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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혁 컬럼] 어린이날 되돌아보는 '소년소녀의 선서문'

시사앤피플 | 기사입력 2024/05/05 [15:17]

[허준혁 컬럼] 어린이날 되돌아보는 '소년소녀의 선서문'

시사앤피플 | 입력 : 2024/05/05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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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준혁 UN피스코 사무총장    

 

[시사앤피플] "우리는 왜족에게 짓밟혀 말하는 벙어리요 집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집과 우리 글을 찾기로 맹세합니다. (중략) 우리는 또다시 집도 빼앗기지 않고 말도 잃지 않기로 굳게 기약합니다" <소년소녀의 선서문>(1946.5.5)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인 1922년 어린이날을 시작했다. 세계 최초로 어린이날을 만들었다고 알려진 터키보다 앞선다. 터키는 독립기념일인 1923년 4월 23일 어린이날 행사를 열었고 공식 지정한 건 4년 후인 1927년이다.

 

어린이날 이전까지는 어린이란 말이 없었다. '어른의 축소판'으로 취급받으며 애기, 애새끼, 어린것, 아이들, 애, 애들, 사내아이, 계집애 등으로 불렸다. 이에 방정환 선생은 일제강점기 아래의 어린이들에게 민족정신을 일깨워 주고, 인격을 가진 독립된 사회 구성원으로 대해야 한다는 의미로 ‘어린이’라고 이름 붙였다.

 

'새싹이 돋는' 5월의 첫날의 의미로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하고 행사를 갖기 시작했다. 해가 갈수록 규모가 커지자 일제는 어린이날 행사가 민족의식을 높일 것을 막기 위해 <어린이>를 폐간시키고 소년단체 해산명령을 내리며 어린이날 행사도 금지시켰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에 어린이날이 부활했다. 해방 이후 첫 기념식은 1946년 5월 첫째 주 일요일인 5월 5일에 거행되었다. 이 자리에서 다시는 집도 말도 빼앗기지 않고 새날 새 조선의 주인으로서 열심히 배우겠다는 <소년소녀의 선서문>이 낭독되었다.

 

"우리는 왜족에게 짓밟혀 말하는 벙어리요 집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집과 우리 글을 찾기로 맹세합니다. 우리는 새 조선 건설의 일꾼이요 새날의 임자인 것을 스스로 깨닫습니다.

 

우리는 또다시 집도 빼앗기지 않고 말도 잃지 않기로 굳게 기약합니다. 우리는 왜적으로 해서 다른 나라 어린이보다 너무도 뒤쳐졌습니다. 우리는 배우고 또 배워서 다른 나라 동무들보다 앞서가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우리는 또다시 조선의 어린이인 것을 잊지 않고 단단하고 끈끈하게 뭉치겠습니다."

<현대일보> 1946년 5월 6일

 

1946년 이후 날짜가 달라지는 불편을 막기 위해 요일에 관계없이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정하여 오늘날까지 이르게 되었다.

 

러시아나 중국 같은 사회주의권에서는 6월 1일을 어린이날로 기념하는 경우가 많다. 1949년 모스크바 국제민주여성이사회에서 이날을 국제어린이날로 제정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다음으로 많이 기념되는 날은 유엔이 세계어린이날로 정한 11월 20일이다.

 

북한은 6월 1일 '국제아동절' (7세 미만)과 6월 6일 '소년단 창립일' (7세~13세)을 어린이날로 기념하고 있다. 북한은 1일을 국가공휴일로 지정하진 않았지만 부모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직장에서 조퇴하거나 휴가를 내고 아이들의 공연과 체육활동에 참여하기도 한다. 반면, 북한의 소년단 창립일인 6월 6일은 국가공휴일이다.

 

우리나라는 어린이비율이 인구 4000만 명 넘는 37개국 중 11.2%로 가장 낮다. 이어 일본 11.3%, 독일 14.0%, 중국 16.8%, 미국 17.7%, 인도 24.9% 등의 순이다.

 

이같은 현실로 인해 어린이날은 어른이날, 개린이날, 냥린이날(묘린이날) 등으로 변질되어가고 있기도 하다. 어른들도 휴일로 즐기려는 경향과 함께 혼인율과 출산율의 저하로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펫팸족) 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린이날 애완견•애완묘 관련 상품들이 호황을 누린다고 한다.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가 이야기와 노래와 그림, 세 가지 세상에서 행복하게 산다고 했다. 백설공주, 인어공주, 백마 탄 왕자... 어린이들은 옛날이야기를 들으면서 스스로 왕자와 공주가 되기에 행복해진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실제 어린이들은 행복지수는 OECD 22개국 중 22위로 꼴찌이다.(2021년 조사결과) 한국 어린이들은 스스로가 '불행하다'고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발표한 '2024 아동행복지수 생활시간조사'결과도 행복지수는 100점 만점에 45.3점이었다. 네 명 중 세 명(75.4%)은 집에서 혼밥을 했다. 불면증도 13.1%나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야 할 일이 많아서'(17.1%), '내일 할 일 등 걱정이 많아서'(9.7%) 등의 이유로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고 했다.

 

"집만 한 곳이 없다"라고 했다. 가정은 부부만의 전용이 아니고 아이들이 배우고 자라나는 교육장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밥만 먹고 자라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관심과 사랑 속에서 자라야 한다. 모든 것에는 적절한 시기가 있다. "너희를 위해 일만 하다가 이렇게 되었다"라고 해봐야 소용이 없다.

 

더 이상 어린이행복지수를 수십 년간 최하위권에 있게 해서는 안된다. 행복지수가 낮은 건 어린이인권이 낮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소파선생의 일갈은 뼈를 때린다.

 

"어린이 뜻을 가볍게 보지 마십시오. 어린이는 어른보다 한 시대 더 새로운 사람입니다"

 

시사앤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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