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앤피플] 김혜순 시인(69)의 13번째 시집 ‘날개 환상통’(Phantom Pain Wings)이 미국 전미도서비평가협회(NBCC) 시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은 미국의 대표적인 문학상 중 하나이며, 번역 시집이 수상작이 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문학평론가 이광호는 김혜순 시인에 대해 “한국 문학의 동시대성을 획득한 작가”라고 하였다. 김혜순 시인의 이번 수상은 한국 문학의 위상을 높였을 뿐 아니라, 세계문학에서 우리 문학이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쾌거임이 분명하다.
필자는 김혜순 시인에게 시 창작 수업을 받았던 제자 중의 한 명이다. 개인적인 생각일 수 있지만, 김 시인의 수업을 되돌아보면 그 수업은 하나의 의식(儀式)처럼 매우 자유롭지만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매주 수업 시간에 발표되었던 제자들의 시를 대할 때에도, 아직 배우고 있는 학생이 아닌 한 명의 시인을 대하듯 엄중하고 진지하게 질문을 던졌다. 가끔은 “이 시를 왜 썼어요?”라는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분명한 자기 세계가 있지만 끝없이 세상과 소통하고 있는 ‘시인 김혜순’은 제자들 역시 “왜 썼는지?”를 고민하며 치열하게 세상과 소통하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필자는 스승의 수상 소식을 들으면서, 문득 또 한 분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떠올랐다. 지난 1997년 어느 봄날, 지금은 소천하신 ‘소설가 최인훈’ 선생님과 차를 한 잔 마신 적이 있었다. 여러 가지 질문을 하다가 ‘광장’이라는 작품이 노벨상 후보에 올랐던 일에 대해 여쭈어본 적이 있었다. ‘소설가 최인훈’은 이렇게 대답했다.
“상은 그저 상일 뿐 그것 이상의 의미는 없는 것”이라며, 어떤 상이나 평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작가로서 이 세상과 의미 있는 소통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이 소중한 교훈은, 26년이 지난 지금까지 필자의 가슴에 그대로 남아있다. 그래서인지 ‘시인 김혜순’의 이번 쾌거도 단지 하나의 ‘상’으로서 기억될 것이 아니라, ‘날개 환상통’이라는 작품으로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필자는 몇 권의 책을 집필한 작가이고 지금도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지만, 수도방위사령부 교회와 밀알복지재단을 거쳐 지금도 안산에 있는 교회에서 사역하고 있는 목사이다. 이번 고난주간에는 스승의 수상 소식 때문인지 잠시 필자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던 스승들을 떠올려 보았다.
‘시인 김혜순’, ‘소설가 최인훈’ 선생님뿐 아니라 연세대학교 신학과에서 공감과 소통의 상담을 가르쳐주신 ‘유영권 교수님’, 탈인습성을 지향할 수 있도록 지도해 주신 ‘김현숙 교수님’ 그리고 건국대학교 박사과정에서 문학치료학을 연구할 수 있게 해주신 ‘황혜진 교수님’과 같이 좋은 스승들께 배울 수 있었던 것은 개인적으로 너무나 큰 감사의 제목이었다. 그분들에게 배운 것들은 화석화된 죽은 지식이 아닌 이 시대와 소통하며, 함께 발걸음을 맞추어 갈 수 있는 실천적 지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그리스도 예수’의 고난을 깊이 묵상해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스가랴서에 예언된 ‘그리스도 예수’는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며(슥9:9), 그 눈높이를 우리에게 맞추고 온몸으로 이 세상과 소통하며 오셨다. 하나님의 아들, ‘성자 하나님’이신 그분께서 우리의 배고픔과 고통과 연약함을 치열하게 공감하셨다.
오랜 제자였던 ‘가룟 유다’에게 배신당한 ‘배신감’과 죄없이 모욕당하고 채찍에 맞으신 ‘억울함’과 발가벗겨지고 십자가에 높이 달려서 대중들 앞에서 손가락질당해야 하는 ‘수치심’과 십자가에서 홀로 버려진 ‘고독감’을 이 세상을 대신해 온몸과 마음으로 받아내셔야 했다.
그 치열한 피와 생명의 대가로 이 땅에 세워진 것이 바로 ‘교회’이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철저하게 낮아지시고 죽기까지 사랑하셨기에 성도들은 마치 ‘왕관의 보석같이 빛나는(슥9:16)’ 귀한 존재가 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의 소통법이며, 온 세상의 교회가 함께 기념하고 있는 고난주간과 부활절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 박상준 목사 (본지 논설위원) * 이 기고는 <시사앤피플>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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