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도록 그려도 완성되지 않을 낭만과 불안의 화폭
작가ㅡ홍지윤
[쪽 수필] 불안과 거친 낭만을 수반한 비가 쏟아지면 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눅눅하고 찝찝한 것보다 젖는 게 낫다고 조른다.
비는 연인을 만드는 초능력을 가졌고 홀로 카타르시스에 이르도록 돕는 개별적 재능도 있다. 잠시 불빛에 비쳐지는 모습을 보면서 낭만과 불안으로 범벅이 되어 있던 자신이 원위치로 돌아가기도 한다. 언제나 구원투수가 끼어들기 마련, 지나가던 차량의 클랙슨 소리, 경비 초소의 불빛 등이 그것이다.
13살의 중딩, 나는 비만 오면 교복을 가방에 넣고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무작정 비를 맞으며 걸었다. 어떤 감정 때문인지 왜 그러는지도 모르고 빗물에 눈물 섞어 울면서 걸었다.
중년이 다 되어 알아냈다. 나름 사춘기를 거치면서 월요일 조회 때마다 내 앞에 섰던 전교 어린이회장을 가슴 두근거리며 흠모하였던 모양이다. 졸업과 동시에 그 재미가 사라지자 어린 나이에 가슴앓이를 한 거였다.
시인이 말하는 낭만과 불안의 화폭이었던 것, 어찌 한번 일었던 첫 사랑의 느낌이 사그리 사라질 수가 있겠는가.
비만 오면 조건반사가 일어나는 생의 아릿한 감정, 60이 넘어서도 고개를 쭉 빼고 배재중학교 교정을 눈으로 훑고 지나가는 나를 보았다.
그 학교에 진학했다는 말로 끝이었으니까. 두 줄로 이야기를 쏟아내게 만드는 시에 힘 입어 잠시 늙은이 가슴에 태풍이 불고 지나간다.
- 짝사랑이든 잃어버린 사랑이든 사랑은 흔적을 남긴다.-
* 오정순 수필가/시인 * 이 기고는 <시사앤피플>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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