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앤피플] 언론은 민중의 지팡이로서 부패한 권력을 파헤치고, 정권의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한다. 사회가 어두울수록 언론을 지켜보는 시선이 진지해지고 본연의 임무를 다하는 언론인에게 박수를 보내며 용기를 얻는 것은 대리만족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신 독재에 맞선 동아일보의 백지 광고 사건은 언론의 참 정신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어 독자는 언론사를 응원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민중의 의식을 대변해 주던 정론(正論)이 있었기에 민중은 그들을 믿고 자기 일에 충실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인고의 삶을 살아온 세대들이 이제는 ‘꼰대’가 되어 옛 시절을 추억하는 뒷방 늙은이가 되었다.
‘꼰대’는 1960년대에 나이 많은 남자를 비하하며 나타난 용어다. 그것이 80년대에 들어 청소년층이 잔소리하는 아버지 세대와 학교 교사들까지 대상의 범위를 넓혀 사용했다. 당시의 언론은 탈선한 아이들이 쓰는 용어라고 지적했는데 1970년대의 KBS 드라마 <수다스런 계절>에서 교사를 비하하는 용어로 사용한 후 일반인에게까지 확산되었다.
당시의 어른들은 그 말에 거부감을 느껴 외면했는데 요즈음에는 아예 노년층들이 자신을 꼰대라며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한때 산업의 역군으로 일하던 세대가 이제는 사회의 짐으로 지탄받는 대상으로 전락한 데 대한 자기 비하의 일종이다.
비근한 예로 노년층의 운전면허 반납이라는 여론몰이에 고민하는 자화상이 곧 ‘꼰대’에 어울리는 사회적 위상이다. 교통사고는 음주운전과 젊은이들의 무분별한 과속, 안전거리 미확보, ‘칼치기’라 하는 끼어들기 등으로 인한 사고가 더 많다. 그런데 십대의 무면허 운전과 노년층의 사고에 대해서는 감정을 자극하는 듯한 보도로 일관하여 나이 들어 운전하면 사회에 악을 끼치는 것처럼 관심의 방향을 돌려 보도한다.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는 65세 이상에서 84세에 이르는 노인을 대상으로 10여 년을 지켜보며 ‘노인이 운전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연구하여 보고한 사례가 있다. 운전하는 노인이 운전하지 않는 노인보다 요양원에 가지 않아 요양원 비용보다 운전 비용이 훨씬 저렴하다는 사실을 비교하여 발표했다.
그러면서 노인의 독립적인 활동을 도울 수 있는 공공정책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우리나라는 2018년에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왜 노인이 운전을 중단해야 하는가’의 주제로 연구를 진행했는데 66%가 운전을 그만두는 시점을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문제를 연구하는 데도 한국은 부정의 방향으로, 미국은 긍정의 방향으로 연구를 했기에 결론은 빤하다. 즉 우리나라의 연구는 ‘노년의 운전 면허증 반납’이라는 여론몰이의 목적으로 연구에 임한 것이다.
2014년 이후 노년층의 교통사고는 증가하고 있으나 젊은이 못지않은 노익장도 많다. 나이가 많을수록 승용차는 더 필요하다. 핵가족사회에서 이동력이 필요한 노인의 운전을 막을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운전을 보완해 주는 따뜻한 여론몰이를 해야 한다. ‘초보 운전’처럼 ‘어르신 운전’이라는 안내문을 달아 노약자 보호정책을 유도하는 것도 바림직한 계도의 한 방법이다.
분당의 율동공원 주차장에는 장애인 주차장처럼 어르신 주차구역을 따로 획정하여 선구적으로 백세시대를 대비하고 있다. ‘꼰대’들은 이미 출퇴근 시간에 활동하지 않는 것을 사회적 예의로 알고 있다. 노인의 운전에 대해 언론의 바람직한 견해를 바탕으로 한 보도가 필요한 이유다.
* 강기옥 문화전문 기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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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옥 문화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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