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앤피플] 카카오톡은 한국내에서 모든 사람이 쓰는 필수적인 소통수단이다. 카카오톡을 발판으로 사업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 100여개의 회사를 거느리는 카카오 기업집단이 형성되었다.
30대 그룹중에서 가장 급성장한 게 카카오다. 웹툰, 음반, 드라마 등 콘텐츠 회사인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모바일 게임, PC게임 등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카카오게임즈, 인터넷과 모바일 기반의 금융업을 하는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 택시호출 서비스를 제공하는 카카오모빌리티 등은 한국의 보통사람들에게 친숙한 기업들이다.
카카오는 출발이 혁신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확장성이 높은 기반을 가지고 있어 앞으로도 더 발전해나갈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아무리 그렇다해도 100개가 넘는 회사를 만든 것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재벌들의 다양한 업종 진출을 흔히들 문어발 확장이라 표현하는데 카카오가 재벌들을 따라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최근에는 혁신보다 독점력을 통해 이익을 추구하는 행태도 보여지고 있다. 기업은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지만, 기존 재벌들과는 다른 모습을 기대하던 사람들에게는 씁쓸한 일이다. 10여년전에 혁신적인 모바일 메신저 앱인 카카오톡으로 붐을 일으키고 있던 김범수 카카오톡 창업자를 만났을 때 받은 첫인상은 매우 소탈해보인다는 것이었다.
승부사 기질이 있는 벤처기업가지만 욕심이 지나친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최근 카카오를 둘러싼 여러가지 잡음들이 의외로 느껴진다. 기존의 재벌들은 황야의 무법자들이 설치던 시대에 성장했기 때문에 지금의 잣대로만은 잴 수 없다.
그들은 생존경쟁에서 살아남는 법을 나름대로 터득했는데, 때로는 무리한 수단을 쓰기도 했지만, 기업이 사회에 어떤 방식으로든 기여하지 않고는 존재이유가 없어진다는 것을 체득하기도 했다. 불법을 저지르지 않은 재벌은 없지만, 우여곡절 끝에 강을 건넌 승자가 된 뒤에는 견고한 성을 쌓아 이를 지켜나갈 수 있는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카카오 같은 신생 그룹은 아직 그런 보호막을 쌓을 틈이 없었기 때문에 당황하고 있을 것이다. 30대 그룹에 진입한지 얼마 안 되는 기업들이 보이고 있는 행태들을 보면 유감스럽게도 기존 재벌들의 폐습을 따라하는 경우가 많다. 30대 그룹에 진입하지 못한 중견 그룹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숙원은 재벌을 따라 해서 재벌이 되는 것이다.
재벌 따라하기 중 가장 두드러진 폐습은 편법을 동원한 경영권 자녀승계다. 창업자 집안이 기업의 성공에 기여하고 창업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이사회에 참여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창업자 집안이 대대손손 기업의 경영권을 승계해 나가고 일가 친척들이 기업을 나눠가지는 것은 기업을 위해서도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일가 경영은 한국 기업들이 극복해야할 큰 과제다.
한국에서 벤처 기업들이 성공하기 힘든 큰 이유 중 하나가 재벌 체제다. 재벌들은 벤처기업들을 제값 주고 사기 보다 기술탈취로 벤처기업을 빼앗으려 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래서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에서는 벤처 회사의 투자회수(exit)에서 인수합병(M&A)이 별로 없고 신규상장(IPO)이 대부분이다. 혁신을 통해 발전하는 재벌기업들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재벌체제가 혁신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한국에서 벤처기업이 성장하기 힘든 또 하나의 이유는 정부의 벤처지원 제도가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정부의 벤처지원 정책이 위험부담을 안고 혁신에 올인하는 기업보다는 안전한 사업으로 정부지원을 받아내거나 정부용역에 의존하는 기업들을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벤처 기금(fund)을 운용하는 사람들도 정부자금을 받아 낮은 수익을 내더라도 손실을 최소화하는 데 몰두할 뿐 위험이 큰 혁신적인 기업들을 회피한다. 고무적인 것은 실리콘밸리의 투자모델을 한국에 들여와 초기창업 기업들을 잘 키워 기업가치가 1조를 넘는 유니콘을 몇 개 만들어낸 순수민간 투자자도 있다.
이런 투자자 중 한 사람과 대화한 적이 있는데, 자신의 투자철학의 하나로 '신사적으로 투자할 것'을 들었다. 편법이 아닌 정공법으로 투자하라는 얘기다. 한국의 벤처기업들이 직면하는 열악한 환경을 뚫고 혁신적인 비즈니스로 성공한 기업의 하나가 카카오다. 그래서 기대도 크고 실망도 크다. 카카오는 자체혁신이 필요해 보인다. 우선 기업수부터 줄여야 한다.
돈 되는 거면 무엇이든 하는 기존 재벌들을 따라 하면 안 된다. 카카오가 추구하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고 독점력에 의존하는 지대추구(rent seeking)보다 가치창출로 정면승부해야 한다. 카카오는 그동안의 성취를 바탕으로 혁신을 지속할 충분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카카오가 또 한번 도약하기를 기대해본다.
* 채수찬 • 경제학자 • 카이스트 교수 * 이 기고는 <시사앤피플>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시사앤피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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