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7일 동유럽 순방을 마치고 귀국 당일 집중호우로 피해를 본 예천 수해현장을 찾았다. 다음날도 공주시 농작물·축사 피해현장을 방문했다. 그러나 가장 많은 14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오송 지하차도 참사현장은 찾지 않았다. 아직까지 합동분향소도 가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과 피해를 입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고, “실종자 수색 중 순직한 고 채수근 해병대 상병을 국가유공자로서 최대한의 예우를 갖추겠다”며 애도의 메시지를 냈지만, 오송 지하차도 참사사건에 대해선 어떤 애도의 메시지도 내지 않았다.
이대로 계속 간다면 “천공이 가지 말라고 해서 안 가기로 했다”는 가짜뉴스가 나올지도 모르는데, 왜 윤 대통령은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오송 지하차도 참사현장을 외면하고 있는 걸까?
한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 25일 헌법재판소 기각 결정 이후 곧바로 업무에 복귀하면서 수해현장을 방문했다. 그런데 이 장관 역시 첫 방문지가 가장 피해가 큰 오송 지하차도 참사현장이 아닌 청양 수해현장이었다.
이 장관은 그래도 다음날 오송 지하차도 참사현장을 찾아 "안전의 총책임자로서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며, 사고 원인을 철저히 규명해 다시는 이와 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고, 충북도청에 마련된 희생자 합동분향소에 들러 조문도 했다.
우리 국민은 2주 넘게 이어진 집중호우로 12년 만에 최대의 인명피해(사망,실종 50명)가 발생한 이번 수해피해 중 오송 지하차도 참사사건을 가장 안타깝게 여기고 있는데, 대통령은 아예 언급도 하지 않고, 장관은 이슈화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천재 지역은 정부가 책임이 없어 대통령이나 장관이 현장을 방문해 위로하고 대책을 말하면 되는 데, 정부콘트롤타워 부재와 일선 공무원의 관리 소홀로 피해가 발생한 인재 지역은 대통령과 장관이 현장을 방문해 재난대응 소홀에 대한 책임 있는 발언을 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장관도 현장 방문 시 행정부의 대처가 적절했는지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지금 철저하게 수사하고 있기 때문에 그 과정을 일단 지켜볼 것"이라며 "결과에 따라 적절하고 최선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하며 즉답을 피했고, 유가족 요구사항에 대한 의견과 참사 재발 방지대책을 묻는 말에도 별도의 답변을 하지 못한 채 현장을 떠났다.
그러나 천재 지역은 정부의 잘못으로 발생한 재해가 아니기에 굳이 대통령과 장관이 현장을 찾지 않아도 되나 정부의 관리 부재 같은 행정 재해나 인재 지역에는 무조건 대통령과 장관이 현장으로 달려가 피해자들에게 용서도 구하고 대책도 마련하겠다며 위로해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물론 작년 이태원참사에 대한 사회 분위기가 인재로 인식되면서 대통령실이 곤욕을 치렀고, 장관도 탄핵소추를 통해 수개월 동안 업무를 보지 못한 끔찍한 경험을 한 현 정부라 이번 수해에 대한 대응 수위를 조율한 건 이해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국민 앞에 비겁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윤 대통령이 오송 지하차도 참사현장에 가면 정확한 메시지를 내야 하는데, 아직 상황정리가 안 돼서 안 갔다는 대통령실 관계자의 말도 들리는 데, 이 역시 평소 매사에 당당한 윤 대통령의 스타일이 아니어서 오송 지하차도 참사사건을 인재로 여기기 싫은 정부의 속셈으로만 느껴진다.
만약 윤 대통령이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두고 오송 지하자도 참사사건이 이태원참사처럼 확대될 것을 염려해 오송에 안 갔다면 더더욱 말이 안 되는 행보라 할 수 있다. 앞으로 내년 총선까지 8개월 동안 정부가 총선과 거리를 두고 국정운영에만 전념하는 모습을 보여야 우리 국민이 여당에 한 표라도 더 던질 것이다.
혹시 동유럽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윤 대통령이 “임금이 부덕하면 천재지변이 일어난다며 천재의 모든 책임은 임금에게 있다”는 성리학의 ‘재이(災異)론’을 믿었던 조선시대 왕들의 신념을 생각하며, 천재가 발생한 예천으로 먼저 달려가 피해자들을 위로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재이론’을 믿는 우리 국민은 아무도 없다.
당시 우리 국민의 마음은 대부분 오송 지하차도 참사현장에 있었다. 책임소재가 어떻든 대통령이 귀국하자마자 국민의 안타까움과 관심이 모여 있는 오송 지하차도 참사현장으로 달려갔어야 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합동분향소를 방문해 피해자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을 위로해주면 된다.
야당도 오송 지하차도 사건을 더 이상 정부의 책임으로만 돌리지 말고, 함께 머리를 맞대고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 김삼기 시인 / 컬럼니스트 * 이 기고는 <시사앤피플>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시사앤피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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