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앤피플] 21대 마지막 정기국회 회기가 지난 9월1일부터 시작됐다. 이번 정기국회도 법정 기한인 100일을 꽉 채우고 12월9일 폐회한다. 정기국회 기간은 정부 예산안을 심의하고, 각종 법률안을 심의하는 국회의 시간이다. 특히 법률안 심의는 임시국회 때 해도 되지만, 정부의 예산안 심의는 정기국회 회기에 해야 한다.
헌법상 예산안 진행 절차는 정부가 회계년도 개시 120일전(9월1일)까지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하고, 국회는 회계년도 개시 30일전(12월2일)까지 심의해야 한다. 심의가 끝나면 다음년도 1월1일부터 예산안이 시행된다. 원래는 정부가 회계년도 개시 90일전(9월30일)까지 국회에 제출해야 했는데 심의 기간이 짧다는 이유로 2013년 국가재정법을 개정하면서 30일 늘어났다.
그런데 정기국회 기간에 국정감사(30일 이내)가 이뤄지면서 국가재정법까지 개정해 늘린 예산 심의를 위한 국회의 시간 30일이 무의미해졌다. 여야가 피터지게 싸우는 국정감사 기간엔 예산 심의를 뒷전으로 미뤄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올해도 국정감사는 10월10일부터 시작해 10월27일까지 17일 동안 진행된다.
현재 우리나라 국정감사는 규정상 매년 정기국회 전에 열게 돼 있다. 그런데 본회의 의결에 의해 정기회 기간 중에도 감사를 실시할 수 있다는 조항 때문에 여야 합의에 의해 계속 정기국회 기간에 국정감사를 하고 있다. 여야가 다음년도 살림보다는 국정감사에 더 올인하고 있다는 증거다.
국정감사는 원안대로 정기국회 전에 열고 정기국회 기간엔 정쟁으로 인해 미뤄진 법안 처리와 다음년도 예산 심의에 집중하고 대정부 질문 시간도 늘려 예산 관련 질의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모 의원실에 물어보니 국정감사 기간에 예산 심의를 위한 각종 자료를 수집한다며 국정감사 기간도 예산 심의 업무가 진행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정감사에 올인하는 국회를 보면서 우리 국민은 그렇게 믿지 않고 있다.
어찌됐든 정기국회 기간에 여야가 대치하면서 치킨게임을 하는 국정감사는 피해야 한다. 혹자는 국정감사가 정기국회의 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국정감사가 국회의 꽃은 될 수 있어도 예산 심의 시간까지 침범하면서 피터지게 싸우는 국정감사가 정기국회의 꽃은 될 수 없다. 한 해의 마지막 시점에 열리는 정기국회는 이미 끝난 정책이나 진행 중인 정책을 지적하는 국정감사보단 다음년도를 준비하는 예산 심의에 더 올인해야 한다.
정부가 잘못한 게 있다면 정기국회 전 8월에 국정감사를 열어 따끔하게 혼내고, 정기국회 기간엔 밀린 법안 처리와 대정부 질문 그리고 다음년도 예산 심의에 집중해야 한다.
올해도 국정감사가 끝나고 나면 10월31일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 관련 시정연설이 있은 후 11월부터 각 상임위원회별로 소관 부처의 예산안을 본격적으로 심의하게 된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9월 대정부 질문, 10월 국정감사, 11월 예산 심의 패턴 그대로다. 대정부 질문이나 국정감사에 비해 많은 시간이 필요한 예산 심의를 고작 한 달 안에 국회가 상임위원회 예비심사,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의, 본회의 심의 과정을 다 소화해야 하니 시간이 부족해 제대로 심의가 이뤄질 리 만무하다.
지방자치단체(지자체)도 지방재정법에 의해 회계년도 개시 40일전(11월21일)까지 지방의회에 예산안을 제출하고, 지방의회는 회계년도 개시 10일전(12월21일)까지 예산안 심의를 마쳐야 한다. 지방의회 역시 심의 시간이 고작 한 달로 다음년도 살림을 꼼꼼히 챙겨야 하는 데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긴 마찬가지다.
특히 우리나라 대부분의 지자체는 재정자립도(지방세와 세외수입 등 자체수입 비율)가 45% 이하이기 때문에 재정자주도(자체수입 + 지방교부세, 국가보조금 비율)를 높이기 위해 국회에서 예산 심의가 진행되는 동안도 예산 편성 때와 마찬가지로 정부로부터 지방교부세나 국고보조금을 더 할당받기 위해 단체장이 분주히 움직여야 한다. 우리나라 국세와 지방세 비율이 약 8:2 정도로 만성 적자에서 허덕이는 지자체가 정부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조세구조 때문이다.
지자체 단체장은 지방재정의 50% 정도를 차지하는 지방교부세뿐만 아니라 정부가 국가적 사업을 수행할 때 지방정부에게 사업시행을 위임하고 그 경비의 일부를 제공하는 국고보조금을 더 받기 위해서도 분주히 움직여야 한다. 다음 선거를 위해 굵직한 사업을 성과로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가 지자체 재정의 중요한 축인 지방교부세를 내년에 11조나 삭감하면서 재정의 50% 정도를 지방교부세에 의존했던 지자체에 비상이 걸렸다. 일반적으로 매년 국세수입이 늘어나는 추세였기 때문에 지방교부세도 매년 증가하는 추세였으니 지자체도 당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지자체마다 강도 높은 세출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지난달 펴낸 ‘2023 대한민국경제 보고서’엔 정부는 2021년 결산기준 지방교부세를 전국 평균 1인당 114만5천원을 교부하고, 지방자치단체는 교부받은 이 지방교부세를 토대로 지역주민에 1인당 평균 44만5천원을 이전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 지방교부세가 줄어들면서 민간보조금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내년 지방재정에 당장 빨간 불이 켜지자 내년 지방 살림이 더 어려워질 것을 우려한 행정안전부가 지난달 22일 '2023 지방재정전략회의'를 열어 지방으로 넘긴 사업 중 국민안전과 민생안정에 직결된 6개 사업을 우선투자 대상으로 정하고, 정부의 통합재정안정화기금 사용가능 비율 상한을 없애고 포괄지방채를 허용해 지자체에 지방재정을 전적으로 맡기겠다고 밝혔다.
이는 국가균형발전과 지방분권 정책을 분리하지 않고 지방이 주도하는 분권과 균형발전 전략을 통해 정부의 지원이나 간섭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치분권위원회와 국가균형발전위원회를 통합한 지방시대위원회를 출범시킨 현 정부의 의지가 담긴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은 내년도 정부와 지자체 예산안이 국회와 지방의회에서 심의를 받는 중요한 시기다. 그러나 국정감사나 정쟁에 시간을 뺏겨 예산안 심의가 졸속으로 처리되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 김삼기 작가 / 컬럼니스트 * 이 기고는 <시사앤피플>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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