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 컬럼] 문화예술 강국에서 문화예술 선진국으로다양한 문화예술 작품에 관심과 사랑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서양화가 중 한 명이자 인상주의의 대표 화가인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들을 보면 우리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본풍의 작품들이 많이 눈에 띈다.
고흐의 1887년 작 '비 내리는 다리'는 1875년 안도 히로시게의 채색판화 '아타케 대교의 소나기'를 그대로 모작했으며, 1890년 작 '아몬드나무' 또한 당시까지의 화풍과는 달리 일본 채색목판화인 우키요에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1854년 일본이 개항한 후 1862년 런던 만국박람회와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통해 일본의 도자기와 부채, 우키요에 판화 등이 유럽에 소개되면서 인상주의 화가들을 중심으로 일본의 문화 및 예술에 대한 관심이 크게 확산했다.
고흐뿐 아니라 당시 인상주의 화가들 사이에서는 자신의 그림 속에 일본을 상징하는 병풍, 부채, 기모노, 도자기, 우키요에 등의 사물을 경쟁적으로 그려 넣기 시작했다. 모네는 아예 일본풍 정원을 만들어 이를 그리며 말년을 보냈다고 한다.
미술뿐 아니라 프랑스 작가인 피에르 로티의 장편소설 '국화부인'과 이를 각색하여 만들어진 데이비드 벨라스코의 연극과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 또한 일본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50여년 전 일류(日流) 열풍이라 할 수 있는 '자포니즘'이 유럽의 문화 전반을 휩쓸며 대유행한 것이다. '자포니즘'이 유행하기 이전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까지는 바로크, 로코코 양식에 가미된 중국풍의 미술품 '시누아즈리'가 크게 유행했었다.
'시누아즈리'와 '자포니즘'이 유행한 후 한 세기 반이 지난 지금,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한류(韓流) 열풍을 보며 격세지감을 느끼면서 한편으로는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대장금' 등 드라마를 시작으로 '싸이'에서 'BTS', '블랙핑크'로 이어지는 대중음악, 한국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4개 부문을 석권한 '기생충'에서 '미나리'로 이어진 영화, '오징어게임'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상의 한국 콘텐츠 등 우리 문화의 매력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중문화뿐 아니라 우리의 다양한 전통문화·예술과 문학,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첨단 제품들,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던 한식까지 유럽을 넘어 전 세계, 다양한 세대에서 관심을 받고 유행한다는 점에서 '시누아즈리'나 '자포니즘'과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다.
그러나 K-드라마, K-팝, K-무비, K-푸드, K-반도체, K-가전, K-뷰티, K-게임은 물론이고 K-방역, K-농업, K-방산까지 온갖 K-브랜드가 난무하고 있는 상황을 마냥 좋게만 볼 일은 아닌 듯하다.
한류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정·재·학계에서 나오는 논문이나 보고서들을 보면 한류 관련 산업별 경제효과, 한류 콘텐츠 수출 전망 등 경제적, 산업적 측면에서만 바라보는 경향이 너무나 강하다.
이는 우리나라가 기나긴 일제강점기 수탈의 시대를 겪은 데다 6.25 전쟁으로 황폐해진 국토를 복구하고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산업화 성장을 단기간에 이뤄내는 과정에서 모든 상황을 효율성과 경제적 관점에서 우선 바라보는 경향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국전쟁 이후 1953년 1인당 국민소득 67달러로 국제사회의 원조가 없으면 버틸 수 없었던 세계 최빈국이었던 우리나라는 "한국에서 민주주의와 경제 재건을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길 바라는 것과 같다."는 전문가들의 전망에도 불구하고 60년도 지나지 않아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기적을 이뤄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피워낸 것이다.
지난해에는 1964년 설립된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57년 역사상 처음으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국제적 지위가 격상되기까지 했다. 이는 충분히 자랑스럽게 여겨도 될 만한 쾌거이자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위대한 우리의 역사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한류 콘텐츠가 전 세계에서 유행하고,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 내의 경제 대국으로 선진국 그룹에 들어갔다고 해서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산업적, 경제적 측면에서만 바라본다면 문화예술 콘텐츠 강국의 대열에 올라선 것은 맞다고 본다. 콘텐츠 수출액을 보면 2020년을 기준으로 총 수출액의 2.3% 규모로 2006년 이후 약 9배 이상 증가하였으며, 반도체, 자동차, 석유화학, 무선통신기기 등을 이어 12번째 주요 수출 품목 중 하나로 가전이나 섬유 수출액을 상회하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문화예술 선진국이란 상을 받으며 남에게 인정받고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을 이루는 것이 다는 아닐 것이다. 세계경제 2위의 중국이나 중동의 산유국을 경제강국이나 경제대국이라고는 불러도 선진국이라 부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김구 선생께서는 백범일지 '나의 소원'에서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며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했다. 탁월한 혜안이 아니라 할 수 없다.
우리 주변의 모든 문화예술인들이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해 창작활동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환경과 지원이 이뤄지는 나라, 국민들은 흔쾌히 지갑을 열어 다양한 문화예술 작품을 보고, 듣고, 읽고, 즐기며 슬기롭게 소비하는 나라, 우리의 문화예술 콘텐츠를 전 세계인이 공감하고 소프트파워를 인정받는 나라. 창작자인 문화예술인과 수요자인 우리 국민과 전 세계인 모두가 행복한 것이 진정한 문화예술 선진국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문화예술도 지원하고 투자하지 않으면 발전하지 못하고,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하면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정부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켜가며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며, 우리도 대중문화예술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예술 작품에 관심과 사랑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때 유행하다 사라진 '시누아즈리', '자포니즘'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 변화하고 발전해가며 우리 자신도 행복하고, 남에게도 행복을 주는 문화예술 선도국가, 문화예술 선진국으로서의 대한민국을 기대해본다.(출처 : 9월 1일, 국회미래연구원 미래컬럼)
* 이용 국회의원, 제21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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