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산업'하면 언뜻 떠오르는 것은 인공지능, 자율주행 자동차 등이다. 몰라도 아는 체하도록 훈련된 대화 앱인 챗GPT에게 신산업이 뭐냐고 물어보니, 인공지능, 증강현실, 재생에너지, 온라인 소매업, 암호화폐, 헬스텍 (원격의료, 착용스마트기기, 맞춤형 의료, 전자건강기록 등), 청정환경기술, 우주관광, 바이오텍, 사이버보안 등 열 가지를 들었다. 일본, 한국, 중국 등 동아시아 나라들은 정부가 특정산업들을 육성하는 산업정책을 써왔다.
한국에서 정책하는 사람들은 신산업을 신성장동력이라고 부르는데, 신산업을 정부가 주도해서 육성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런데 정부가 산업을 선택하여 키우던 시대는 지났고, 이제는 유망한 산업에 정부가 정책을 얹어 성과를 내려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므로 정부가 발표하는 신성장동력은 신산업전망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것이다. 물론 최근에는 미국, 유럽 등도 신산업 정책을 수립하여 실행하고 있다. 주로 인프라 구축과 기업활동 활성화에 초점이 있지만, 동아시아 특히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보조금 지급 등 노골적인 산업정책 수단도 쓰고 있다.
정부가 신산업전망을 잘못 내놓기도 한다. 역대 정부에서는 정보통신산업의 시대는 가고 녹색산업(환경산업)의 시대가 왔다고 한 적도 있다. 그런데 그 후로도 정보통신산업은 눈부시게 발전했고 녹색산업은 아직도 정부보조를 받는 사업에 머물고 있다. 투자 관점이든 정책 관점이든 신산업을 얘기할 때 한 가지 문제는 신산업 개념에 신기술, 신제품, 신업종이 섞여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인공지능은 신기술이지 신제품도 아니고 신업종도 아니다.
그러니 인공지능 시장규모를 얘기하는 것은 난센스다. 몰라도 아는 체하는 챗GPT에게 인공지능 산업의 시장규모를 물어보니 2020년에 623.5억원이었고 2026년에 300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대답한다. 챗GPT만 그런게 아니고, 산업연구에 특화된 어느 연구원의 자료를 보면 2020년에 인공지능 글로벌 시장규모는 470억달러이고 한국 시장규모는 2조원이라고 되어있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신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2023년에 자율주행 자동차의 글로벌 시장규모가 950억 달러라고 하는 숫자는 실체가 있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인공지능과 광레이더(LIDAR)와 같은 신기술의 발전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자동차 산업의 일부다. 자동차 산업의 글로벌 시장규모는 2022년에 3조달러에 달한다. 자동차 시장의 또 하나의 제품은 전기차다. 전기차는 2022년에 글로벌 시장규모가 2,000억 달러에 달했다. 그런데 전기차를 신제품으로 분류하기는 곤란하다. 전기차는 19세기 말에 나왔기 때문이다. 전기차는 휘발유 등 기름을 쓰는 내연기관보다 먼저 나왔으나, 전기를 저장하는 전지가 용량이 작아 충분한 에너지를 실을 수 없어 내연기관에 밀려났었다.
전기차가 최근에 다시 일어난 것은 리튬이온 전지 등 충전식전지(2차전지)의 발전에 기인한다. 전기차는 신제품은 아니지만 혁신제품이다. 로봇 산업의 신분야로 인공지능 로봇이 있다. 2021년에 로봇 산업의 글로벌 시장규모는 800억달러인데, 인공지능 로봇의 시장규모는 90억달러에 불과했다. 아직은 비중이 큰 신산업이 아니다. 자동차 산업에 전기차, 자율주행 자동차와 같은 혁신이 있었던 것 못지않게 반도체 산업에서도 혁신이 진행되어 왔다. 반도체 산업 자체가 신산업은 아니지만, 직접회로가 소형화되는 과정에 끊임없는 혁신이 있었다.
반도체 산업은 2022년에 5,700억달러에 달하는 글로벌 시장규모를 가진 중요한 산업이며 어떤 신산업보다 더 혁신적인 산업이다. 인공지능이 의미 있는 기술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도 반도체 산업의 혁신으로 인한 컴퓨터 계산능력의 발전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디스플레이 산업에서도 혁신이 진행되고 있어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어디서부터 차세대로 보느냐하는 문제가 있겠지만, 2022년에 디스플레이 산업 전체의 시장규모는 1700억달러, 차세대 디스플레이 산업은 1400억달러 정도다. 바이오헬스 산업이 한국에서는 신성장동력의 하나다.
자동차와 로봇은 기계산업에 속하고,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충전식전지 등은 전기전자산업에 속하는 것처럼, 의약품, 의료기기가 바이오헬스 산업에 속한다. 신약산업이 한국의 관점에서는 혁신적인 신산업이다. 그런데 아직 역량이 미치지 못하여 제대로 꽃피우지 못하고 있다. 신산업은 신기술로만 생겨나는 게 아니다. 수요의 성장에 따라 커가는 신산업으로 반려동물산업이 있다. 반려동물 신약산업은 한국이 도전해볼 만한 혁신산업이다.
* 채수찬 경제학자/ 카이스트 교수 * 이 기고는 <시사앤피플>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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