어 약소국의 신세를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국가를 위해 섹스를 하라는 인구 증가책을 국정지표로 내세웠다. 당시 프로이센의 국민은 겨우 3백만 명, 군대는 38천 명 수준이었다. 적국 폴란드 국민은 8백만 명, 프랑스 국민은 2천만 명이라서 모든 면에 중과부적이었다.

  

프리드리히 1세는 그 지표의 실현을 위해 국민은 아이를 낳는 것이 국가에 대한 책임이자 의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남자는 아내를 둘 이상 둘 수 있도록 허락했고 수도원의 수도사까지 속세로 끌어내 혼인시켰다. 더불어 궁궐의 경비도 절약하면서 군대를 5만 명으로 증원하여 강력한 군대로 육성했다.

  

뒤이은 프리드리히 2세는 더했다. 법령에서 성범죄 조항을 없애고 수도원에 들어가는 것을 금하는가 하면 강간도 아이를 낳기 위한 행위로 간주하여 처벌하지 않았다. 인구 증가를 위해서는 반인륜행위까지도 용납했다. 그 결과 군대를 8만 명으로 늘려 최강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막강한 프랑스와의 전쟁에서도 승리하여 유럽의 강자로 부상했다. 예전의 프로이센과 오늘날의 독일 국민은 프리드리히 부자를 대왕이라 칭송한다.

 

조선에서 우위권을 확보하기 위해 청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본은 1895년에 전쟁 보상으로 대만과 요동반도를 차지했다. 그러자 러시아가 프랑스와 독일을 끌어들여 압박했다.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 일본은 요동반도를 청나라에 되돌려 주라는 내용이었다. ‘삼국간섭의 실세를 상대할 수 없어 일본은 요동반도를 되돌려 주고 와신상담(臥薪嘗膽)을 국정지표로 내세웠다.

 

 삼국의 간섭으로 아직도 왜소한 자신을 깨달은 일본은 국민들에게 러시아에 대한 복수심을 부추기며 무력을 키워나갔다. 와신상담의 10, 일본은 러시아를 쳤다. 그 승리를 기점으로 거침없이 군국주의로 내달렸다. 식민지 개척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2차대전의 패망으로 어려움을 당했으나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 대국으로 성장했다. 와신상담의 지표가 재건의 바탕이었다.

 

우리도 프로이센과 일본 못지않은 국정지표가 있었다.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는 구호를 바탕으로 오늘의 경제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제는 국민이 나라를 걱정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정부에서 국정지표를 내세워도 따르는 이가 별로 없는 반쪽지표의 나라가 되었다.

 

 

남북으로 갈린 것도 억울한데 진보와 보수로 갈리고, 좌우로 갈리고, 동서로 갈리고, 세대로 갈리고, 노사로 갈리고, 남녀로 갈리고, 이념으로 갈렸다. 무엇이든 깃발만 들면 통한다는 데모문화가 확산되고 가장 새롭고 신선한 것은 스포츠뿐이라는 자조적 푸념이 이 시대의 자화상이다. TV화면에서 의원들이 연장을 들고 기물을 부수는 행위나 삿대질과 고함이 난무하는 모습에서 국민은 저마다 부정적인 시각을 키웠다.

 

뜻이 있는 식자들은 요즈음 사회를 광복 이후의 시대로 되돌아갔다.’고 한탄한다. 그래도 유교의 가르침을 중시했던 선비의 후손인 만큼 시 한 수 읊는 여유로 지표를 세우면 어떨까. 성과를 중시하는 촉박함보다 온 국민이 협력할 수 있는 공동의 목표를 지향한다면 가장 바람직한 지표가 되지 않을까. 공자의 사무사(思毋邪) 정신으로 시 한 편을 감상하는 여유를 되찾으면 어떨까. 국민 모두가 수긍하는 공통분모의 국정지표가 절실하다.
 
* 강기옥 시인(문화전문 기자)
* 이 기고는 <시사앤피플>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기옥 문화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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