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앤피플] 며칠 전 경제학자 로버트 솔로우가 타계했다. 80년대 후반 그가 라이스대학교 경제학과 세미나에 연자로 왔을 때 함께 휴스턴 만(Bay)에 나가서 세일링을 했던 기억이 아득하다. 솔로우는 인구증가와 자본축적에 의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경제의 수리적 모델을 만들어 장기적 경제성장이나 연금제도 등을 분석하는 근본적인 틀을 제공하였다.
그동안 대부분 경제성장 모델의 기본적 가정은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이 가정에 기반한 장기분석이 맞지 않게 되었다. 전세계적으로 인구증가율이 감소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구감소를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에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것은 기술발전으로 식량생산이 증가하고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영유아 사망률이 낮아지고 평균수명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21세기에 들어와서는 여성이 일할 기회가 많아지고 소득이 올라가면서 아이를 낳고 키우려면 희생해야 하는 소득의 크기와 생활수준의 정도가 그만큼 커져서 여성들이 아이를 적게 낳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여 인구감소는 사회환경 변화에 따른 개인의 합리적 선택의 결과로서 여기에 경제원리가 작동되고 있다. 인구증가가 개인의 소득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인구가 한 세대마다 두 배가 되며 청장년층이 노년층을 먹여 살린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노인 한 사람을 청장년 두 사람이 먹여 살리기 때문에 인구 증가가 없을 때에 비해 높은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거꾸로 한 세대 마다 인구가 반으로 감소한다면 노인 두 사람을 청장년 한 사람이 먹여 살려야 하기 때문에 인구가 감소하지 않을 때에 비해 생활 수준이 낮을 수밖에 없다.
청장년층이 노년층을 먹여 살리는 것을 저축행위로 본다면 그 수익율은 인구증가율과 같다 다시 말해서 경제의 장기적 실질이자율이 생물학적인 인구증가율과 같다. 이는 '생물학적 이자율 이론'이라 불린다. 인구가 감소하면 실질이자율은 마이너스가 된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인구증가에 도움이 되는 갖가지 정책들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하는가. 어떤 정책을 펴든지 전세계적으로 인구를 증가시킬 방법은 없어 보인다. 과도적으로는 아직 인구증가율이 높은 후진국에서 증가율이 낮은 선진국으로 인구가 이동하여 문제를 완화시키는 기능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로 인해 현재 지구상에는 많은 정치적 소용돌이가 일어나고 있다. 영국의 EU탈퇴, 미국의 트럼프 현상 등도 이민에 대한 기득권 인구의 반발이 기저에 깔려 있다. 인구감소는 피할 수 없는 추세이기 때문에 지역 간 인구이동에 의한 문제 완화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이제 인구감소를 피할 수 없는 추세로 받아들이고 개개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정책적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앞서 얘기한 세대 간 저축 스토리에서 빠져 있는 요소는 자본재다. 어느 사회든 생산물의 일부는 소비하고 일부는 생산시설, 주거시설 등 자본재에 투자한다. 소비가 클수록 투자가 작아져 미래에 소비할 게 줄어드니, 현재와 미래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취하느냐가 성장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성장률은 축적된 자본재의 양보다 인구증가율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러나 축적된 자본재의 양이 많아지면 그만큼 생활수준이 향상된다. 인구감소는 소비와 투자 사이의 균형점을 변 화시킨다. 미래에 더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기 위한 투자를 덜 해도 되니 일인당 소비를 늘릴 수 있는 기회도 된다.
인구가 감소하는데 생활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는 확실한 길이 하나 있다. 그것은 기술혁신이다. 한 사람이 일해도 두 사람이 일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내도록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인구감소에 역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급격한 인구증가는 지구환경의 파괴를 가져왔다. 인구증가에 제동이 걸린 것은 환경을 지키고 자원고갈을 막는 데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또한 인구밀도가 낮아지면서 생존경쟁이 줄어들어 여유 있는 삶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될 것이다. 예를 들면 입시경쟁과 구직경쟁이 줄어들어 한국 청소년들의 삶도 향상될 것이다.
앞서 관찰했듯이 여성들이 아이를 적게 낳아 인구가 감소하는 것은 경제원리에 따른 것이다. 같은 맥락을 짚어 생각해보면, 경제원리에 따라 인구감소도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는 없다.
인구가 감소하다 보면 사람이 귀하게 되어 아이를 낳고 키우는 활동이 소득을 늘리기 위한 다른 활동보다 경제적으로 더 유리할 뿐만 아니라 자아실현에도 더 보람 있다고 생각되는 시점이 올 것이다.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인구의 변화가 경제에 혁명보다 더 큰 변화를 가져온다고 했다. 인구감소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이에 대비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 채수찬 경제학자 • 카이스트 교수 * 기고는 <시사앤피플>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시사앤피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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